여인숙에서 늦은 아침을 먹어치운 위고는, 송성 북쪽으로 있다는 장터로 어슬렁거리며 걸어 올랐다.

‘어젯 월하노인이 하던 말은 정말일까? 비록 두 푼 복채 값이지만 터무니없는 사실을 그럴 듯하게 꾸며 나한테 사기라도 친 것은 아닐까?’

포기하려다가 딱히 할 일도 없었으므로 무작정 가 보기로 했다.

과연 장터가 있었다. 장터에는 인파로 북적대었다. 주위를 얼마쯤 둘러보고 있는데 문득 채소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진여인의 딸도 여기 있는 것으로 돼 있는데, 만일 그 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헌다? 그렇지. 먼발치에서 살펴본 뒤 마음에 안 들면 슬그머니 도망쳐버리면 되겠지, 뭘.’

그렇게 작정한 위고는 장터의 아무나 붙들고 진여인을 물었다.

“저어기, 애기 안고 있는 여자가 진(陳)씨요.”

얼핏 바라보니, 진여인이라는 늙수그레한 여인이 두어 살쯤 돼 뵈는 여자애를 얼르며 열심히 손님 상대를 하고 있었다.

“저분이 확실히 진여인 맞습니까?”

“채소장수라면 진씨가 이 장터에선 저 여자 하나뿐이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진여인이 저 여자라면 그녀의 딸은 기어다니는 두살배기 저 어린애인 것이다.

‘그렇다면 저 어린애가 내 색시란 말인가! 어젯밤 그 노인이 나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군!’

먼발치에서 속으로 웃고는 마악 돌아서려는데, 문득 어린애의 수작이 몹시 위험해 보여 그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위고의 발걸음은 한 발 늦고 말았다. 진여인이 손님과 상대하느라고 한눈 파는 사이에, 기어가던 아기는 그만 옆에 세워둔 지게작대기를 건드렸다. 가득 배추를 얹은 지게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아기는 빙그르르 돌아버린 지겟가지 끝에 이마를 찔리고 말았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터진 이마에서는 붉은 피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시장바닥은 그로 인해 잠시 난장판이었다.

그로부터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위고는 상주(相州 : 河南省)에서 벼슬자리를 얻어, 눌러앉아 살고 있었다.

노총각이었다. 그런데 그 곳 태수(太守)가 위고의 능력에 호의적이었던지 자신의 딸과 결혼하도록 권했던 것이다.

그 결혼이 성사되기 몇 개월 전이었다. 위고가 옛 진(晋) 땅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해몽점의 달인인 색탐(索眈)이라는 명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짐짓 그를 찾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위고는 객관에서 자다가 생시처럼 또렷하게 희한한 꿈을 꾸었었다.

위고는 색탐을 만나자마자 꿈 얘기를 늘어놓았다.

“저는 분명히 얼음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얼음 밑의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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