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때론 운좋게 맑은 날씨를 만날 수 있지만 거의 한달간은 지루한 비 때문에 집에서 주말을 보내야 될 형편. 하지만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아무래도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이 있는 바닷가가 각광을 받게 된다. 이번주부터 6주간에 걸쳐 사천을 포함, 남해, 진해, 거제, 마산·창원, 고성 바닷가 투어를 마련했다. 도서지역이 많은 통영은 제외했다. 사천은 서부경남의 해상 관문이자 한려수도 해상국립공원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해양도시다. 또한 수산물 집산지이기도 하다.
예부터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하는데 고향이 삼천포인 기자도 진저리 날 정도로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몰라서 하는 소리다. 비릿하기는 하지만 바다 냄새와 어시장의 풍경은 정겹기만 하고 깨끗한 해수욕장과 해안길은 보는 이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준다. 삼천포항 일대에도 가볼만한 곳이 꽤 많다. 해안선을 따라 몇 곳을 소개한다.



△ 실안 바닷가와 해안도로

질퍽한 갯벌에 깜짝…힘찬 입질에 들썩

사천읍에서 국도 3호선으로 삼천포항 방면으로 오다 남양동 사무소 부근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실안~대방 해안관광도로가 시작된다. 해안의 절경과 어우러져 출렁이는 푸른 바다와 오밀조밀한 맛이 물씬 풍기는 해안선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 또한 일품이다.
남양동에서 계속 이어지는 포도밭은 8~9월이면 향긋하고 진한 향기에 취하기 쉽고 발걸음도 절로 포도밭을 향하게끔 만든다. 통통하고 단맛이 가득한 이 곳 포도의 맛은 전국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실안~대방 해안관광도로는 6km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아늑한 드라이브에 빠져들 수 있는 곳이다.
실안 바닷가의 한적한 모습도 눈에 담기 좋다. 삼천포는 곳곳에 물살이 센 곳이 많아 낚시꾼들이 1년 내내 드나드는 곳이다. 특히 이곳 실안 바닷가도 물고기가 잘 잡히기로 유명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마을마다 대부분 고기가 잘 잡힌다. 질펀하게 펼쳐져 있는 갯벌과 그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아낙들의 모습도 정겹다. 해안도로 중간 쯤에는 소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커피 한잔 뽑아들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포근한 감상에 빠져들기 딱이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가져온 음식을 먹거나 술을 한잔 기울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안동 앞바다의 마도·코섬·저도 등 그림 같은 작은 섬들 너머로 사라지는 일몰의 모습은 붙잡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이다. 해안도로 어느 곳에서 차를 세워도 아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늑도와 초양도

초저녁…붉게 물든 바다위 죽방렴 ‘한폭’

예전엔 늑도와 초양도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해야 됐지만 지금은 ‘창선~삼천포 대교’가 놓여 더욱 편하게 갈 수가 있다. 하지만 배를 타던 낭만과 운치는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늑도와 초양도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물살이 빠르다. 물살이 빠르다보니 이곳에서 잡히는 고기의 육질 또한 부드럽고 맛이 좋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며 때문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늑도의 원래 이름은 구리섬. ‘구리’는 삼천포지역 사투리로 구렁이를 말한다. 섬 모양이 구렁이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일제의 한자식 지명 변경 때 ‘굴레’‘강제’의 뜻이 담긴 ‘륵(勒)’자를 쓰게 됐다.
늑도는 전통적인 어업·수산 도시답게 항구 인근에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죽방렴은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어살로 빠른 조류를 이용한 원시어업의 한 방식인데 바다 바닥에 막대기를 박아 만든 V자 형태의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 현재 이 방식을 이용해 고기를 잡고 있는 곳은 남해 지족과 삼천포 두 곳 뿐이다. 섬의 산봉우리에 낙조가 걸릴 때 붉게 물드는 바다와 죽방렴의 조화는 그야말로 한 편의 그림이다. 실안과 대방동 일대에도 죽방렴이 있지만 ‘오리지널’ 죽방렴을 보려면 늑도에 와야 한다.
초양도는 늑도보다는 작다. 대방동에서 초양도를 지나 늑도에 갈 수 있는데 낚시터로 유명한 늑도보다 오히려 지금은 초양도에 낚시를 오는 사람들이 많다. 늑도가 워낙 알려져 있는데다 사람들이 붐비다보니 초양도에서 늑도를 바라보며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늑도에는 200여가구, 초양도에는 70여가구가 살고 있다.

△ 대방진굴항

조선시대 만들어진 뭍에 숨은 인공항구

해안도로를 따라 시내 방면으로 향하다보면 오른편으로 바다쪽에서는 보이지 않게끔 뭍으로 깊숙이 숨어 있는 인공항구를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때 해안경비를 위해 만들었다는 대방진굴항(도지정문화재 93호)이다.
고려말엽부터 조선초에 걸쳐 남해안 일대에 빈번히 출현하던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군항으로, 육지쪽이 넓게 패어있고 바다쪽은 큰배 한척이 겨우 드나들 정도로 좁은 형태의 항구다. 동네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다 느티나무숲이 해안을 가리고 있어 바다에서보면 항구가 있다는 것을 모를 뿐더러 그냥 평범한 어촌마을 정도로 착각하기 쉽게 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임시로 숨겨두었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왜선이 굴항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가까이 다가오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을 섬멸시켰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해전을 사천 양해전 또는 모자랑포 해전으로 부르는데 거북선이 처음으로 등장한 역사적인 해전을 치른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작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어 있고, 횟집도 늘어서 있어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이 꾸준하게 찾고 있다.

△ 삼천포항과 어판장

싱싱한 횟감 ‘파드득’…눈길·발길 절로

대방진굴항을 지나 계속 해안선을 따라 들어가면 삼천포항을 만날 수 있다. 삼천포항은 서부경남 연안어업의 중심지인데 멸치·갈치·전어·고등어 등이 많이 잡히며 특히 이곳에서 잡히는 전어는 고소하고 육질이 부드러워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다시 찾는다고 한다. 게다가 값이 싸 일반 가정집에서도 전어철이면 전어를 가득 사 구워먹고, 무쳐먹고, 회쳐먹기도 하는데 특히 양푼에 전어와 양파, 당근, 고추 등을 썰어넣고 초고추장을 듬뿍 뿌려 비벼먹는 맛은 일품이다.
비릿한 바닷내음에 코를 움켜쥘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느새 익숙해져버리게 되고 그 냄새가 아주 싱싱하게 느껴진다. 삼천포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판장인데, 이곳에서는 항상 활발하게 고기들이 거래되고 팔리고 있다. 경매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나는 일 중의 하나. 싱싱한 횟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는데 어판장에서 직접 고기를 고른 후 근처 ‘초장집’에 가 있으면 회를 쳐서 배달해준다. 값도 싸고 양도 많지만 깊은 맛에 풍덩 빠지게 된다. 또한 초고추장 맛도 지역마다 틀리지만 삼천포의 초고추장은 매운 고춧가루를 이용해서 만든 고추장에 식초를 듬뿍 뿌려서 초고추장을 만든다. 매콤하고 새콤한 맛이 금새 군침이 돌게 만든다. 삼천포에서 많이달라고 하면 꾸중듣는다. 삼천포 사투리로 ‘문디 지랄하네’하며 핀잔듣기 일쑨데 그냥 아무 말 않아도 알아서 많이 준다. 이곳 사람들은 투박하지만 정감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삼천포항에 왔으니 ‘코섬’을 구경하는 것을 빠뜨리면 안된다. 코섬은 배영중인 사람이 코만 물 밖으로 내놓고 있는 듯한 모양을 한 아주 작은 바위 같은 섬인데, 섬에 있는 해송이 마치 코 밖으로 비어져나와있는 코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조금 우스운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다.

△ 노산공원

‘바다를 그리워하는 언덕에서 잠시 휴~’

어판장 바로 옆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기자는 삼천포에서 거의 20년을 살았던 터라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 시내 중심부인 동서금동에 있는 공원은 바다를 향해 돌출되어 있는 작은 언덕위에 조성되어 있는데 잘 가꾸어져 있는 잔디밭과 산책로가 있어 한두어시간 편안한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공원 중심부에는 팔각정과 휴게실이 있고, 팔각정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과 삼천포 시가지가 한눈에 아름답게 들어온다. 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늠름한 동상이 삼천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삼천포가 낳은 서정시인 박재삼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공원 남단의 바닷가 바로 위에는 정자 하나가 지어져 있는데 이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때마침 유람선과 어선들이 지날 갈 때면 배 위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과 수인사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 정도로 정감이 넘친다.
해안을 따라 양쪽으로 방파제가 있고 그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연중 수시로 볼 수 있다. 특히 항구가 있는 오른쪽으로 가보면 등대가 있는데 친구들과 모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행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기자도 친구들과 밤을 새워가며 술잔을 기울여 봤지만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진한 추억을 남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 남일대 해수욕장

모래찜질 탁월…코끼리·거북바위는 덤

해안을 따라 여러곳을 둘러보았으니 이제는 해수욕을 해야한다. 시내에서 고성방면으로 2km 거리에 위치한 남일대 해수욕장은 서부경남에서 몇손가락 안에 꼽히는 해수욕장이다. 일명 ‘모래실’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손으로 모래를 한움큼 퍼올리면 모래 입자가 너무 고와 손가락 사이로 금세 줄줄 흘려버릴 정도다.
또한 날씨가 따뜻하고 바닷물에 염분이 많다보니 예전부터 모래찜질을 하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신라 말엽 학자인 최치원 선생이 이곳을 지나면서 맑고 푸른 바다와 깨끗한 백사장, 주변의 소나무 숲 등의 모습에 감탄하여 ‘남녘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이라는 뜻에서 남일대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바다 끝을 향해 보면 왼편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코끼리 바위다. 커다란 코끼리가 긴 코를 바닷물에 박고 있는 모양인데, 코끼리 바위 주변에 가보면 작은 거북 모양의 바위들이 코끼리를 향해 있어 절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해수욕을 하고 난 뒤 무료해진다 싶으면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어 바닷바람을 쐬며 진널 전망대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다. 전망대에 오르면 한려수도 뿐만 아니라 시를 떡하니 내려다보고 있는 와룡산도 바라볼 수 있고 고기잡이 하는 어촌의 풍경도 눈에 담아갈 수 있다. 크지는 않지만 생동감이 있고 정이 넘치는 삼천포.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따뜻한 어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삼천포. 마음 속에 가득 담아가기에는 하루가 빠듯할 듯 하다. 20년 넘게 살았던 기자도 마음 속에 가득 담아내지 못했기에….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사천IC로 진입해, 삼천포항이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를 따라 계속 내려오면 된다. ‘창선~삼천포 대교’까지 바로 갈 수 있는 신도로를 이용해도 되고, 구도로를 이용하면 시내로 곧장 빠지게 된다. 마산에서 국도를 이용해도 된다. 진동방면 국도를 따라 고성으로 들어간 뒤 고성에서 하일면 하이면을 지나면 남일대 해수욕장으로 바로 들어설 수 있다. 오는 길에 상족암에 들러 공룡발자국을 보고 오는 것도 괜찮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진주와 사천간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8분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창원에서는 오전 6시10분·8시30분·11시10분·12시50분과 오후 3시·6시35분에 버스가 있으니 오히려 마산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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