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이지만 달이 밝아 그래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스물 두 살의 청년 위고(韋固)는 파랗게 달빛이 깔려 있는 들판을 부지런히 걸었다. 멀리 불빛이 보였다. 제법 큰 마을인 게 틀림없었다.

천하를 유람하겠다는 큰 포부를 지니고 여행길에 나섰지만 외로움만큼은 피할 길이 없었다.

‘이러다가 살짝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배도 고팠다. 어서 인가를 찾아 끼니를 때우고 잠자리도 얻어야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보았자 반겨줄 사람도 없는데, 아무 데서나 자릴 잡아 눌러앉아 버릴까?’

위고는 고아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처 없는 유람이 가능했던 것이다. 당나라 태종 황제 2년.

갑자기 행인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아 마을이 가까워진 듯했다.

위고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무작정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이곳이 어디인지요?

사내는 위고의 초라한 행색을 눈여기며 되물었다.

“외지에서 오셨소?

“그렇습니다. 천하를 모두 둘러볼 작정으로 출발을 했습니다만….”

“그런데, 무얼 물어볼 작정이었소?”

“여기가 어딘가 하구요.”

“송성(宋城:河南省)이란 데요. 오늘 밤 이곳에서 묵을 거요?”

“그럴 작정입니다. 요기라도 겸할 수 있는 데라면 더욱 좋구요.”

“그렇다면 읍내로 들어가야 할거요. 성문 닫히기 전에 서둘러 가 보소.”

고맙다는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사내가 다시 불렀다.

“미리 귀띔해 두지만, 성내 인간들 성미들이 더럽소. 특히 외지에서 온 손님인 걸 알면 바가지 씌우기 십상이니 조심해야 할거요.”

“고맙습니다.”

노자는 충분했다. 부모가 모두 죽자 위고는 가산을 정리해 여행길로 나섰던 터였다. 그렇지만 노상강도를 만나거나, 끼니때마다 바가지를 쓰게 되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다.

전대가 든 허리춤을 만져본 뒤 위고는 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성문을 통과하고 나서였다. 얼마큼 걸어가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백발 성성한 노인이었다. 파랗게 달빛을 받으며 돗자리를 깔고 앉아(月下老人)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왼손에는 빨간 끈을 들고서 허연 수염사이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위고는 호기심이 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앞으로 다가가 다짜고짜 물었다.

“노인장, 지금 무얼 하고 계시는 겁니까?”

“보면 모르나.”

“예에?”

“책을 읽는 중이지.”

“무슨 책인데요?”

“인간의 혼사(婚事)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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