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담을까 물살에 안길까

언제나 주말이면 떠나는 여행길이지만 가끔씩은 혼자, 그것도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떠나려고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울적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구랑 함께 가는 것도 좋기는 한데 ‘혼자 놀기의 진수’를 터득했다면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다리품 팔며 훌쩍 떠나는 것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진해 웅동에 있는 성흥사 계곡. 며칠전 내린 비 때문인지 날씨가 쾌청하다 못해 덥기까지 하다. 계곡을 찾기에는 안성맞춤인 날씨.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도시락과 먹을 거리를 준비해 출발했다. 2주전 의령 찰비계곡을 찾았을 때의 배고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먹거리는 꼭 챙겼다.
진해시내에서 105번 버스를 타고 웅동에 내려 30분 정도 올라가니 깨끗하게 재단장 된 성흥사가 보인다. 성흥사가 보이기 전부터 들리는 요란한 계곡물 소리는 먼 길을 찾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하기에 충분하다.
마침 절 입구에 서있는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성흥사부터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정리 된 푸른 잔디와 건물들이 눈을 편하게 해준다.
성흥사(聖興寺·도 유형문화재 152호)는 신라 흥덕왕 8년(833년)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웅동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불력(佛力)으로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창건된 고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승려수가 5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절이었는데 1109년(고려 예종 4년)과 1668년(조선 현종 9년)에 발생한 화재 등으로 인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정조 13년(1789년)에 지금의 자리에 재건을 한 것이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나한전·칠성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으며, 이들 전각들에는 불상 6위·나한상 16위·불상의 연화대좌 3기와 목제 연화대좌 1기 등이 있다. 또 고종 27년(1890년) 화주스님이 그린 섬세한 필체의 무염국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군 등이 있다. 절 옆에는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여느 절에나 다 있는 것이 약수. 성흥사에도 약수가 있기는 한데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것은 목 안이 까칠까칠 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달작지끈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흙 냄새나 풀 냄새가 많이 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약간 싸한 맛이 들면서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부담이 덜 하다.
아까 그 스님을 다시 만나 성흥사 계곡에 대해 물으니 절 주위 전체가 계곡이란다. 그리고 정상까지 계곡이 이어지는데 대략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다시 합장해 인사를 하고 계곡 주변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점심 시간도 이르고 해서 절 옆으로 나 있는 계곡길을 따라 올라보았다.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가 급해지면서 쏟아지는 폭포의 힘도 더 세다. 군데군데 소를 이루고 있는데 맑고 깨끗해 흘러내리는 땀을 씻기 위해 풍덩 빠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성흥사 계곡은 특징이 많다. 먼저 여느 곳보다 짙은 녹음을 들 수 있다. 울창한 숲이 계곡위로 나무 그늘을 드리워 시원한 놀이 장소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계곡물의 양이 많다. 수량이 풍부하다보니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계곡 물이 경쾌하다. 맑고 깨끗함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 또한 군데군데 널려있는 너른 바위들이 돗자리를 깔아 놓고 휴식을 취하기에 딱이다.
정상까지의 등반을 원하면 계곡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계곡물에 발 담그고 쉬엄쉬엄 올라도 좋고, 아이들이나 산을 오르기에 다소 무리인 듯한 가족과 함께 나왔다면 성흥사 주위 계곡에서 휴식을 취해도 좋다.
군데군데 헤집고 다니다보니 어느듯 3시. 돗자리가 없어 위클리경남을 너른 바위 위에 깔아놓고는 준비해 온 점심을 먹었다. 일명 ‘오색 샌드위치’. 식빵을 살짝 구워내고 그 안에 튀겨낸 닭고기 살과 얇게 썬 당근을 데쳐낸 것과 치즈 한 장, 그리고 계란후라이와 오이를 얇게 채썰어 소스에 묻혀 마지막에 식빵을 장식하는 것인데 다섯가지의 색깔이 예쁘게 층층이 쌓여 이름을 그렇게 붙여보았다.
그리고 업무시간(?)이지만 버터를 발라 직접 구워낸 오징어를 안주 삼아 가지고 온 캔맥주 두 개를 들이키니 다른 말이 필요가 없다.
벌러덩 드러누워 바라보는 하늘이 참 오래간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나마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를 식히며 지나가는데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던 복잡하고 필요없던 생각들이 말끔히 없어진다. 게다가 요란한 계곡물 소리는 그칠 생각이 없는가 보다.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물을 쏟아내길 멈추지 않는다. 나무들도 살며시 몸을 흔들며 계곡물과 바람과 함께 멋진 트리오를 만들어낸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해가 지려고 몸부림을 친다. 해가 많이 길어져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데 그래도 저녁때가 되니 쌀쌀함이 느껴진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모를 심는 손길이 바쁘다. 아직 수확하지 않는 누런 보리밭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성흥사 계곡에서 올 여름 가족들과 혹은 연인끼리 맑은 공기와 짙은 숲을 친구 삼아 흐르는 계곡물에 발 담그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보면 어떨까. 일상의 고뇌와 시름을 흐르는 계곡물에 흘려보내고 아주 잠시만이라도 자연에 동화돼 모든 걸 잊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가볼만한 곳

조선 수비 웅청읍성…왜군 기지 웅천왜성

진해는 진해만을 끼고 있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입이 찾았던 곳이다. 성흥사 계곡이 있는 웅동 못가서 웅천이 있는데 이 곳에 조선시대의 역사와 함께 웅천왜성과 웅천읍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진해를 한번 돌이켜 보는 데 괜찮을 듯 하다. 웅천왜성(도 지정기념물 79호)은 103번이나 105번 버스를 타고 가다 웅천초등학교 앞에서 내린 후 하천 사잇길로 10분쯤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는 데 왼쪽 공장가는 길로 접어들면 찾을 수 있다.
남산(해발 183m) 정상에 위치한 웅천왜성은 산봉우리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산기슭까지 뻗어 있는데 길이가 1200m 정도 된다. 임진왜란 때인 1593년 고니시 유키나와가 성을 지어 수비하던 곳으로 왜군의 제1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왜성은 바다를 등지고 내륙을 향해 있는데 육지로부터의 방비를 철저하게 하기 위한 것인 듯 남북으로 긴 돌담이 쌓여있다. 지금은 나무와 풀들이 무성해 많이 묻혀있고 무너져 내린 곳도 많지만 성벽의 모습이나 성터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성내에서 동남쪽 바다를 바라보는 맛도 쏠쏠하다.
웅천읍성(도 지정기념물 제15호)은 반대로 조선에서 세운 성이다. 역시 105번 버스를 타고 가다 웅천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30여분 걸어서 가면 찾을 수 있다. 읍성은 웅천초교와 진해동중학교·진해제일고등학교 등을 포함한 일대에 있다. 읍성은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고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종 16년(1434년)에 축성하였다. 그후 단종 1년(1453년)에 증축하고 그 이후에도 몇차례 증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총 둘레가 936m에 이른다고 하나 현재는 500m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 동벽이 대체로 온전하게 남아 있고, 북벽은 국도를 내면서 파괴되었다고 한다. 또 동문의 견륭루나 서문의 수호루 등 문루가 몇 군데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 조차 없다.


▶ 찾아가는 길

웅동서 30분 거리…절 입구까지 차량 진입

자가차량을 이용하려면 마산·창원에서 안민터널이나 장복터널을 이용해 부산으로 가는 국도 2호선을 타면 된다. 성흥사 입구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을 듯 하다.
대중교통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마산에서는 33·302·315번 등 시내버스를 이용해 진해로 넘어가서 진해 시내에서 웅동 방면으로 105번 버스를 타면 된다. 웅동1동에서 내려 30여분 걸어 올라가면 성흥사에 닿을 수 있다. 105번 버스는 18분마다 한 대씩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웅천왜성과 읍성이 있는 웅천에서는 버스가 귀하다. 108번 버스가 다니기는 한 데 1시간 30분마다 한 대씩 있어 웅천왜성을 둘러보고는 기자도 1시간 가량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계곡에 갈 때는 음식을 챙겨가는 것이 더 운치있고 좋을 듯 하지만 번거롭다고 생각되면 성흥사 아래에 음식점이 다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주로 오리백숙과 닭백숙을 하는 음식점들이 많다. 그리고 슈퍼도 있어 계곡에서 마실 수 있는 음료수 등은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아니면 웅동마을로 내려와 식사를 해도 무방하다.
성흥사 계곡의 또 하나의 장점은 너른 주차장이다. 성흥사 초입부터 150여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곳 있어 불편하지 않을 듯 하다. 주차비와 입장료는 성수기인 6월20일부터 8월 말일까지 받으며 9월에는 주말에만 받기 때문에 나머지 기간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주차비는 중소형이 하루 3000원, 대형이 6000원이다. 폐기물 처리비용 명목으로 받는 입장료는 어른 800원·학생 600원·어린이 300원이며 단체 이용시에는 더 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