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하는 것중에 가장 먼저 꼽히는 건 무얼까. 인생을 음미할 정도의 연령대라면 아마도 “세상살이 모두”라고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른바 결혼적령기에 든 젊은이라면 당연히 ‘결혼’ 아닐까.

결혼이란 것도 결국 ‘제도’이기 때문에 우스운 점이 많다. 너무 일찍 해도 안 좋고, 너무 늦게 해도 안된다. 그래서 이른바 ‘결혼적령기’란 것이 생기는데, 이 기간이란 것이 또 그리 길지도 않다. 길어봤자 10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막 꽃이 피려는 그 때, 자신의 인생의 많은 부분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결혼 상대자를 찾아내고, 탐색하고, 결혼에까지 골인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겐 다소 가혹한 것일 수도 있다.

“결혼 이외의 다른 형태로 가족을 꾸리며, 또 행복을 누리며 살 수는 없을까·”

결혼을 앞둔 젊은 남녀들의 이러한 고민들을 반영하듯 최근 하나의 대안문화로 ‘동거’ 바람이 불고 있다.

경남대와 창원대 등 대학촌 주변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집에 들어가는 동거 커플의 모습은 이미 오래된 풍경이고, 온라인상에서도 ‘프리솔로(http://freesolo.co.kr)’‘동거닷컴(http://dongger.com)’‘너랑나랑(http://nyouandme.com)’등 지난해부터 동거에 관련된 각종 사이트와 동호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지난 10월 오픈한 ‘동거닷컴’에는 개설한지 두달이 채 못돼 4000여명의 회원이 등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거’바람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거’를 보는 인식자체의 변화가 커다란 전제임은 무시할 수 없다. 동거가 ‘결혼으로 가는 임시정거장’ 정도로 생각하던 예전에 비해 결혼을 반드시 전제하지 않는 ‘실험 동거’ 혹은 결혼을 아예 배제하는 ‘적극 동거’를 선택하는 추세가 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요즘은 동거사실을 외부에 당당히 알리고, 반짝·철부지 동거보다는 본격 동거가 많아졌다. 결혼이 주는 속박-상대방에 대한 간섭 뿐만 아니라 상대방 가족이 주는 구속까지-을 최소화하면서, 결혼이 주는 사랑과 안정을 최대화해보자는 것.

동갑내기와 1년째 동거에 접어든 마산시 월포동의 김모(여·26)씨는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김씨는 “결혼을 하면 서로 사랑하는 ‘나’와 ‘너’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로 만나는 것이 싫었다. 동거를 하면서 생활비나 전세금 등 경제적인 문제며 가사분담과 출산문제 등 함께 살면서 부딪히게 될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사회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다양화되고 있음에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인 가족에 대해서는 그 ‘다양화’가 많은 부분 인정받지 못했었다. 특히 결혼을 앞둔 남녀에게 자신에 맞는 생활양식에 대해 충분히 고려할 기회를 배려하지 않고 한가지의 가족 형태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강압에 가까운’사회적 분위기였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동거바람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거나 사회적 폐해를 낳는 주범처럼 여겨지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동거 등 여러 가족유형에 대한 찬·반을 논하기 전에 먼저 사회가 ‘동거’가 한 개인의 생활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해주었을 때, 개인은 유행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생활방식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원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김은경 교수는 “곱지않은 주위의 시선과 자녀의 출생 문제, 이후의 배후자에 드는 죄책감 등 동거로 인해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이 ‘정상’이고 그 외의 형태에 대해 비정상 혹은 ‘결손’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경직된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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