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라…봄의 끝자락

일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본사 기자회 연수가 지난 주 있었다. 창녕 부곡 한 콘도에서 열렸는데 강의와 토론 후엔 언제나 진한 술자리가 있음은 당연지사. 어쩔 수 없이 과음을 하게 됐지만 시원한 계곡을 찾아나선다는 마음에 다음날 아침부터 부산을 떨 수 밖에.
의령에 파견나와 있는 선배 차를 얻어타고 의령으로 향했다. 창녕에서 의령으로 넘어오는 길에는 굽이굽이 산길과 많은 봉우리들이 보이고, 곳곳에서 시원스럽게 들리는 물소리에 임진왜란 당시 신출귀몰했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의 혼이 어디 하나 깃들어 있지 않은 곳이 없는 듯 하다. 도내에도 많은 시골이 있지만 의령은 정말 시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침 제4회 달군달아수박축제가 열려 행사장을 먼저 둘러보았다. 시식회장 곳곳을 돌며 수박을 마구 먹고 나니 달짝지근한 수박 맛에 어느듯 전날의 취기를 많이 씻을 수 있었다. 국밥 한 그릇으로 점심을 떼우고 혼자 찰비계곡을 찾았다. 의령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는 궁류면 벽계리에 있는 찰비계곡(벽계계곡)은 오뉴월 무더위에도 협곡 사이로 겨울비처럼 맑고 차가운 옥수가 흘러내린다 해서 그렇게 불린다.
읍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지만 이 놈의 완행버스는 중간중간 서기 때문에 시원하게 내달리지를 못한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도 궁유면까지 50분은 족히 걸린다. 시원하게 내달리지는 못하지만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는 재미도 쏠쏠하고 시골 풍경이 깨끗해 마냥 즐거운 마음도 든다.
궁유면에 도착하니 뭔가 다른 마음이 든다. 가까이에 봉황산의 빼어난 절경이 살며시 보이고 그 뒤로 한우산과 자굴산의 모습이 제법 아득히 눈에 들어온다. 수박축제 때문인지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다. 궁유면에서 평촌마을로 향하니 가는 곳곳 잔디밭에 사람들이 모여 가져온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붕사 입구에는 발디딜 틈이 없다. 조금 지나 있는 의령예술촌이 한산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붕사는 나중에 찾기로 하고 오늘 최후의 목적지인 찰비계곡을 먼저 찾기로 했다. 궁유면에서 벽계야영장까지는 3.9km. 도로가 잘 닦여 있어 걷는 데 별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밋밋한 길이라서 재미는 다소 떨어진다. 각종 여행정보지에 대부분 5km 혹은 도보로 30분이라고 되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주위 풍광을 즐기며 계속 걸었다.
벽계저수지에 걸쳐있는 다리를 건너니 널따랗게 조성되어 있는 벽계 야영장이 나온다. 야영장을 뒤로 하고 계속 걸어들어가니 제법 비탈진 길이 맞이한다.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하고 경사도 꽤 높아 숨이 턱에까지 차온다. 시계를 보니 무려 1시간 가까이 걸어온 것 같은데도 계곡 물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부분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1시간 반 가량 걸어야 한다는 게 갑자기 생각났다. 문득 ‘이거 장난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 아래로 펼쳐진 계단식 다랭이 논이 그나마 마음을 위로해준다. 그리고 마을이 하나 나온다. 벽계마을이다. 왼편에는 화기를 보관하는 곳이 있고 오른편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는데 벽계마을에서 야영장까지 6km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벽계마을까지만 무려 10km를 걸어 온 셈. 그리고 마을에서 계곡까지 3km 가량 더 걸어야 하고, 계곡 길이가 3km 정도이니 전부 16km는 걸어야 하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남은 거리가 걸어 온 거리보다 짧기에 되돌릴 수도 없다.
정말 1시간 40분 넘게 걸어오니 계곡 물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름다운 찰비계곡의 비경을 맞을 수가 있다. 마침 가족단위로 계곡을 찾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기도 하고 계곡물이 소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 고기를 잡기도 하는 등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윗물이 탁하면 아랫물도 깨끗하지 못한 법. 아랫물이 이렇게 깨끗하니 위쪽은….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계곡을 따라 올라본다. 오를수록 바위는 더 커지고 물은 더 맑다. 계곡이 만들어 놓은 작은 폭포의 줄기도 오를수록 더 굵어지고 힘차다. 중간중간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어 혼자 조용히 계곡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으려니 자꾸 오를 수 밖에 없다.
많은 소가 있어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각시소, 농소, 아소 등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물이 너무 차고 시원해 그런 전설 따위가 관심을 떠난 지는 머언 옛날 이야기. 꽤 올라가니 한적하고 물도 꽤 너른 소가 나온다. 음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 배는 고프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오직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 차가운 물에 내 몸을 담가 더위를 물리치고 땀을 씻는 것.
한 번 더 주위를 확인하고는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었다. 마침 입고 있는 사각팬티가 남색이어서 멀리서 봐도 수영팬티로 착각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가방 속에서 수건을 꺼내 얼굴을 덮고 계곡 물 속에 몸을 뉘이니 배고픔도 쉬이 가버린다. 이태리 타올이라도 준비했으면 때라도 실컷 벗길 텐데 좀 아쉽긴 하다. 한 30분 그렇게 있으니 이제 으스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주워입고는 젖은 팬티는 꽉 짜서 가방에 넣고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노팬티여서 그런지 바지가 가끔씩 끼어 좀 민망하기도 하다. 또 허전한 느낌도 가시질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나고 지치기 시작해 계곡물이 다시 그리워진다. 올 때도 그랬지만 갈 때도 누구하나 차를 멈춰서질 않는다. “야 타”하는 소리를 누구 하나 해줬으면 싶을 정도로 다리가 많이 아파온다. 하지만 누굴 탓할소냐? 그냥 터벅터벅 걸어올 수 밖에…. 차가 있어 계곡까지 20여분 차로 내달려온 사람들이 부러울 수 밖에. 그나마 야영장을 조금 지나 궁유면까지 3km 정도 남았을 때 마산에서 왔다는 한 부부가 차를 세워 태워준다. 그렇게 고마울수가(지면을 빌어 한 번 더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제법 길어진 해도 서서히 취침 준비를 한다. 다들 깊은 수면에 빠지고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맞이하는 일상을 반복하겠지만 찰비계곡은 일년 내내 수려한 물을 뿜어내길 멈추지 않는다. 밤에도 낮에도….
다시 계산해 보아도 왕복 30km는 넘는 거리. 차없는 주인을 만난 두 다리는 한없는 원망을 하겠지….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 가볼만한 곳 : 일붕사

찬란한 184평 동양최대 ‘석굴법당’

의령은 산수가 뛰어난 곳이어서 둘러볼만한 곳이 많다. 찰비계곡쪽으로 코스를 잡았다면 궁유면 봉황산에 자리잡은 일붕사(一鵬寺)와 봉황대(鳳凰臺)를 찾아보면 좋다.
천혜의 자연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위치한 일붕사는 대한불교 일붕법왕 총본산이다. 서기 727년(신라 성덕대왕 26년)에 혜초스님이 이곳에 사찰을 지어 호국영혼을 위안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라는 지장보살의 계시를 받아 창건한 성덕사가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일붕사에는 지장전 64평과 대웅전 120평을 합쳐 184평에 달하는 석굴법당이 있는데 이 석굴법당은 동양 최대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진귀한 법당이어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일붕사에는 법신·보신·화신 등 삼신불과 문수·보현·관세음·대세지·금강장·제장애·미륵·지장보살 등 팔래보살을 모시고 있다.
또 고 일붕 서경보 스님의 불사리 83과와 스리랑카에서 온 부처님 진신사리 2과가 청동사리탑에 모셔져 있어 신도와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화재 후 새로 지어서인지 사찰 안이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다.
일붕사가 있는 봉황산은 거대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연출하는데 봉황대는 모양이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황대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암벽사이로 동굴이 두 개 있는데 모두 자연동굴이다. 또 일년 열두달 넘쳐흐르는 약수터가 있어 언제나 시원한 약수를 마실 수 있어 등반객의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 봉황대 중턱 평지에는 누대 하나가 마련되어 있는데 봉황루다.
녹음 우거진 산 길을 걷는 맛이 솔솔하다. 봉황대를 거쳐 벽계저수지로 빠져 나갈 수도 있다.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무더운 여름철이면 벽계야영장을 이용해 보아도 괜찮을 듯 하다. 야외 취사장과 텐트장, 그리고 방갈로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어 가족단위나 단체로도 이용 가능하고 연인끼리 찾아도 좋을 듯 하다.
또 캠프파이어장도 있고 야간에 모닥불을 피우며 낭만의 정취도 맘껏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샤워장과 수중보·물썰매장·배구장·간이매점·파고라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벽계계곡의 맑은 물이 연중 끊임없이 흐르고 있어 상쾌하고 멋진 나들이가 될 수 있겠다.


▶ 찾아가는 길

창녕나들목 → 의령 20번 국도 방향

찰비계곡을 찾으려면 차량은 필수로 확보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궁유면에서 걸어가려면 다리품을 제법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우산과 자굴산까지 임도가 나 있기 때문에 차만 있다면 두루 돌아볼 수 있다.
찰비계곡 들머리인 벽계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7시 30분, 한 대 뿐이다. 궁유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8시 30분·10시 30분·11시 30분·12시 30분·오후 1시 30분·2시 50분·4시 40분·5시 40분·7시에 있다.
자가차량을 이용하면 진입할 수 있는 곳이 3군데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창녕나들목으로 들어와 의령방면으로 20번 국도를 타고 신반리와 세간리를 지나 우회전 한 후 유곡면 소재지를 지난다. 그리고 궁유방면으로 좌회전 한 뒤 신촌사거리를 지나면 궁유면에 도착할 수 있다.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군북나들목으로 진입한 후 79번 국도를 이용해 의령으로 들어온다. 의령에서 창녕방면 20번 국도를 타고 정곡면소재지를 지나 1011번 지방도를 이용해 궁유면에 도착할 수 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단성나들목으로 들어와 20번국도를 타고 의령~생비량~대의~칠곡~정곡면을 지나 1011번 지방도로 궁유면에 이를 수 있다.
의령의 향토음식으로는 망개떡과 메밀국수, 그리고 소고기 국밥을 들 수 있다. 망개떡은 한여름(6~8월)의 신선한 망개잎을 따 팥을 충분히 달여 멥쌀로 빚은 떡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데 방부제 등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는다. 소고기국밥은 순수 한우를 이용해 만드는데 사골로 국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 살코기만을 달인 국물이라 느끼하지 않고 시원하다. 또 일명 ‘소바’라고 불리는 메밀국수는 화학 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아 국물 맛이 시원하고 일반국수와 달리 매콤하면서도 얼큰해 숙취해소에도 제격이라고 한다.
숙박은 벽계 야영장 근처와 벽계리 마을에 민박집이 여럿 있다. 식사는 준비를 해와 계곡 등지에서 먹어도 되고 아니면 읍내로 나와 향토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봄철 산불예방기간에는 찰비계곡부터 한우산까지 등 일부 구간이 통제되기 때문에 출발전에 알아보고 떠나야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