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 그리움 묻고 녹음에 몸 담고

잠자기 전, 갑자기 기차가 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기차가 지나가는 곳을 찾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볼 만 한 곳이 하동 송림.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에 위치한 하동송림은 300살이 넘는 아름드리 노송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게다가 힘차게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과 강변에 넓게 펼쳐져 있는 백사장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기차를 타고 2시간 반 남짓 걸려 도착한 송림(경남 기념물 제55호)은 역에서도 멀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느 곳이 다 그러하듯 이 곳 송림도 다양한 역사를 담고 있었다.
섬진강을 경계로 두고 있던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이 모여 군사동맹을 맺은 곳으로 유명한데 조선 영조 21년(1745년) 당시 부사 전천상(田天祥)이 방풍방사(防風防砂)용으로 소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바람과 모래를 막아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심었던 나무여서 그런지 그 생김생김이 참 곱상하다.
널따란 주차장을 지나면 왼편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고, 눈앞으로는 모래사장과 섬진강이 펼쳐진다. 사시사철 아무 때나 찾아도 좋을 듯 싶다. 엄마 아빠와 함께 나와 강가 젖은 모래로 두꺼비 집을 짓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도 보이고, 두런두런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 가족들도 보인다. 오붓하게 팔짱을 끼고 백사장을 거니는 커플도 보이고, 산책을 즐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보인다.
강변을 계속 따라 걸어가다 소나무 숲을 바라보니 또 다른 작은 동네를 보는 듯하다. 소나무 숲에 들어서니 더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햇볕이 강해 땀이 비오듯 했는데 숲 안은 별천지다. 퍼붓던 땀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히려 으슥해지기까지 했다.
단체로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놀이도 즐기고 있었다.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아저씨 한 분이 부르는 것 아닌가. 돼지고기 수육이며 맥주와 막걸리 등 온갖 음식들이 가득 있었다. 몇시간전에 먹었던 아침도 이런 음식들을 보니 먹었던가 싶은 기억이 들 정도로 먹음직스러웠다. 두 번을 거절하다 거기에 합류해 음식들을 좀 얻어먹었다. 아저씨들 노래 솜씨에 박수도 쳐보고 아빠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목을 타 넘어들어가는 맥주도 갈증을 해소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죽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소나무 숲 안을 두루두루 다녔다. 주차장에서 가장 떨어져 있는 곳에는 하상정(河上亭)이라는 궁도장이 있다. 과녁 2개를 갖추고 있는데 마침 활을 쏘는 노인들이 다수 있어 잠시 구경을 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언제 어떻게 나갔는지 보지 못한 것 같은 데 잠시 뒤에 과녁에 꽂히는 소리가 들린다. 특히 하상정 안에 있는 소나무는 보호를 위해 출입 구역을 제한해 놓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강가에도 과녁이 하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해질 무렵 송림에서 보는 섬진강 낙조가 근사한 편인데 낮이 길어져서 낙조를 보려면 많이 기다려야 할 듯 싶다. 소나무 숲을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다니니 기차를 타고 여기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변을 거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군데군데 벤치가 만들어져 있어 쉬기에도 편하고 짙게 묻어 나오는 소나무 향기는 머리 끝까지 맑게 해준다.

백사장 찬찬히 거닐다 보면 어느새 7800평 국내 최대 소나무 숲

잠시 생각건대 이런 풍광이면 어느 누군들 시인 묵객 안될까…


또 여기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략 7개 정도의 운동 시설물이 있는데 나들이를 온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낸다. 또 급수대며 화장실 등 필요한 것들이 잘 갖춰져 있어 편리할 듯 싶다. 또 게이트볼 장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게이트볼 장을 보았는데 마침 게이트볼 경기가 없어 아쉬웠다. 씨름장도 있는 게 이색적이다.
송림을 빠져나와 다시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관광버스가 얼마전보다 훨씬 많이 들어와 있다. 얼핏 세어보니 11대, 주로 경남·부산쪽과 광주·전남 쪽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다 어디갔지 싶어 강가를 바라보니 300명은 훨씬 넘을 듯한 사람들이 백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또 군데군데 식당에서 음식을 먹기에 분주했다.
혼자서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바삐 다니는 모습이 궁금해서인지 관리소 직원이 다가와서 묻는다. 취재를 왔다니 소소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원래 1만여평의 땅에 소나무가 빼곡이 들어서 있었는데 홍수방지를 위한 제방공사를 하면서 송림 일부가 훼손돼 지금은 7881평에 620여그루의 노송(老松)과 300여그루의 작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강조하는 것이 국내 제일가는 소나무 숲이라는 것. 이쯤이면 됐다 싶어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숲에 다시 들어갔다. 들고온 얇은 시집을 펼쳐보았다. 한 편도 읽기 전에 어느새 울창한 소나무와 넓은 백사장과 굽이쳐 흐르는 맑은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이 된 듯 하다. 이런 풍광이면 어느 누군들 시인묵객이 되지 않겠는가.

▶ 가볼만한 곳: 섬호정-백운산 바라보면 섬진강 굽이굽이

송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가보고 싶다면 갈마산(渴馬山)에 있는 충혼탑과 섬호정을 찾아도 될 듯 싶다. 송림에서 나와 하동고등학교 맞은편으로 올라도 되고 읍내에서도 오르는 길이 서너갈래 있어 아무데서나 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동고등학교 맞은편에서는 충혼탑까지 차로 오를 수 있지만 땀을 흘리며 도보로 오르면 등산하는 기분까지 들어 일석이조의 효과일 듯.
충혼탑은 애국지사 2위·국군 598위·경찰관 44위·한청기동대 80위 등 모두 724위의 영령을 모시고 있다. 상시 관리자는 없는 듯 한데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충혼탑 앞에서 잠시 묵념을 올리고 충혼탑 바로 앞에 있는 잔디밭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쉬어도 괜찮을 것 같다.
충혼탑에서 읍내로 바로 빠지는 길을 택하지 말고 왼편으로 나있는 길을 택하면 섬호정(蟾湖亭)으로 갈 수 있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세갈래 길로 나뉘는데 잠시 왼쪽길로 내려가봐도 된다.
왼쪽길로 잠시만 내려가면 갈마산 약수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목마른 말이 물을 먹던 곳이라는 갈마산 약수터는 무기물 함량이 높아 몸에 좋단다. 갈림길에서 오른쪽길은 읍내로 내려가는 길이고 곧장 앞으로 가면 섬호정에 이를 수 있다.
섬호정은 조선 고종 7년(1870년) 고을 수령의 부임시 영접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유림들이 향교 뒷산에 옮겨 세운 정자다. 8각 지붕에 2층 누각으로 되어 있는데 누각 자체는 오래되고 방치되어 있어 볼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여기서 건너편 백운산을 바라보면 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 마치 호수처럼 내려다 보인다.
게다가 섬진교가 기다랗게 바라다보이고 쌍계사 방면으로 줄을 지어 가는 차량들의 모습도 눈에 담을 수 있다. 또한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 정자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우거진 녹음이 상쾌하고 아름답다. 이곳 역시 군민들을 위해 체육시설 18기를 비치해 군민들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태양전지를 사용해 햇빛을 전기로 변환해 저장해놨다가 저녁에 불을 밝히는 태양광 가로등이 이런 산 속에서 볼 수 있어 이채롭다. 섬호정에서도 읍내로 빠져나가는 길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송림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빛깔이 더 곱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 되어 가는 기차시간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 찾아가는 길-기차 오전 6시 56분·9시 5분 등 5대

송림을 찾는다면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차량을 이용하는 게 더 나을 듯 하다. 송림만 보고 돌아오기에는 먼데까지 찾은 발걸음이 아쉽기 때문이다.
자가차량을 이용한다면 마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진교IC나 하동IC에서 진입하면 된다. 그리고나면 19번 국도로 송림까지 그렇게 멀지 않아 찾아오기는 어렵지 않다.
반면 대중교통은 2번은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마산에서는 하동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없다. 그래서 진주에 와서 하동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마산에서 진주까지 와 진주에서 하동까지 다니는 버스는 평균 20~30분 간격으로 있어 큰 불편함은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기차를 이용하고 싶다면 기차시간은 필히 알고 있어야 한다. 마산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오전 6시 56분 통일호·오전 9시 32분 무궁화호·오후 2시 통일호·오후 5시 5분 통일호·오후 10시 58분 무궁화호, 5대 뿐이다. 최소한 오전 9시 32분 기차는 타야 한다.
그리고 하동에서 마산으로 오는 기차도 5대 뿐인데, 0시 44분 무궁화호·오전 6시 50분 통일호·오전 9시 50분 통일호·오후 2시 6분 무궁화호·오후 5시 31분 통일호다. 오후 5시 31분 통일호를 놓치게 되면 0시 44분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는 수 밖에 없다. 요금은 기차가 싸게 들 듯 하다. 마산에서 진주까지가 3900원, 진주에서 하동까지가 3800원이 드는데, 통일호를 타게 되면 갈아타는 것도 없이 2700원이며, 무궁화호도 5400원이면 된다.
송림을 찾을 때는 가족단위로 먹을 음식을 가져와서 먹는 게 보편적이다. 아니면 송림공원 내에 있는 식당에서 먹어도 되는데 국물이 시원한 재첩국 백반(5000~8000원)이나 향기가 구수한 참게탕(3만~4만원)이 별미다.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폐기물처리를 원하면 수수료를 받는데 그게 일종의 입장료인 셈이다. 주차요금은 3t이상 6000원, 3t이하 3000원, 경차나 장애인차는 1500원이며, 이륜차 1000원, 국가유공자차량은 면제해 주고 있다. 야간에는 1.5배 더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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