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산(681.5m). 지도에는 영취산으로 나오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냥 영축산이라 한다. 산꼭대기 조금 못미쳐 있는 산성은 지도에도 아예 영축산성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산도 영축이라 이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영축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운 곽재우 장군과 관련된 이야기가 서려 있다. 지금이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당시 장군은 골짜기를 마주보고 나란히 솟은 영축산과 함박산(500m)을 이어놓고 두 곳을 오가며 밀려오는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영축산은 겉보기와는 달리 속이 꽉 찬 산이다. 물론 구계리 골짜기로 들어가 영산향교를 거쳐 오르는 ‘보드라운’ 산길이 있긴 하다. 하지만 늘 산을 곁에 두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심심풀이 삼아 오르는 것이 아니라면, 자갈밭 험한 능선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겠다.

영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장터를 지나 한국통신에서 왼쪽으로 난 콘크리트길을 따라 올라간다. 동네를 세로로 지르는 가운데 길로 계속 오르면 등산길이 비롯된다. 가파른 산길을 20분쯤 오르면 보덕암이라는 조그만 절이 나온다. 산령각왼쪽으로 등산길이 이어지는데 마실 물은 이곳에서 챙겨 넣으면 된다.

여기서부터 40분 가량은 자갈길이다. 능선은 가파르고 바닥은 온통 자갈로 된 너덜 지대. 발을 옮기면 바닥의 돌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너덜길이 끝나면 걷기가 한결 쉬워진다. 여기서는 아래위로 전체를 기분좋게 바라볼 수도 있다. 눈 아래로는 너른 들과 굽이굽이 낙동강이 펼쳐지고 돌아서면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하지만 능선이 휘어져 있어 여기서 1시간 20분여를 더 가야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자칫하면 몸에 밴 땀이 사람을 움츠리게 할 수도 있으니 발길을 서두를 수밖에.

가파른 오르막길도 없고 봉우리도 능선을 오르내리는 정도여서 발걸음이 가볍다. 40분쯤 가면 산성이 나온다. 이 산성터를 따라가다 나오는 세 갈래 길에서 왼쪽을 골라잡으면 된다. 여기에는 마지막 고비가 준비돼 있다. 작은 봉우리에 올랐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바위를 타고 오른다. 다시 내려와 가파른 모랫길을 질러야 한다. 꼭대기는 바위로 돼 있는데 크지는 않지만 전망이 뛰어나다.

내려올 때는 같은 길을 되밟아도 좋고 반대편으로 난 길을 골라잡아도 좋다.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라 쉽게 내려올 수 있다.

이번 나들이길에는 나물을 캘 칼과 바구니(비닐봉지라도 좋겠다)를 챙겨 나서자. 나물을 캐는 것이 여인네나 아이들의 전유물은 아닐진대, 봄이지만 들녘에는 남정네가 보이지 않는다. 등산이 끝나는 즈음에서 부부와 아이들 모두 칼을 꺼내들고 구계리가 있는 골짜기를 따라가며 쑥과 냉이를 뜯으면 어떨까. 그날 밤 쓰는 아이들 일기 내용이 달라지지 않을까. 따뜻한 햇살 아래 어버이랑 함께한 봄나들이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자가 승용차로 가는 경우엔 물통도 미리 챙겨 영축산 맞은편의 함박산 중턱에서 약수를 떠오는 것도 좋겠다. 함박산 약수는 살결을 곱게하고 내장을 다스리는 데 좋기로 이름나 있다. 이곳 영산 사람들은 주로 이 물을 떠 마시는데 물맛이 좋아 이사를 해도 그곳 물에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까운 부곡온천이나 마금산온천에서 나른해진 몸을 풀고 때를 씻어낼 수도 있다. 또 5일과 10일 닷새마다 돌아오는 영산장날에 맞춰갈 수 있다면 향수처럼 남아 있는 아련한 옛 정취를 느끼는 즐거움도 더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자가 승용차로 갈 때는 서마산IC로 들어가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쪽으로 가다 영산 요금소로 빠져 나오면 곧바로 나온다.

아니면 창원이나 마산 쪽에서 지방도 1040호선을 타고 북면 마금산온천을 지나 함안군 칠서면에서 국도5호선을 만나 자동차를 올려도 좋다. 남지교를 건너 창녕 쪽으로 10분 정도 줄곧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영산 시가지가 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는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부곡온천으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오전 7시 첫차를 시작으로 오후 8시 40분 막차까지 30~40분 간격으로 있는 버스를 타고 영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된다. 걸리는 시간은 30분 안팎이다.

△가볼만한 곳

영산 사람들은 애향심과 긍지가 높기로 이름나 있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경남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세운동을 시작했다고 믿고 있으며 영산 쇠머리대기와 줄다리기도 이같은 긍지를 갖는 데 한 몫하고 있다.

그래서 영산 사람들은 그냥 창녕사람으로 뭉뚱그려 일컬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또 조선시대만 해도 별도로 현청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남산 호국공원 바로 옆에는 영산 석빙고가 아담하게 들어서 있다. 보호가 허술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듯도 하지만, 조선 중기에 윤이일이라는 영산현감이 만든 이 얼음 창고는 지금도 안에 들어가면 서늘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옆에 우뚝 솟은 같은 이름의 음식점 때문에 석빙고가 무슨 딸린 물건 같은 느낌을 주어서 아쉽다.

구계리 골짜기에는 신라 말기의 것으로 보이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부처와 후광(광배)이 한 돌에 새겨져 조그만 누각에 갇힌 듯 앉아 있다. 주변에 양초와 음식물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 지금도 사람들이 불공을 들이는 듯하다.

하지만 대대손손 내려오면서 아들 낳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갉아먹은 탓인지, 코는 성하건만 양쪽 볼이 패어 찌그러져 있다.

만년교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돌을 써서 만들고 위에 흙을 깔았다. 1780년 석공 백진기가 만들었으며 1892년 현감 신관조가 석공 김내경을 시켜 중수했다. 원님이 고쳤다고 해서 원다리라고도 하는데 들머리 양쪽에는 13세 천재소년의 글씨라는 ‘만년교’ 표지석이 서 있다.

가을과 겨울철에는 구계리 골짜기에서 나는 향긋한 자연산 송이맛을 볼 수 있으며 축산농이 많아 질좋은 쇠고기와 돼지고기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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