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의 한맺힌 눈물이 빚어낸 그림같은 산

‘한 맺힌 주왕의 눈물이 이런 절경을 만들어 냈구나!’.
3시간 반 가량 먼길을 달려와서야 주왕산(周王山·720m)을 눈에 담아낼 수 있었다. 짙푸른 녹음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고, 계곡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냇물은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녹음을 가슴속에 품고 있어서인지 물도 짙은 녹색이다. 물결이 흐르는 모양까지 그대로 다 보인다. 저 멀리 곳곳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정상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바로 앞에 보이는 기암은 그 위엄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다.
주왕산은 특이하게도 전해 내려오는 사연 때문에 이름이 바뀐 산이다. 중국 당나라 덕종15년(799년)에 진나라 왕손인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진의 회복을 꿈꾸고는 주왕(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웅대한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당 군사에 쫓겨 이 산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산 중턱에 자리한 주왕굴에서 은거하던 어느 날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다가 당의 협조 요청을 받은 신라 마일성(馬一聲) 장군 일행에 발각되어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결국 죽었다. 이후 고려의 나옹 화상이 그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며 주왕산으로 부른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래 명칭은 바위가 병풍처럼 도열해있다고 해서 석병산(石屛山)이었다. 설악산과 월출산과 함께 3대 암산(巖山)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함께 간 총무부 선배와 점심을 먹고 관광을 하기로 했다. 구수한 산나물이 가득 나오는 산채비빔밥은 숟가락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그리고 동동주 한잔 안 할수 없는 법. 부드러운 도토리묵과 함께 동동주 한 사발을 걸치니 절로 흥에 겨워진다. 술을 평소에 거의 마시지 않는 총무부 선배도 맛있다며 두 사발을 연방 비워낸다. 취기가 쉬이 오르지 않고 향긋한, 달짝지근한 동동주가 다른 동동주와 차별을 원한다. 또한 도토리묵은 매우 부드럽고 위에 수북히 얹혀 나오는 산나물도 특색있다.
배도 채웠겠다 동동주도 한 잔 했겠다 이제 떠나보자. 대다수가 왔다가는 코스는 입구에서 제3폭포까지 군데군데 둘러보며 돌아오는 주방계곡 코스. 주방천이 흐르는 길을 따라 계곡의 풍광을 마음껏 즐기며 편하게 갔다 올 수 있다. 그래도 왕복 10여km, 4~5시간은 족히 걸린다.
입구의 대전사(大典寺)라는 절은 주왕의 아들인 주대전의 이름에서 따왔다. 몇몇 식당과 기념품점을 지나면 길이 갈린다. 왼쪽길은 백련암과 광암사를 지나 장군봉으로 가는 길인데 비구니들만 수련하고 있는 백련암(白蓮庵)도 주왕의 딸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오른쪽 길로 잡았다. 기암교(旗巖橋)라는 다리가 나오고 다시 길이 나뉜다. 오른쪽으로 가면 주왕산 주봉에 오르는 길이고, 다리를 지나 곧장 가면 폭포까지 이어지는 주방계곡 코스 길이 나온다. 자하교(紫霞校)에서 길이 다시 갈린다. 곧바로 가면 휴게소까지 바로 가게 되고 다리를 건너가면 주왕암과 주왕굴을 볼 수 있다
주왕암(周王庵)은 주왕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오른편으로 주왕굴에 오르는 길이 나 있다. 푸른 하늘이 내다 보이는 좁은 바위틈 길을 따라 30m쯤 들어가면 주왕이 숨어 살았던 주왕굴이 나온다. 절벽 위에서부터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줄기의 포말로 인해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서려있다. 기다란 쇠 바가지로 떨어지는 물을 한 모금 마셔본다. 이게 주왕의 눈물인가· 가슴이 찡해 온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휴게소를 향해 가다보니 망월대(望月臺)가 나온다. 주왕의 아들 딸인 대전과 백련이 이곳에서 달 구경을 했다고 한다. 아래를 바라보면 수려한 계곡이 아찔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앞을 바라보면 바위 봉우리와 암벽들이 어깨를 맞대고 멋스럽게 펼쳐져 있다. 봉우리 형체가 연꽃 같다고 하여 이름이 지어진 연화봉(蓮花峰)과 병풍을 세운 듯하여 부르는 병풍바위가 나란히 붙어있다.
맞은편에는 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에 은신해 대궐을 건립한 급수대(汲水臺)가 있다. 당시 산상에 샘이 없어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했다해서 급수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급수대와 병풍바위 사이에 남자 성기모양의 봉우리가 있는데 시루봉이다.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같아서 시루봉이라 불린다.
급수대 앞 오솔길을 지나노라면 계곡쪽으로 기울어진 깍아지른 절벽이 금새 무너질 듯하여 식은 땀조차 흐르게 된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계속 올라가 본다. 휴게소 바로 위에 학소교(鶴巢橋)가 있고 돌다리 뒤편으로 경사 90도의 가파른 절벽 모습을 한 게 있다. 청학과 백학 한쌍이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다. 학소대를 지나면 3개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일명 선녀폭포라는 제1폭포는 암벽으로 둘러 싸여져 있다. 끊이지 않는 요란한 폭포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지만 물이 너무 맑아 지금이라도 선녀가 목욕을 하러 내려올 것만 같다.
제1폭포 입구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암석이 우뚝 솟아 있는데 신선대(神仙臺)다. 신선대 위에서 선녀들이 놀다 갔다고 한다.
제1폭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제2폭포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지난해 태풍 루사로 인해 지금은 출입이 통제 되어 있다.
제3폭포는 조금 더 올라가면 있다. 2단으로 되어 있는 이 폭포는 주왕산 폭포 중에서도 규모가 제일 크다. 내려가서 폭포수에 얼굴을 씻으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총무부 선배는 주머니에 안경을 넣고 세수를 하다 그만 안경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그래도 좋단다.
제3폭포를 지나 오른편으로 더 들어가면 내원마을이 있다. 아직도 전기가 없는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인데 지금은 9가구가 살고 있다. 7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는 80년에 폐교된 내원분교는 등산인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시간이 제법 지났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더욱 가볍다. 휴게소에서 바로 뻗은 길을 내려오다보니 연화굴(蓮花窟)이 있다. 너비 3m, 높이 5m, 길이 2m의 이 굴은 주왕의 군사들이 훈련을 한 곳으로, 백련공주가 성불을 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데군데 서식하고 있는 나무들이 너무 다양해 마치 수목원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희귀식물로 알려진 망개나무·복장나무 군락 등 각기 다른 명찰을 달고 있는 나무들에 대한 기억은 당분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아이들의 자연 교육에도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듯 하다.
30여 곳 넘는 명소를 가진 주왕산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치 뿐만 아니라 넉넉한 마음을 가져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나왔던 길을 뒤돌아본다.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고 계곡에서도 불어오는 산바람에 쌀쌀한 느낌이 들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이곳에 눌러 앉아 버리고 싶다.

▶ 찾아가는 길-경주서 포항거쳐 울진 빠져 청송으로

주왕산은 경북 청송군 부동면에 있다. 4계절 아무 때나 찾아도 볼거리가 많고 아름다운 산이다. 가을 단풍도 좋지만 계곡이 수려하고 수달래가 붉게 물든 봄도 좋다.
마산에서 출발하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북부산IC로 진입해 양산·대구 방면으로 내달리다 다시 경주IC로 진입하면 된다.
경주에 들어서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안강 방면으로 가다 다시 28번 국도를 이용해 영덕·울진 방면으로 가다보면 청송으로 빠지는 31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914번 지방도로 진입해 들어가면 주왕산 국립공원에 닿을 수 있다. 거리를 전부 합하면 250여 km 정도 되며 3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또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안동IC로 진입, 안동시내를 거쳐 청송으로 가도 된다. 역시 시간이 비슷하게 걸린다.
되돌아 올때는 영덕으로 넘어가 포항과 경주를 거쳐 와도 된다. 거리는 20km 정도 더 되지만 길이 좋아 시간은 오히려 적게 걸릴 수도 있다. 특히 다이나믹한 드라이브를 원한다면 영덕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를 꼭 타야 된다. 우설령과 피나무재 등 가파른 고갯길을 연거푸 넘는 주왕산의 남쪽 도로인데, 차가 다닐 수 있는 우리나라 도로 중에서 가장 험하기로 소문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1박을 고려하는 게 나을 듯 하다. 마산에서 대구로 가서 청송행 버스를 타면 된다. 청송읍에서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중이며, 조금 더 들어가야하는 절골계곡은 1시간 간격으로 있는 이전리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현지 사정에 따라 교통편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출발전에 꼭 확인을 하는 것이 낫겠다.
잠자리는 군내 여관과 호텔이 있고, 매표소 건너 민박집이 형성되어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가격이 차이가 나는데 여느 관광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리고 매표소 아래 야영장이 있다. 다가오는 여름철에는 야영을 해도 괜찮은데 텐트 300동 규모에 사용요금은 3,000~6,000원으로 저렴하다. 야영장은 예약을 할 수도 있다. 주차장은 22,700평에 대형 86대와 소형 183대가 주차할 수 있는 규모이고, 가격은 4,000원이다.
등산코스는 여행책자마다 등산코스가 전부 다른데, 봉우리와 계곡·암자 등 30여 곳이 넘는 곳을 지도를 보며 직접 정하는 게 나을 듯 하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찾는 코스는 상의 매표소(대전사)에서 제3폭포까지 이르는 주방계곡 코스다. 등산을 좋아하면 주봉·가메봉·왕거암·금은광이·태행산·대둔산·장군봉 등 많은 봉우리가 있으니 선택해서 등반하면 된다. 상의 매표소에서 1,000원에 판매하는 지도에는 거리와 시간까지 적혀 있어 당일 바로 코스를 잡을 수도 있다.
음식은 국립공원내의 여러 식당에서 산채비빔밥(5,000원)과 산채정식(10,000원)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산더덕구이(15,000원)와 표고부침(7,000원)·파전(5,000원)을 먹을 수 있고, 손칼국수(3,000원)로 저렴한 한 끼를 해결할 수도 있다. 동동주(5,000~6,000원)와 더덕약주(1컵 5,000원)·송이약주(1컵 1만원)도 이 지역의 특산품이다.
그리고 산불예방을 위해 개방등산로 외 전지역을 통제하기도 한다. 연중 개방등산로는 주산지입구~주산지·대전사~제3폭포·대전사~광암사·월외매표소~너구마을·내원동~제3폭포·자하교~학소교 등이다. 매년 춘계(3월 1일~5월 31일)와 추계(11월 15일~12월 15일)로 나눠 통제하는데 올해는 관광객의 요구가 많아 5월 31일까지 통제 없이 등산할 수 있다.

▶ 가볼만한 곳-연못비친 제모습보며 미소지는 왕버들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나와 영덕 방면으로 10여분 내달리면 주산지와 내주왕(절골계곡)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좁은 비포장도로는 마침 공사중이어서 좀체 속도를 내기 힘들다.
5분여 더 가서 도착한 주산지(注山池)는 신비로운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 못은 조선 숙종 46년인 1720년 8월에 착공해 이듬해인 경종 1년 10월에 완성되었다. 하류지역의 가뭄을 방지하기 위해 지은 인공 저수지인데 아직도 주산지 아래 농가는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이 자그마한 못을 더욱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물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왕버들이다. 30여 그루가 물 속에서 서식을 하고 있는데 나무의 생김새도 기묘하지만 물 속에서 살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모습도 제각각. 어떤 놈은 절반쯤 누워있고, 어떤 놈은 아무렇게나 자란 가지가 물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도 있다. 또 어떤 놈은 길게 뻗은 제 팔로 옆에 있는 놈을 부둥켜 안고 있는 듯하다.
물이 너무 맑아 그 위로 또다른 자기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때마침 엷게 깔리는 안개 때문에 분위기가 음침하다. 왕버들이 마치 괴수로 변해 공격해 올 것만 같다. 못 주위로는 150여 그루의 능수버들이 왕버들을 지키는 신하 노릇을 하고 있다.
주왕산을 찾은 사람들이 주왕산 절경에 취해 주산지를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산지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이한 곳이다. 올 6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을 하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이곳에서 촬영돼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질 것 같다.
주산지 입구에 절을 하나 지어놨는데 그 절이 주 촬영지다. 물 위에 떠다니는 절이다. 지금은 못 가에 묶여 있는데 출입통제를 시켜놓고 있다. 하지만 살짝 겉모습만이라도 보고 갈 수는 있다.
주산지는 둘러보는데 30분이면 족하다. 차를 돌려 나오다 절골계곡을 들러보아도 시간은 충분하다. 내주왕 계곡에 있는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곳이다. 역시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이곳도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8km 가량 되는데 외주왕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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