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선 기개 천근 몸 사르고

“정말 좋은 산이야. 가보면 후회는 안 할거야.”
한 선배기자가 괜찮은 산이라며 소개해 준 곳이 바로 함안에 있는 여항산(艅航山·770m)이다. 서북산(西北山·738.5m)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여항산은 깊고 깨끗한 계곡과 바위로 이뤄진 봉우리를 자랑한다.
함안은 물이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풍수지리상으로 좋지 않게 여겼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지명 곳곳에서 나쁜 풍수를 없애보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여항산을 ‘배가 닿는 포구’를 뜻하게 해 높이를 낮추고, 산 건너편 낮은 지역을 대산면(代山面)이라 하여 반대로 높은 지형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니까 여항산이라는 ‘포구’를 바라보면 북쪽으로 흐르는 물이 마치 남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래저래 여항산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멀리서 정상을 바라보면 배의 돛처럼 보이기도 하고, 갓의 윗부분 같기도 해 ‘갓봉우리’ ‘갓더미산’이라고도 한다. 또 6·25때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미군의 희생이 많아 미군들이 저주의 언사로 “갓 뎀(God Damm)”을 연발했다 하여 ‘갓데미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진동 방면으로 15분쯤 지나니 여항면사무소 앞에서 멈춰선다. 면사무소를 조금 지나니 오른쪽으로 여항산 가는 길이 나 있다. 아스팔트포장길이어서 흙길 보다는 재미가 덜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가면 나름대로 재미는 있다.
오른편에 꽤 넓은 봉성저수지가 맑은 여항산의 정기를 받은 문지기 마냥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2km 남짓, 15분정도 걸어들어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곧바로 직진하면 별천계곡이 유명한 별천마을과 주촌·대촌마을로 들어가는 길이고, 오른편이 여항산 등산로인 좌촌마을이다. 좁은 길 양옆으로 키작은 나무가 예쁘게 줄을 지어 서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왼편으로 장승 4개가 인사를 하는 양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널따란 주차장이 나온다.
마을에 들어서니 활인정이라는 쉼터가 있고,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그 쉼터를 뒤덮고 있다. 350살이나 먹은 이 나무는 높이가 16m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보호수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시멘트 길을 계속 따라가면 ‘경남곤충연구소’가 있는데 그 앞에서 왼편으로 10여분 걸어 올라가면 목장이다. 여기서부터가 사실상의 등산 들머리인 셈. 이제부터 제법 가파른 산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며칠 계속해서 내린 비로 촉촉해져 있는 산 길은 조금 미끄럽기도 하지만 느낌이 좋다. 게다가 울창한 숲은 햇볕을 가려주어 더운 느낌을 제법 가시게 한다.
그렇게 30여분 오르면 가뭄에도 물이 잘 마르지 않는다는 갓샘이 있다. 조그마한 생수병에 담겨 있던 물은 목을 축이기도 하고 흘러내린 땀으로 따가운 눈을 씻다보니 어느새 바닥이 나고 없다. 잘 됐다 싶어 얼른 가서 목을 축이고 물을 받아 얼굴이며 목 둘레도 씻어본다.
가파른 길을 올라와서인지 상당히 힘들었는데 ‘물의 구원’을 받고 나니 힘이 다시 솟는다. 마치 이제 등산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지만 급경사는 끝날 줄을 모른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다는 느낌은 안 든다. 그리고 오를수록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군데군데 보인다. 그렇게 또 30여분 오르니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팻말엔 좌천 4km, 미산령 2km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정상이 바로 앞이다. 이제 흙길 보다는 돌길이 더 많이 나온다. 게다가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손도 쓰게 된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나무를 잡기도 하고 바위에 몸을 의지하게도 된다. 그렇게 10여분이면 정상이다. 북쪽으로 함안군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항산 말고도 광려산과 방어산·서북산이 남으로 함안을 싸고 있어 물이 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온통 바위로 된 정상이 이색적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군데군데 매여 있는 로프가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까마귀 너댓 마리가 음침한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아담한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770m. 높이도 만족스럽고, 주위 경관도 수려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옆에는 널따란 바위가 있다. 10여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산할 때는 더 주의를 필요로 한다. 로프를 꽉 잡고 발 아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암벽을 내려가야지 급하게 내려가려다가는 추락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200m쯤 내려가면 갈림길이 다시 나온다. 능선길을 계속 따라가면 서북산에 이르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왼편으로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편안한 길. 울창한 나무숲 사이의 길을 걷고 있으면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밑둥치에서부터 두 갈래나 세 갈래로 나뉘어 쭉 뻗어 있는 소나무가 신기하다. 군데군데 그런 모양의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마치 산책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대략 30~40분이면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흠뻑 젖은 옷에서는 진한 땀 냄새가 물씬 풍긴다. 게다가 시장기도 느껴진다. 하지만 흘린 땀의 대가는 충분했다. 함안군에서 걸어놓은 펼침막(플래카드)에 적힌 ‘산행삼행(山行三行)’ 문구를 보며, 산사람의 마음을 되새겨 본다. ‘가지고 가는 것 - 도시락·못 가지고 가는 것 - 담뱃불·가지고 오는 것 - 쓰레기’.

▶ 가볼만한 곳-‘불꽃 향연’ 이수정 낙화축제 오세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교통편 때문에 다른 곳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 여항산 등반만으로 만족해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가차량을 이용한다면 읍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산리에 있는 무진정(無盡亭)을 들러보아도 좋을 듯 하다.
이수정이라고도 부르는 이 곳은 조선시대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무진 조삼(趙參)선생을 기린 곳으로 유형문화재 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못속에 있는 정자 영송루(迎送樓)가 그렇게 신기하게 보일 수 없다.
게다가 오는 8일 이수정 일원에서 오후 7시에 ‘제13회 이수정 낙화놀이’가 열린다. 조선 중엽부터 매년 4월 초파일 전후로 열렸던 함안 고유의 민속놀인데 연등과 연등사이에 참나무 숯가루로 만든 낙화를 매달아 불을 붙여 꽃가루처럼 물위에 날리는 불꽃놀이다. 연못 위로 떨어지는 불꽃이 장관이다. 마침 올해 석가탄신일이 어버이 날과 같은 날이어서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와 보면 좋은 ‘효도 선물’이 될 것 같다.
또 3일부터 사흘간 법수면 악양마을 남강변 일대에서 제3회 남강야생화 축제가 열린다. 각종 야생화가 전시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어린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선물’로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한다면 자연속의 아름다움 속에서 상쾌한 봄을 만끽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전야제는 재등점화식과 불꽃놀이 등으로 첫날(3일) 오후 7시부터 1시간 가량 펼쳐진다. 그리고 4일과 5일 이틀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희귀 야생화와 야생화 초청작품 전시가 계속된다. 또한 경비행기 묘기와 패러글라이딩 묘기 등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고, 네잎크로바 찾기, 모래성 쌓기 등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리고 토기와 토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고, 널뛰기·제기차기·투호놀이·그네타기 등 전통민속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손잡고 산책하기 좋은 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야생화 자연 초화류 코스를 비롯해 자운영·유채·갯버들 코스 등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단위는 물론 연인끼리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문의 함안군 문화관광과 (055-580-2051).

▶ 찾아가는 길-대중 교통 7시·14시·17시 3대뿐

여항산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지만 대중교통은 많이 불편하다. 마산이나 진주에서 함안까지 가는 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많다. 하지만 함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주동리까지 가는 버스가 불과 3대 뿐이어서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오전 7시 10분에 한 대 있고, 오후 2시 10분과 5시 10분에 있다. 그 버스가 다시 읍내로 나가기 때문에 등산 후에는 탈 만하다. 주동리에서 3시와 6시에 탈 수 있다. 시간을 잘 맞춰 버스를 탈 수 있다면 좌천마을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아니면 읍에서 진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도 된다. 1시간 간격으로 있는데 여항면사무소 앞에서 내려 2km 남짓 걸어 들어가야 하는 불편한 점만 감수하면 된다. 그것도 불편하다면 읍에서 좌촌마을까지 택시를 타면 된다. 요금은 7000원 가량 나온다.
하지만 여항산 인근에는 둘러볼만한 곳이 많기 때문에 자가차량을 이용하는 게 더 현명할 듯 하다. 진주나 마산방면에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함안 IC로 진입한 후 읍에서 진동방면으로 지방도 1004호를 이용해 약 8km 들어오면 여항면사무소를 만날 수 있고, 여기서 우회전 해 좌촌마을로 들어서면 된다.
반대로 진주나 마산에서 국도를 이용해도 큰 불편은 없다. 진주에서는 국도 33호선을 타고 오다 14호선으로 바꿔, 마산에서는 2호선을 타고 오다가 함안 방면으로 진입하다 역시 여항면사무소 앞에서 좌회전해서 들어오면 된다.
산행은 대략 7개 코스로 나뉘는데, 좌촌에서 정상에 올라 좌촌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고, 좌촌에서 정상에 올라 서북산을 타고 갈밭골로 내려오는 제법 먼 코스도 있다. 또 좌촌에서 정상에 오른 후 미산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가 있고, 미산에서 정상에 올라 서북산으로 해서 갈밭골로 내려오는 5시간 넘게 걸리는 코스도 있다.
또 진주에서 2번국도를 이용해 발산리 봉암에서 오를 수도 있고, 여항리 둔덕에서 정상에 오를 수도 있다. 그리고 군북면 사촌에서 의상대를 보며 오르는 비교적 완만한 코스도 있다.
좌촌마을에는 식당으로 여항산 가든(583-5450)과 산촌산장(582-2466)이 있다. 함안에서 유명한 염소불고기를 맛 볼 수 있고, 촌닭 백숙·오리 불고기·멧돼지 고기를 먹어도 된다. 숙박은 읍으로 나가 여관을 이용해야 한다.
등산을 하면 땀을 많이 흘리게 되고 갈증을 느낄 수 있으니 땀을 닦을 수 있는 수건과 생수 한 병 준비하는 것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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