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vs 추미애의 개혁해법에 대해

민주당이 기로에 서 있다. 대선 직후 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던 개혁파 의원들은 개혁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채 표류하다 결국 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지금 유시민의 개혁당이 25일 제안한 ‘범개혁세력 단일정당'이라는 화두가 놓여 있다. 지역구도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정책지향의 개혁신당을 출범시키자는 것이다. 당연히 이 제안은 민주당의 개혁파 의원들 내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추미애 의원은 27일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권재창출하라고 표를 줬더니 신당을 하면서 버리고 가면 뭘로 지지세력한테 표를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진정한 개혁은 구주류 타도가 아니라 제도개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기자는 유 당선자와 추 의원의 상반된 발언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개혁당의 제안은 분명히 우리 정치가 가야 할 프로그램적 성격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당도 수십년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만들어낸 이력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이력은 1987년의 실패로 인해 사실상 지역구도에 함몰돼 있는 실정이긴 하다. 그렇다고 신생 개혁당의 제안이 지금 현실상황 속에서 성공가능한가를 묻지도 않고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려있다. 생각해 보자.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데서 발생하기 쉬운 초보적 실수가 있다. 존재하는 사실과 있어야 할 당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따라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적 기준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실관계에 대한 다음과 같은 판단이다.

◆ 노무현의 당선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

맞는가? 틀렸다. 노무현의 당선은 기본적으로 전두환의 민정당을 계승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아닌 김대중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호남인의 ‘정당감정'이 ‘절대적' 토대를 이루고 여기에 중부권(영남권 일부 포함)의 젊은 개혁 성향의 지지표가 합세하여 승리를 일궈낸 것이었다. 사실관계에 대한 아주 쉬운 분석이다. 그러나 여기에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이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이 아니다. 노무현의 승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하여온 낡은 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승리이다. 비공식적인 정치자금을 만들어 동원하는 정치에서 국민이 성금을 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정치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대한 미래의 승리이다.”(조순형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3명, “낡은 정치의 청산과 새로운 정치를 열어가기 위한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한다”, 2002년 12월 22일.)
민주당 의원들이 선거과정에서 자당 후보를 돕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많은 국민들의 개혁열망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위의 사실관계 분석엔 분명히 한나라당의 노무현이 아닌 ‘민주당'의 노무현에게 투표한 절대다수의 호남인들(말을 바꾸면 ‘한나라당'의 이회창에게 투표한 대다수의 영남인들)은 묻혀 있다. 왜 묻혀 있는가? 개혁파의원들에겐 그들은 지역감정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당위로써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의 당선을 통해 개혁의 열망을 확인한 것이 사실이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지역구도를 완전히 극복하는데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좀더 실감나게 말한다면 ‘노무현 후보(!)로도' 지역구도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묻자. 노무현 후보의 개혁열풍으로도 청산하지 못한 지역구도가 내년 총선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가? ‘바람직한' 개혁신당이 출범만 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지역구도를 노도처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럴 수 있다고 보는 건 착시현상일 뿐이다. 다음 테제는 개혁세력이 승리‘해야 한다'는 당위적 열망이 개혁세력이 승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판단으로 바뀌어서 나타난 두 번째 착시현상이다.

◆ 유시민의 당선은 개혁세력의 승리다

맞는가? 또 틀렸다. 왜 틀렸다고 하는가? 민주당의 갈 곳 없는 표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는가? 기권했거나 대체로 유시민 후보에게 갔을 것이다. 그러면 유시민 후보에게 간 민주당표는 무조건 개혁세력의 표인가? 그래서 앞으로 개혁신당과 민주잔당 그리고 한나라당 등이 경쟁하면 이 결과로 봐서 개혁신당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실제로 덕양갑에서 개혁당 유시민 후보가 거둔 승리는 신당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촉진하는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 민주당의 간판보다는 후보의 개혁성이 더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은, 민주당 내부에서의 신당에 대한 불안감을 일정 부분 덜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창선, <오마이뉴스>, 2003년 4월 25일자.)
이 분석(투표율 문제는 차치하더라도)에도 여타 두 지역구에서의 개혁당의 부진은 빠져 있다. 즉 유시민 지역구의 갈 곳 없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모두 개혁성향으로 간주되고 있음에 반해 여타 두 지역구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왜 여전히 비개혁적인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이 개혁성과는 거리가 먼 한나라당의 승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분석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특별히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가? 반복하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당위적 열망이 그러고 있다는 존재론적 분석의 냉정함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실제로 우리의 정치상황이 지금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기자의 당위적 바람일 뿐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정리해보자. 민주당의 이중모순을 타개할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 분당인가 연합인가? 연합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정당 내에서의 이질적인 세력간의 연합을 말한다. 이것이 불가능한가? 이념이 다른 정당간의 연합도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능한데 같은 정당에 속했던 구성원간의 연합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분당을 제안(또는 구상)하고 있는 개혁세력은 분당하여 범개혁세력의 순수한 결집이 있으면 세상을 얻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기자는 이러한 주장이 과학적인 분석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순수성에 대한 열망(예컨대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반대했던 순수성과 같은 열망)에서 나온 말이라 생각한다.
결론은 이것이다. 민주당의 개혁세력은 유 당선자의 개혁당이 대구에서도 한나라당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까지 기다려라. 그런 다음 선거제도(사표방지제도)에 대한 대책을 세워 분당하라. 대책이 없으면 추 의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당내 연합하라.
현재로선 민주당 기반을 이용하여 노무현 정부의 개혁에 최대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 그나마 이 나라 정치선진화의 마지막 희망이다. 내년 총선의 승패는 분당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개혁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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