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부터 조선까지···민가에 감춰진 ‘1500년 역사’

부곡 온천과 화왕산 억새 때문에 유명해진 창녕은 가야와 신라시대 문화 유산이 곳곳에 널려 있는 곳이다. 내 발로 직접 유적을 찾아나서 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부산을 떨며 출발을 했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50분 정도 지나니 창녕읍에 도착했다. 전날 잘 아는 선배에게 물어보아 직접 찾아갈 곳 10여 군데를 정하고는 나름대로 코스를 잡았다. 비가 다시 내릴지도 몰라 모자를 눌러 쓰고 짐을 최소화 해서 몸은 비교적 가벼웠다.
첫 번째로 찾아보고자 한 것이 ‘직교리 당간지주(直橋里 幢竿支柱)’. 창녕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맞은편 개천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작은 다리가 나오는데 두 번째 다리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사실 찾기가 꽤 어렵다. 민가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찾아봐야 한다.
직교리 당간지주는 도 문화재자료 17호다. 당간은 사찰의 정문에 해당하는 곳에 세워지며, 절의 각종행사때 이곳에 당이라고 불리우는 기치를 높게 매달아 두는 간지대(竿支臺)로서 일명 짐대라고도 불린다. 당간에는 아래위로 2개의 구멍이 각각 파여있고, 그 중 기둥 하나의 꼭대기 부분이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는데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직교리 당간지주를 찾았으면 다음은 ‘술정리 서삼층석탑(述亭里 西三層石塔)’을 찾아야 한다. 개천 두 번째 작은 다리를 건너 논길을 따라 100여m 들어가면 세갈래로 나눠진 논길에 서삼층석탑이 우두커니 서있다. 통일신라시대 2중기단 위에 세운 3층석탑으로 높이가 5.1m인 보물 520호다. 상층부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만 군데군데 틈새가 많이 벌어져있고 뭔가 세련되지 못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하지만 보물이 이렇게 논길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며,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지는 게 신기하게 보인다.
서삼층석탑을 보고 논길을 따라 계속 걸어나오면 한국통신 창녕지사 옆 골목으로 나오게 된다. 왼편 아래로 보면 창녕시외버스터미널이 내 위치를 알게 해준다. 이제는 ‘술정리 동삼층석탑(述亭里 東三層石塔)’을 보러 가야 한다. 한국통신 창녕지사에서 맞은 편으로 건너가면 초원빌라가 나오는데, 그 옆 골목길을 계속 따라 들어가면 된다. 골목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앞으로 곧장 나아가면 별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좁은 골목길을 계속 따라 들어가면 제법 너른 공간이 나오는데 그 왼편에 국보 34호인 동삼층석탑이 위엄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오른편에는 술정리 동회관이 있고, 그 위편으로는 읍 시장과 복개천이 흐르고 있다.
이 탑도 서탑과 마찬가지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서탑보다 조금 더 높은 5.7m지만 상륜부가 떨어져 나가고 없다. 하지만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크기와 조각수법이 불국사 석가탑과 견줄만 하다고 한다. 제법 너른 기단은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인지 번질거리는데 진흙빛이 군데군데 물들어 있고, 패인 홈도 곳곳에 보인다. 비록 많이 훼손됐기는 했지만 전체가 매끄럽고 장중한 기풍이 그대로 묻어 있다.
동삼층석탑 부근에는 중요민속자료 10호로 지정된 ‘하병수씨 가옥(河丙洙氏 家屋)’이 있다. 동탑 왼쪽 골목길로 계속 들어가다보면 하병수씨 가옥을 만날 수 있다. 흔히 골목길에 접해있는 가옥을 보고 ‘저게 무슨 중요민속자료지?’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집 뒤편에 억새로 지붕을 엮은 초가가 있는데 그게 중요민속자료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초가인 이 집은 부엌과 안방, 대청과 건넛방 등 4칸으로 되어 있다. 특히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 유의해야 할 점이 조그마한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엄청 사납다. 사진을 담아보려고 살금살금 다가가 찍는데 얼마나 영리한 지 집을 한 바퀴 돌아와 벌써 자리잡고는 어르릉 거린다.
겨우 사진을 담은 뒤, 큰 숨을 한번 쉬고는 골목길을 계속 걸어나가는데 이번에는 제법 큰 개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마구 쫓아오는 것 아닌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마구 달리니 이미 큰 길로 나와 있다. 개는 쫓아오기를 포기했는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맞은편에 명덕초등학교가 보이는데 그 개 때문에 내가 찾고자 한 곳을 쉽게 찾은 것 같다.
이 곳 명덕초등학교 맞은편에는 보물 310호인 ‘창녕 석빙고(昌寧 石氷庫)’가 있다. 너무 쉽게 찾아서 인지 기분이 좋아진다. 석빙고는 조선시대에 얼음을 저장하던 시설인데, 남쪽으로 정사각형 입구를 내어놓았다. 길가에 있어서 얼핏보면 누군가의 거대한 무덤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 길가와는 반대편에 입구가 있기 때문에 돌아가서 자세히 보아야 한다. 석빙고 옆에 있는 비를 통해 조선 영조 18년인 1742년에 축조되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걸어나와 명덕초등학교에서 화왕산을 바라보며 올라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이 박물관과 교동 고분군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이 만옥정 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박물관 바로 맞은 편에는 사적 80호인 ‘교동 고분군(校洞 古墳群) 이 있다. 완전한 조사보고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이 유적의 성격을 완전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돌방(石室)은 세 벽을 쌓고 한 쪽 짧은 벽을 입구로 매장했던 앞트기식(평면횡구식·平面橫口式) 돌방무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비화가야(非火伽倻) 왕들의 묘역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석곽묘지만 목곽묘의 형태가 남아 있어 고분군 역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시 걸어나와 사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만옥정 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창녕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데 몇몇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을 들어서면 연두색 페인트를 칠한 ‘UN 전적비’를 만날 수 있는데 별다른 느낌이 안 든다. 지나치면 바로 앞에 ‘신라진흥왕 척경비(新羅眞興王 拓境碑)’가 있다. 국보 33호인 척경비는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었는데 1924년에 만옥정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진흥왕 22년인 561년에 세워진 척경비는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지만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라 부른다고 한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박물관에 탁본을 떠 놓은 것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다. 그리고 도 문화재자료 218호인 창녕 척화비도 있다.
만옥정 공원에는 지압보도가 있고 식수대(?)가 있다. 갈증이 나서 몇 모금 마시고 나니 그 식수대가 지압보도를 걸어온 뒤 발을 씻는 세족대가 아니던가.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
야외 공연장을 지나니 ‘창녕객사(昌寧客舍)’와 ‘퇴천삼층석탑’이 있다. 유형문화재 231호인 창녕객사는 축조 연대를 알 수 없고, 상당부분 훼손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집인데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걸로 봐서 300~400년 전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바로 앞에는 유형문화재 10호인 퇴천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도 이중기단 위에 3층탑신을 세운 석탑이다. 이끼가 많이 끼어 있고 역시 꼭대기 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어 애처롭게 보인다.
쉬엄쉬엄 도보로 이 정도 둘러보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 영산으로 가도 곳곳에 유적이 널려 있고, 인근 관룡사 내에도 엄청난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땀을 흘리며, 다리 품을 팔아가며 유적을 찾아보니 문화 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된다. 시간을 내서라도 다리 아픈 보람을 느껴보면 좋을 듯 하다.

▶ 찾아가는 길-마산~창녕 밤 9시까지 운행 요금소에서 왼쪽으로 빠져야

마산에서 창녕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0~30분 간격으로 있어 좋은 편이다. 창녕에서 마산으로 오는 차편도 오전 6시 4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역시 20~30분 간격으로 있다. 소요시간은 대략 50분.
진주나 창원에서는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마산에서 타야 하지만, 마산까지 오는 버스가 역시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자가차량을 이용한다면 진주, 창원, 마산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방면으로 가다 창녕 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요금소를 지나면 바로 삼거리가 있는데 왼편으로 빠지면 읍내와 화왕산으로 들어서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포늪으로 가게 된다.
읍내에 각종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숙식 해결은 간단하다. 창녕에서는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데 시골장을 둘러보고 장터에서 한 끼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호텔급 숙박시설을 이용하고 싶다면 부곡 온천 부근으로 이동하면 된다. 부곡 온천 주위에 10여 개의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 가볼만한 곳-화왕산에 자리잡은 관룡사

옥천리에 자리한 관룡사(觀龍寺)에도 국보는 없지만 10개가 넘는 문화 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화왕산 중턱에 자리잡은 관룡사에 가려면 창녕IC를 빠져 나와 밀양방면 5번국도로 15분 정도 가면 계성면이 나오고 다시 군도를 이용하여 15분 정도 더 가면 옥천계곡에 이르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창녕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옥천리행 버스를 타면 된다.
관룡사 입구에는 2개의 장승이 좌우로 마주보며 서 있는데 자연석에 남녀상을 각각 새긴, 민속자료 6호 석장승(石長丞)이다.
입구를 지나쳐 만나게 되는 목조건물 관룡사 대웅전(大雄殿)은 보물 212호다. 이 건물은 1965년에 해체, 보수 공사를 했는데 공사때 발견된 상량문에 조선 태종 원년인 1401년에 창건 되었고, 임란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9년인 1617년에 재건, 영조25년인 1749년에 중창했음이 밝혀져있다.
약사전(藥師殿)도 보물 146호인데, 역시 조선시대 목조건물이다. 약사전 단칸 법당 안에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있는데 이 역시 보물 519호다. 석조여래좌상은 높이 110cm로 삼단의 팔각연화대좌(八角蓮花臺座) 위에 앉아 있는데, 오른손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 위에 편안히 내려놓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놓여 있는데 뭔가를 받쳐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팔각연화대좌가 불상 크기에 비해 좁아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약사전 앞마당에는 3층석탑이 있는데 도 유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되어있다.
그리고 인조 12년인 1634년에 건립된 원음각(圓音閣)이 있는데 건물이 정향을 갖지 않고 대웅전의 중심축 선상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또한 관룡사에는 승려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浮屠)가 절 내에 모두 7개 있다. 대표적인 부도로 꼽는 것은 절 북쪽 화왕산에 오르는 길 옆에 있는 것이며, 입구에도 1m가 조금 넘는 부도 2개를 볼 수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20분 정도 투자해 용선대로 올라가 보길 권하고 싶다. 등산길을 따라 절 서쪽 봉우리인 용선대에 오르면 보물 295호인 석조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을 만날 수 있다. 봉우리에 앉아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곳에 와서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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