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이 전해오는 가장 한국스런 하회마을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豊川面) 하회리(河回里)에 있다. 이 마을은 지난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73세 생일 기념방문으로 세계에까지 널리 알려진 곳이다. 태백산맥 자락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낙동강이 서 안동을 태극 모양(S자)으로 휘돌아 흐르는 곳에 만들어져 ‘하회(河回)’라는 지명을 얻었고, ‘물도리동’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이 마을은 또 조선초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류종혜(柳宗惠) 선생이 터를 잡은 후 풍산(豊山) 류(柳)씨가 600여년간 살아오던 전형적인 집성촌이다. 조선 중기 유학자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선생과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2시간 넘게 달린 고속도로를 벗어나 안동으로 접어드니 이제야 만개한 벚꽃이 터널을 만들고 있다. 화사한 벚꽃의 영접을 받으며 자꾸 좁아지는 흙길을 접어드니 옛 마을을 접하게 된다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흙길을 재미있게 따라가니 널따란 주차장이 나오고 드디어 초가며 기와집 등 옛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낙동강 줄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모두 294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실제 살고 있는 집은 107가구라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하회탈 모양의 장승이 반갑게 맞이한다. 앞으로 나 있는 길을 계속 따라가 본다. 첫 갈림길에 커다란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중심부에 양반들의 가옥인 기와집들이 몰려 있고, 그 바깥으로 서민들의 초가가 둘러져 있다.
일단 왼편으로 가 보았다. 몇몇 기와집을 지나 만날 수 있는 집이 하동고택(河東古宅)이다. 현종 2년(1836년)에 용궁현감을 지낸 류교묵이 세운 집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오니 길이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눠진다. 골목길이 많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왔던 길을 돌고 돌아 헤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외곽을 쭉 둘러본 뒤 다시 한가운데로 난 골목길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남촌댁이 보이는 데 입구는 가운데 길에 있는 모양이다. 아직까지 피어 있는 목련이 이채롭다. 군데군데 개나리와 진달래도 보인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계속 따라 들어가니 골목길 끝이 보인다. 돌담과 초가 지붕을 바라보는 맛이 구수하다. 왼편으로 여러 갈래로 나있는 골목길이 많지만 일반 민가다.
골목을 벗어나니 시원하게 강변의 모습이 펼쳐진다. 한달음에 내달려가 강의 정취를 느껴보며 뒤돌아보니 마을 전경이 차분하게 눈에 들어온다.
강가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정면에 커다란 기와집 2채가 보인다. 오른편에 조금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忠孝堂)이고, 왼편에 있는 것이 하회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인 류운룡 선생의 종택인 양진당(養眞堂)이다.
충효당은 류성룡 선생이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여생을 보낸 곳이다. 가옥 내부에는 선생의 유물을 전시한 영모각(永慕閣)이 있는데,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기록한 친필 회고록인 징비록(懲毖錄)이 있다. 징비록은 국보 132호로 국보 121호인 하회탈과 함께 하회마을의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강변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간단한 민속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투호·그네·널 등이 있는데, 관광객들마다 한번씩 해보곤 지나간다.
왼편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반긴다. 만송정(萬松亭)이다. 휘어져 있는 것도 있고, 곧게 뻗은 것도 있고, 거의 드러누운 것도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짙은 흙내와 초가 냄새와는 달리 시원한 소나무향이 색다른 마을 분위기를 끌어낸다.
만송정에 들어서니 쉽게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고운 입자의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맑은 낙동강이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해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아니 해변보다 더 좋은 풍광을 연출한다. 해변에 멀리 떠 있는 섬을 대신해 맞은편에는 멋들어지게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다. 부용대(芙蓉臺)다. 부용대는 선유줄불놀이가 행해지는 곳인데, 이곳에서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노라면 못에 떠 있는 연꽃을 보는 것 같아 마치 동화 속 마을이 따로 없다고 한다.
만송정에서 바라보면 원지정사(遠志精舍)와 빈연정사(賓淵精舍)가 좌우로 보인다. 그리고 뒤편 부용대 아래 숲에 옥연정사(玉淵精舍)가 살며시 숨어 있다.
강변을 따라 내려와서는 처음의 위치로 왔다. 그리고는 가운데 길을 따라 다시 들어가본다. 좌우로 남촌댁(南村宅)과 북촌댁(北村宅)이 경쟁을 하 듯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 길을 경계로 남촌댁은 충효당과, 북촌댁은 양진당과 편을 먹고 남북전쟁을 벌이는 것 같다. 어떤 길로 가도 좋다. 강변을 먼저 걸어보아도 좋고, 외곽 골목을, 가운데 길을 먼저 걸어 보아도 좋다.
이외에도 마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600년된 고목나무 삼신당과 마을 곳곳에 위치한 서낭당 등 오래된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 혜민서(蕙民署)에서는 한방약을 직접 다려서 판매하고 있다.
하회마을은 어떤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그냥 자연과 역사속에 심취하면 된다. 하지만 마을을 찾는 매력은 정말 다양하다. 조선시대 가옥을 보는 즐거움, 굽이굽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는 그윽함, 널따란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숲의 시원함, 곳곳에 아직까지 피어있는 목련과 개나리·, 벚꽃의 상쾌함, 좁은 골목길과 흙으로 만든 돌담을 바라보는 구수함 등등 셀 수 없다.
하지만 마을이 유명해지면서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기념품 상점이나 각종 식당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겨 떠나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게다가 길가에 널브러진 메뉴판이나 입간판은 하회마을의 전통을 배려한 흔적이 전혀 없어 안타깝다. 다만 몇 안 남은 ‘한국스런’ 마을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으스름 속에 발길을 돌려 마을을 한 번 더 바라본다. 초가와 기와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평화롭게 저녁을 맞이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 찾아가는 길

마산→안동 버스 6대 2시간 30분 정도 소요

자가차량을 이용한다면 하회마을까지 쉽게 갈 수 있다.
마산에서 출발할 경우 서마산이나 동마산 IC를 통해 남해고속도로로 나간 다음 내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탄다. 고속도로를 계속 타고 가다 대구를 지나 중앙고속도로를 타서 서안동IC로 진입하면 된다.
서안동을 들어서면 예천으로 가는 국도 34호선을 타고 달리다보면 군데군데 이정표가 있어서 찾기가 쉽다.
효부리에서 직진하면 하회마을이고, 좌회전해서 가면 병산서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마산에서 대구까지 가는 버스를 탄 후 대구에서 안동까지 간 다음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46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46번 버스는 2시간 간격으로 있고 40분 정도 소요된다.
마산에서 대구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20~30분 간격으로 많이 배차되어 있다.
마산에서 안동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총 6대 있다.
오전 8시 25분·10시 30분·12시 20분·오후 2시 25분·4시 25분·6시 50분에 있으며, 요금은 1만900원이고, 2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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