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 마대루...구수한 차 한잔이 생각나는 곳

많은 사람들이 먼 하회마을까지 와서 병산서원(屛山書院)을 들러보지 않고 가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꼭 둘러보고 가길 권하고 싶다.
하회마을을 나와 현외(큰고개)마을에 이르면 이정표가 있는데,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 너비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3.3㎞ 정도 들어가면 언덕에 근엄한 자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원을 만날 수가 있다. 지금 중간에 도로 확포장 공사를 하고 있는지 공사차량이 간간이 보인다.
병산서원은 건물 몇 채 되지 않는, 넓지 않은 서원이기에 천천히 둘러봐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뒷짐지고 서원안을 두루 다니다보면 어느덧 ‘내가 양반입네’하고 헛기침이 절로 나온다.
서원 정문은 복례문(復禮門)이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는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따 지은 이름이다. 정문은 잠겨 있기에 오른쪽 옆을 돌아 서원 안으로 들어간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이 고려때부터 내려오던 문중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1572년(선조 5년)에 병산으로 옮겨지은 것으로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어있다.
서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옆쪽 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만대루(晩對樓)다. 신발을 벗고 만대루에 올라보면 널따란 광장이 따로 없다. 100명, 아니 200명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랗다. 만대루에 서서 앞쪽을 바라보면 장관이 따로 없다.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이 낙동강을 싸안고, 그 낙동강이 모래밭을 다시 감싸안고, 그 모래밭은 또다시 병산서원을 끌어안고 있다. 구수한 차 한잔과 노래 한 자락이 생각 안 날 수 없다.
만대루 앞에는 제법 너른 마당이 있고, 마침 키작은 벚나무 한 그루가 서원을 지키고 있다. 만대루를 마주하고 서원 입교당이 있다. 입교당 좌우로 서재와 동재가 있고, 입교당 뒤편에는 존덕사와 장판각, 그리고 전사청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물이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수려한 주위경관을 빼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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