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스런 역사이지만 없앨 수는 없으므로 복원해 일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괜찮다.’ ‘민족의 얼을 파는 매국 행위이므로 절대 안된다.’

지난 10월 일제시대와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 유물 및 유적 복원을 둘러싸고 거제지역에서 일었던 논쟁의 결말이 궁금하다.

‘복원 검토’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 문제는 당시 전 도민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아직까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민족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제기된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복원 검토를 제기한 쪽은 이들 유물 및 유적을 일본 침략의 산 증거로 삼는 한편 이를 활용해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발상이 매국적 행위라는 반대여론이 빗발치자 이 문제는 순식간에 수면하로 잠복하고 말았다.

현재 여기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움직임은 전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거제지역 일본 유물 현황=거제지역에는 지난 1935년 8월23일 일본 소림중장 등이 사등면 취도에 50여평의 공원을 조성해 일본해군대장 도고 헤이하치로의 업적을 기린 포탑기념비와 32년 5월 당시 일본해군기지였던 장목면 송진포에 러·일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운 승전기념비가 남아 있다.

이 승전비는 지난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전함 42척 병사 3500여명으로 현 거제시 장목면에 진지를 구축하고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도고 헤이하치로가 출전 직전에 지은 한시를 1932년 당시 장목면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승전을 기리기 위해 비석에 새겨 놓은 것이다.

장목면 송진포리 송진초등학교 뒷산에 세워진 승전비는 현재 거제시청 창고에 보관돼 있다.

이밖에 장승포 신부마을 금비라신사를 비롯해 일본인 집단거주지였던 입좌촌, 칠천도 어장터가 있고 임진왜란 당시 축조된 장목면 구영과 광리 등에 왜성 3곳이 남아 있다.

△역사관광지로의 개발 추진과 상황=지난 10월 경남도는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사청 지하창고에 보관돼 있는 일본 해군대장 도고헤이하치로의 승전비 복원을 추진하기 위해 거제시에 시민반응을 은밀히 조사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부분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 홈페이지에 “거제시가 일본인의 전승비를 세워야 할 정도로 빈곤하단 말이냐.” “이순신 장군의 동상 옆에 일본군 전승비라니, 짐승만도 못한 발상”이라며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시민 반응=시민들 사이에서는 관광수익을 위해 일제 침략의 원흉을 기리는 승전비 복원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 82년 한일문화교류협회와 옛 거제군이 도고 헤이하치로의 승전비 복원문제를 거론하다 당시 군수가 좌천되는 사건이 발생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수 시민들 사이에선 거제지역에 산재된 일제유물들이 비록 치욕의 역사산물일지라도 이를 잘 보존해 역사적 유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또 이와는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향토사학자 이승철(62)씨 같은 이들은 비록 치욕의 산물일지라도 이를 없애기 보다는 일본학계와 문화계가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이용해 일본에 유출된 한국유물과 교환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 89년 당시 향토사학자였던 윤의도(작고)씨가 고려시대 경남 4대사찰중의 하나였던 거제 하청면 북사의 동종(일본 나라현 혜월사 봉안·일본국보)과 도고헤이하치로의 승전비를 비록 무산되기는 했으나 서로 맞교환하는 것을 추진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거제시 입장과 전망=거제시 관계자는 유물복원을 섣불리 추진하다간 전국적인 반발이 우려되며 자칫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우려가 높은 만큼 권위있는 기관에서 국민여론을 청취해 공감대가 형성될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당기간 물밑에서만 맹돌 것으로 보인다. 거제/신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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