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 한꺼풀 두고 간다, 아쉬움은 가져가마

꽃샘추위가 아침 저녁으론 아직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남보다 좀 더 빨리 봄기운을 느끼고 싶다면 훌쩍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찾은 곳이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남해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해금강이다.
해금강은 갈곶리 앞바다에 떠있는 해발 112m, 면적 0.1㎢ 남짓한 작은 섬(갈곶섬 또는 갈도)을 가리킨다.
거제대교를 건너자마자 새파랗게 펼치지는 해안길과 굽이굽이 산길이 번갈아가며 마중하기를 몇차례. 밋밋하고 볼품없던 해안절벽들이 어느샌가 기이한 얼굴과 빼어난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며 ‘어서 오라’ 손짓하며 반긴다.
한달음에 달려가 얼싸안고는 ‘내가 널 보러 왔네’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싶지만 그것도 잠시. 곳곳에 상처를 부여잡고 아파하며 벌거벗은 낮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시사철 늘 푸른 사철나무가 너무나 아쉬운, 허전한 마음이 가슴 한 켠에서 달아나지 않는다. 바다쪽을 바라보랴, 군데군데 구멍뚫린 산들을 바라보랴, 두 눈이 어디 한 곳에 멈춰지지 않는다.
그런 두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느샌가 발 아래에는 해금강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가슴을 크게 펴고 마시는 한 움큼의 봄 바다 내음에 ‘벌거숭이 산’의 모습도 쉬이 잊혀 버린다. 아직은 겨울의 여운이 남아있는 탓인지 두 발 끝으로 전해오는 차가운 기운이 봄을 기다리는 나를 시샘하는가 보다.
깎아지른 절벽들 아래로 푸른 물결이 악수를 청하러 왔다가는 손 끝도 못건드려보고는 은빛가루가 되어 부서져버린다. 부서지는 소리며, 나부끼는 새하얀 입자가 장관을 이룬다. 제법 두터운 외투를 받쳐입고 해금강의 풍광을 바라보는 인파의 눈길에도 흐뭇한 미소가 감춰지질 않는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랬던가. 파고가 높아 유람선 운항이 전면 중단되어 버렸다. 곳곳서 들리는 아쉬움의 탄성. 부모의 팔을 부여잡고 마구 조르기만 하는 아이들,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연인들, 점잖이 뒷짐진 채 물끄러미 먼 데를 응시하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 모두의 마음엔 가까이, 좀 더 가까이서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바다를 뚫고 올라와있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고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언제 다시 이곳에 와 볼지도 모르는데, 저 많은 바위들을 귀로만 보고 가야 하나.
해금강을 돌려 앉힐 수만 있다면 뒤돌려 앉혀 갖가지 바위들을 실컷 구경할텐데. 훨훨 자유롭게 나는 새가 될 수만 있다면 저 바위들의 잘생긴 콧잔등에, 머리 위에 앉아 똥(흔적)이라도 누고 올 텐데. 바닷속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물고기가 된다면 옆구리도 찔러보고, 엉덩이도 꼬집어보고 마구 장난이라도 쳐 볼텐데….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왜 해금강을 찾겠나? 그리고 유람선을 못 탄다고 해서 볼 것이 없다면 왜 해금강이 명승2호로 지정이 됐겠는가?
미륵바위·장군바위·선녀바위 등등 보고싶었던 바위들의 이름을 머릿속에만 새긴 채 해금강 맞은편 우제봉으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벅적거림을 피해 좀 더 한적한 곳에서, 좀 더 전망이 좋은 곳에서 해금강을 마음 속에 담아가고픈 일념에서.
우제봉 정상까지는 930m, 쉬엄쉬엄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했다. 해금강의 전경이 왼편 60도 정도 각도에 다 잡혔다. 절경을 이루는 십자동굴의 틈새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뒤편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해금강은 칡덩쿨이 어우러진 섬이라는 갈도(葛島) 외에도 다른 이름이 많다. 유람선이 들어갔다 나오는 틈새가 둘 있는데 그 틈을 경계로 3개의 섬으로 이루어 졌다고 해서 삼신산(三神山)이라고도 불린다.
이곳 해금강에는 어린아이들까지 훤히 아는 전설이 있는데 바로 ‘서불과차(徐過此)’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남부러울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진시황제도 단 한가지 욕심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불로장생초를 구해 억만년을 살고 싶었던 것. 그래서 진시황제는 서불(徐)이라는 사람에게 “동방의 해금강에 가면 불로장생초를 구할 수 있다”하고는, 동남동녀 3000명과 갖가지 먹을 것을 가득 싣은 배를 한 척 내어주며 구해오도록 했다. 하지만 해금강의 아름다운 절경을 접한 서불은 약초를 구하기는커녕, 절경에 도취돼 좋은 약초를 캐먹으며 동남동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리다 진시황제가 죽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우제봉 아래 해안절벽에 배 위에서 새겼다는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귀는 지금은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흔적만 남아있을 뿐 지워지고 없다. 그래서 약초가 많은 섬이라는 ‘약초섬’이라는 이름도 얻고 있다.
해금강은 해금강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해금강이 위치한 갈곶리와 입구의 도장포 등지 모두가 가히 장관이라고 보면 된다. 우제봉에서 해금강 반대편으로 바라보는 풍광도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엷게 내리쬐며 지는 햇빛 속에 때마침 작은 보트 한 척이 지나가는데, 저게 바로 그림이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데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때묻지 않은 해금강의 신비들은 속세에 찌든 내 심신을 아직 다 씻어내지 못했는데 어두워져가는 ‘해금강의 하루’는 이제 그만 가보라고 한다.
‘꼭 다시 오겠노라’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한번 뒤돌아본다. 저기 저만치 벗어던져 놓고 가는 속세의 내 그림자가 ‘잘 가라’며 마지막 이별의 인사를 한다.

▶ 찾아가는 길

마산에서는 진동방면으로 국도2호선을 타고 가다 14호선으로 바꿔 고성에 이르면 된다. 진주방면에서는 국도 33호선에 차를 얹어 고성까지 오면 된다. 양 방면 모두 대략 40분이면 도착.
여기서부터는 한 길. 14호선으로 마무리된다. 통영을 거쳐 거제대교를 지나 사곡삼거리에 이르면 고현 방면이 아닌 오른편 동부면을 향해 내달린다. 이정표가 잘 정리돼 있어 별로 혼란스러움 없이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동부면을 지나 구천, 학동을 지나면 함목에 이르고 여기서 도장포를 거쳐 해금강에 다다를 수 있다. (학동을 지나 함목을 넘어가는 언덕구간에 도로 확포장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다)
자가차량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해금강까지가 다소 버거울 수도 있다. 통영과 고현까지 가는 버스는 마산, 진주에서 엄청 많이 있다.(대략 15분 간격으로 배차되어 있다) 마산에서 해금강까지 직행하는 버스는 고작 하루 2대뿐이며, 거제 고현에서도 시내버스가 3대뿐이다. 진주에서는 아예 없다. 다만 통영에서 해금강행 버스를 탄다면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통영에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5분까지 평균 1시간 30분 간격으로 12대의 버스가 배치되어 있어 시간 맞추기도 쉬울 듯 하다. 일단 통영에서 하차한 뒤 해금강행 버스로 갈아타면 교통문제는 해결될 듯. 1시간 남짓이면 해금강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해금강에는 낚시가 잘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박을 생각하고 간다면 낚시도구를 챙겨가는 것도 잊지 말자.

여행정보-숙박과 음식

해금강의 멋진 풍광을 마음껏 즐기려면 자가차량을 가져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해금강 뿐만이 아니라 학동이나 구조라 등 둘러볼만한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통영에서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해금강에는 전부 10개의 횟집이 있는데 모두 민박을 겸하고 있다.
대부분 가격이 엇비슷한데 3인기준 1박에 2만~3만원이다. 이들 횟집 이외에도 일반 가정집에서도 민박이 가능하다.
식사는 횟집에서 하는게 좋겠다. 어차피 지출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오는 여행인 만큼 그렇게 비싸지 않은 싱싱한 회를 먹어보는 것도 후회는 없을 듯. 요즘은 봄도다리와 광어, 돔이 많이 잡히는데, 어종에 따라 1인분에 1만5000~2만원 선이다.
굳이 회를 먹기 싫다면 횟집에서 해물탕이나 해물된장찌개, 회덮밥을 먹어도 된다. 가격은 1인분에 5000~6000원이다.
그리고 별미중의 하나가 도미어죽과 전복죽인데 부담없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죽이 도미와 전복의 맛과 향과 어우러져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단다. 가격은 1인분에 1만~1만5000원.
민박이 체질에 맞지 않다면 장급 여관을 이용해도 된다. 제법 오래된 해금강 호텔과 최근에 새로 지은 대해모텔이 2인1실 기준 나란히 3만, 4만원이다. 해금강호텔 1층엔 커피숍과 한식당이 마련되어 있으며, 대해모텔 1층엔 노래연습장과 25시 편의점이 있다.
그리고 대형슈퍼가 하나 있고, 이곳에 휴대전화 급속 충전기까지 마련돼 있어 커다란 불편은 없다. 주차료는 1일 3000원.
또한 이곳에서는 낚싯배를 운항하고 있는데 갯바위 낚시는 1인당 1만원, 선상낚시는 5인 기준 1시간에 3만원이다.
그리고 일정 인원이 되면 유람선이 뜨는데 해금강 인근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를 포함, 4개 코스가 운항 중이다.
해금강을 벗어나서 숙박을 하고 싶다면 학동이나 학동가는 길목도 괜찮고 구조라나 장승포로 넘어가서 숙박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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