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의 신기

백운동이 왜 백운동인지 가보고야 알게 됐다. 옛적에는 보통 골짜기를 이를 때 동(洞)자를 썼나보다 하고 짐작을 했지만, 백운(白雲)이란 말은 왜 썼을까 적이 궁금했다. 어쩌면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처럼 그냥 말에서 짝을 이루려고 애꿎은 글자를 끌어오지 않았을까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가보니까 진짜 백운이었다. 날씨가 좋아 하늘에 구름이 있을 리 없고, 게다가 흰 구름은 백운동에서만 볼 수 있지도 않으니 그렇게 찾을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흘러가는 물이 백운인가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 또한 아니올시다.
골짜기의 특징은 바닥에 깔린 돌과 흙에 따라 달라진다. 용추폭포 우렁찬 함양의 용추계곡은 천연스레 넓게 펼쳐진 갯가가 좋고 농월정으로 이름난 화림동 골짜기는 너럭바위가 남다르다.
밀양 구만산 구만계곡은, 옛날 임진왜란 때 사람 9만 명이 피했다고 말할 정도로 너르지만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게 그지없이 위태로우며 억산과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석골(石骨)계곡은 이름 그대로 온통 바위로 뒤덮였다.
산청 백운동 골짜기도 바위로 뒤덮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데 바위들이 시커멓거나 거뭇거뭇한 데 반해 여기 바위는 색깔부터 날렵하다. 이끼가 끼어 거무스레한 데가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가벼워 날아갈 듯 하얀색을 이뤘다.
그런데 하얀색이 예사가 아니어서 그냥 하얗지 않고 하늘을 머금은 듯 푸른빛이 살짝 스며들었다. 정말 맑은 날 하늘에 걸려 있는 조각구름을 떠올리게 하는 바위들이 층층을 이뤄 이어지는 것이다.

바위는 하늘로 치솟듯 가볍고

물은 낮은데로 흐르며 경쾌한데

봄이 오네 봄이 와 이웃들아 산수구경 가쟈스라


골짜기에 들어서면 논 한가운데 백운동이라 새긴 바위부터 색다르다. 바위를 넘으면 골짜기가 되는데 아주 우람하지는 않으나 곳곳에 폭포와 못을 이루어 놓았다. 여기서 나온 물은 골짝 아래 점촌마을을 지나 평범하게 생긴 아랫도리를 거쳐 덕천강으로 들어간다.
그렇다고 위로도 끝이 있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게 산청읍의 진산이랄 수 있는 웅석봉으로 하염없이 이어진다. 뿌리를 뽑으려고 두 시간 넘게 거슬러 올랐으나 계곡은 끝을 보이지 않고 층층바위만 자꾸 나타난다.
옛날 사람들도 지금처럼 뭔가 새기기를 좋아했나보다. 들머리에는 고졸(古拙)스런 백운동 글자가 있고 가운데쯤에는 영남제일천석(嶺南第一泉石)이라 새겨진 바위가 널찍하고 위쪽에는 용문천(龍門川)을 적은 바위가 외따로 떨어져 있다.
글자를 새긴 것은 예나 이제나 반갑지 않다. 좋게 말해 고졸스럽다이지 있는 그대로 말하면 솜씨가 유치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영남으로밖에 공간적 상상력을 확장해 보이지 못하는 좀스러움도 실망스럽다.
이를테면 사람은 이처럼 더없이 ‘쫀쫀’하건만 풍경은 영남 으뜸으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천하에 둘도 없는 풍경이란 말이다. 날아갈 듯 펼쳐지는 바위 위로 물 굴러가는 소리가 울리고 몇 십 자에 이르지는 않지만 5m 안팎을 넘나드는 폭포는 한량없이 이어진다.
어떤 놈은 좁게 내려오다가 갑자기 45도 각도로 넓게 펼쳐지며 쏟아진다. 아래쪽에서 가장 멋진 놈은 저 멀리 왼쪽에서 한 번 떨어진 다음 오른쪽으로 비틀며 아래로 한 번 더 몸을 떨군다. 여기쯤에서 볕드는 바위를 골라 수건이나 한 장 깔고 앉아 책을 읽어도 좋다.
때가 이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돌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물과 더불어 놀면 된다. 물 속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슬기가 손에 잡힐 듯하지만 아직은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조그맣게 오가는 물고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일도 즐겁고 개울을 훑으며 까맣게 여물어 가는 개구리알 살피기도 재미있다.


△찾아가는 길

찾아가는 길은 무척 쉽다. 마산이나 창원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진주 나들목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로 옮긴 다음 단성나들목으로 빠져나와 지리산 중산리쪽을 알리는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 20호 국도를 따라가면 먼저 옛날 부잣집들 즐비한 남사마을이 나타나고 고개를 넘은 다음에는 남사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꺾어지지 말고 곧장 나아간다. 다시 고개를 넘으면 이번에는 왼쪽으로 하동군 옥종면에 이르는 길을 하나 떼어주면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1km 남짓 가면 오른쪽에 조그맣게 백운동 골짜기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길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인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번갈아 나오는 길을 따라 왼쪽 산기슭을 훑으며 2.5km 정도 오르면 백운동 골짜기 들머리에 이른다.
진주에서는 3번 국도를 따라가다 단성에서 지리산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되고 마산·창원에서 가더라도 남해고속도로 의령·군북 나들목으로 나와 20번 국도를 타고 대의고개를 넘는 길도 있다.
대중교통도 나쁘지 않다. 마산에서 진주까지는 5~10분마다 한 대씩 버스가 나가고 진주에서 지리산 중산리 가는 버스도 한 시간마다 정각에 있다. 가다가 옥종 가는 길과 헤어지고 나서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단지 내려서 한 시간 남짓 걷는 일은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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