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보라. 한적한 시골마을이든, 높다란 산이든, 혹은 이름있는 그 어디든. 어느 곳엘 가도 친숙하게 우리를 반기는 것이 돌건축물이다. 석축·석성·돌다리·고인돌·석물 등. 그러나 공기처럼 너무 친숙해 막연한 조상의 발자취쯤으로 여겨지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전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저 그러려니 하지는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인간의 꿈이 담긴 돌건축물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풀어놓는 이야기속에 흠뻑 빠져들면 돌다리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않게된다.

석축은 숭배의 마음을 차곡차곡 담은 돌덩어리다. 모든 건물·연못·돌다리 등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석축인데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거나 약방의 감초처럼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모양새는 평범하지만 삶의 태도는 성인을 연상시키는 돌이랄까. 고달프고 무거운 삶의 무게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이상적인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디딤돌이 된다. 불국사 축대엔 율동감이 전해지고, 부석사 축대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절묘하다.

성곽의 나라…이땅에 2000여개

석성은 자연으로 빚어낸 인공의 공간이다. 예부터 성곽의 나라라 불릴만큼 우리나라엔 석성이 많다. 성곽은 오랜 세월동안 격전을 벌인 장으로서 우리 역사와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방어막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했다. 특히 기암절벽을 이용해 쌓은 석성은 적의 침략을 막았고, 온몸을 꿈틀거리며 춤추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성곽은 흐르는 물결같은 자연미를 지녔다. 이 아담한 땅에 널따란 성곽이 무려 2000여개다. 무수한 돌들마다 조상들의 땀과 피가 남아 우리는 아름다운 희생, 따뜻한 정, 자신을 지키는 전략을 배운다.

삼국시대부터 도성은 존재했다. 이땐 산성과 도성의 기능을 겸비한 형태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시가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광활한 도성과 읍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충북 보은 오정산에 있는 삼년산성은 신라산성의 결정체로 불린다. 백제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한 이 산성은 축성공사에 3년이나 걸렸다. 현존하는 것중 대표적 산성이다.

종교 넘고 사람 넘은 돌다리

돌다리는 만남과 소통의 염원을 담은 반석이다. 가고 싶은 곳에 널리 소통하고 싶다는 세상사람들의 꿈을 알기에 승려들은 속세로 내려와 돌다리를 만들었다. 종교의 폐쇄성을 뛰어넘고, 사람사이의 벽을 뛰어넘고 물을 뛰어넘게 해주는 미덕의 밑바탕에는 흔들리지않는 견고함이 있다.

다리는 건강과 복을 비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재앙을 막고자 다리난간이나 홍예의 천장에 용두석(이무기)을 새겨놓기도 했다.

청운교·백운교 지나 불국 세계로

경복궁 영제교는 석수 네마리가 수호하고 있고, 창경궁 옥천교는 궁중다리의 걸작품으로 불린다. 현존하는 궁궐안 다리중 가장 오래된 창덕궁 금천교는 석조각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남원 오작교가 애틋한 사랑을 이어주는 것임은 잘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다리중 가장 오래된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는 불국의 세계로 오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부활을 꿈꾸는 집으로는 고인돌이 있다. 100t이상의 돌을 구하고 운반하고 세우고 덮으려면 의사소통이 원활한 사회여야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경제적 역량, 돌을 다루는 기술,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조직여부, 집단내 우월한 존재가 존재했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을 고인돌은 제시해준다. 답과 함께.

이외 옛사람들이 돌에 신령스런 힘이 있다고 믿고 죽은이의 넋을 위로하고자 세운 석물이야기도 있다. 고고학을 전공한 박방룡·손영식·송의정·은광준 등이 공동집필했다. 223쪽. 다른세상.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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