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열린사회 희망연대의 마산시의회 점거농성 사건에 대한 석종근(민주도정실현경남도민모임 대표)씨의 문제제기에서 촉발된 ‘비합법 시민운동의 정당성 논란’은 물론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국고지원 해외연수 문제, 권순주씨와 김성진씨 사태 등 시민운동과 운동가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서울에서는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례를 폭로하고 가해자의 실명까지 공개함으로써 파문이 일고 있다.
시민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만큼 더 높은 도덕성과 책임성이 요구되고 있는 반증이라고 싶게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시민운동이 잘못된 권력화·관료화의 길로 빠져든게 아닌가 하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최근 불거진 몇가지 사안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의 쟁점과 문제점, 해결방향 등을 점검해본다.<편집자>


① 정부의 자금지원 논란
시민단체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자금지원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는 사실 새로운 논란거리가 아니다. 이미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도 이론적으로는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 적절치 못하다는 데 별로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이 없는 듯 하다. 특히 정부가 지원한 자금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시민일 경우라면 모르지만, 시민운동가들이 직접 혜택을 받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옳지 않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다시 말해 프로젝트를 받아 시민을 위해 쓰는 것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되 도덕적으로는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단체 인건비나 경상비를 지원받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마창진 참여자치시민연대의 해외연수비 지원의 경우, 다른 프로젝트와 달리 이를 시민이 직접 수혜를 받는 돈으로 볼 수 있느냐는 차원에서 논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시민운동의 역할에 회의를 품는 사람들도 있다.

서구의 한 좌파 사회학자는 심지어 “오늘날 NGO 직원들의 역할은 자금을 확보해낼 수 있는 제안서를 잘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시민운동이 급성장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권력과 적당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민중운동에 대한 방패막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말은 서구의 일부 개량적인 NGO들을 겨냥한 것이긴 하지만 김영삼 정부를 거쳐 김대중 정부에 이르면서 급성장한 우리나라의 시민운동도 이에 자유롭지는 못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시민운동은 실제 역량 이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거품처럼 성장해온 측면도 없지 않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은 성명서의 남발, 알맹이 없는 기자회견을 해도 많은 언론이 이를 부풀려 보도하는 일이 많았고, 시민운동가들 역시 이를 은근히 즐겨왔다. 얼마전 마창지역의 한 시민단체도 그동안의 지역사회 흐름을 정리한 성명서 한 장을 달랑 발표하면서 거창하게 ‘시국선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기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언론이 시민운동을 부풀려 보도하는 이면에는 사실 정권이나 자본가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급진적인 단체와 비교적 온건한 시민단체를 분리하려는 의도가 배여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민중운동단체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축소 또는 배제하는 대신 시민운동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보도함으로써 자신의 보수성을 은폐하려는 언론의 속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운동이 대중을 향하기 보다는 언론을 구미에 맞는 방식을 찾게 되고 결국 일부 상근자와 엘리트 중심의 운동이 됨으로써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회원의 회비만으로는 자생력이 없게 되고 결국 정부의 보조금이나 프로젝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시민운동 실무자들도 이런 문제점을 털어놓고 있다. 한 실무자는 “관청으로부터 손쉽게 프로젝트를 따내 일을 하다 보니 정부나 해당 관청에서 허용하지 않을 듯한 민감한 이슈나 투쟁과제들이 뒤로 밀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전에는 집회와 시위 중심이던 운동방식은 노동단체나 재야단체의 몫으로 떨어져 나가고, 대신 시민단체는 성명서나 논평·보도자료 발송, 기자회견, 법률적인 소송, 세미나와 토론회, 의식계몽류의 캠페인 등이 주요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실무자들이 하는 일도 집회를 조직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일보다는 기획서 및 보고서·결산서 작성이 주요업무가 됐다. 여전히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일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기획서를 그럴듯하게 잘 써서 프로젝트를 잘 받아내는 실무자가 능력있는 사람으로 통하는 것도 당연하게 됐다.

올해부터 이미 시행중인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을 당초 입법하려 하던 98년말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전국 76개 시민단체가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적이 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랬다.

“정부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의 제도는 민간단체의 재정자립성을 흔들 우려가 크다. 시민단체의 특성에 따라 많이 다를 수는 있으나 시민사회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 현실에서 이같은 방식의 지원은 정부 지원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킬 것이며 나아가 민간단체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자율성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을 자율성을 잃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이미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데 새삼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개별부처와 개별단체간의 종래의 관계를 넘어서서 개별 단체의 ‘의지’ 문제로 맡길수 없는 ‘정부-시민사회 관계형태’의 문제이며, 기존의 정부(지방자치단체) 재정지원은 ‘정부 각 부처 또는 자치단체와 사업을 매개로 한 파트너십’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재정지원을 제도화·보편화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 법에 의한 정부의 직접 재정지원은 민간단체의 활동을 역으로 통제,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펼치던 시민단체 중 상당수는 막상 이 법이 시행되자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제각기 지원신청서를 냈다. 경남지역 시민단체들도 몇몇 단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원을 신청했고,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는 한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국고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상당수 시민단체는 연말까지 정산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일정에 쫓겨 급히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소리 안나게 바빴다는 후문이다.

참여연대 김동춘 정책위원장은 이와 관련,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 총선 당시 총선연대 활동을 반대하는 정치가들이 ‘정부지원’ 운운하면서 시민단체를 비판한 예가 있었듯이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을 때는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사업을 통해 재정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과 병행하여 재정운영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내부의 감시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난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현재와 같은 정부의 직접 지원, 프로젝트 지원방식보다는 제3의 공익재단 등을 설립하여 이러한 창구를 통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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