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산 가득 석공의 징소리 울린다


경주 남산은 온통 부처님 세상이었다. 말 그대로 발길 닿는 데마다 돌로 만든 불상과 불탑이 있으며 절간과 절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행의 발길이 처음 가 닿은 데는 부처골 감실불상. 소나무 우거진 산길을 따라 20분 남짓 가다가 산죽 더미를 지나니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바위를 90cm 가량 파내고 새긴 부처님으로 앞에 선 사람과 눈을 맞추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600년대에 만든 신라의 초기 불상으로 알려졌는데 푸근하고 친숙한 인상을 하고 있다. 표정도 그렇지만 머리통이 둥실하니 커다란 게 마치 아기 같은 모양이다. 불교 전파 초기에는 석굴암 본존불의 엄숙함보다는 이 같은 친밀함이 더 위력이 컸나 보다.
선덕여왕이 작품의 모델이 아니었을까 짐작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마지막 남은 성골이라 임금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여자’였기 때문에 ‘권위’가 덜 섰을 수 있는데 바위를 파내고 부처를 새기는 역사를 통해 벌충하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발을 돌려 남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1km쯤 가면 옥룡암이 있다. 절간 마당을 지나면 곧장 높이가 10m는 돼 보이는 커다란 바위덩이와 마주친다. 탑골 부처바위 마애조상군이다.
처음 만나는 북벽에는 부처님이 설법을 하는 가운데 양쪽으로 9층과 7층짜리 목탑 그림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바라보이는 황룡사터에 있던, 1200년대 몽골 침략 때 불타버린 황룡사 9층목탑을 새긴 것으로 보는데, 골짜기 이름인 ‘탑골’ 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맞은 편 남쪽 벽에는 약함을 든 약사여래불을 가운데 모신 삼존불과 관세음보살상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동쪽에는 보리수 아래 수도하는 모습을 비롯해 벽면 가득 여러 부처상이 들어가 있고 좁다란 서벽에도 부처와 비천상이 들어앉았다.
사방불(四方佛)은 삼국통일 뒤에 퍼진 양식으로, 전쟁과 관련이 많으리라고 한다. 사방불은 필요한 부처님을 한 군데에서 다 만날 수 있는 구조다. 탑골 이 바위에만도 서른이 넘는 부처가 새겨져 있을 정도이니, 전각을 옮겨 다니며 빌지 않아도 되는, 지붕만 없다 뿐이지 커다란 절간과 마찬가지다.
통일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살아남은 이들은 죽은 이를 위해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에게 빌고 다친 이들이 하루빨리 건강해지기를 약사여래불에게 기원해야만 했다. 전쟁으로 얼룩진 현세를 별 탈 없이 버티려면 석가모니불에게 기대야만 했고 죽어 극락세계로 가려면 아미타불을 찾아야 했다.
지배집단도 전쟁에 동원된 백성의 원성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겠다. 물자와 노력을 들여 알맞은 데에다 사방 석불을 새겨 불만을 풀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했으리라는 것이다.
다시 발길을 돌려 전체 높이가 4.5m에 이르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미륵골 보리사로 간다. 남산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남은 것인데다 뒷면에는 약사여래상을 새겨넣은 독특한 양식이고 얼굴도 인도풍으로 이국적인 맛을 조금 뿜는다.
마지막으로 남산을 벗어나 경주에서 가장 화려한 고분인 괘릉(掛陵)으로 간다. 괘릉은 왕릉안 현실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바닥에 관을 놓지 못하고 공중에 걸어놓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원성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들머리를 알리는 화표석이 있고 페르시아 사람의 모습을 한 무인상 둘, 짧은 칼을 숨긴 문인상 둘과 표정이 자유자재로운 돌사자 네 마리가 무덤을 지키고 있다. 신도(神道)를 따라 들면 오른쪽 혼유석이 있고 무덤 둘레에 돌난간을 만들었다. 아래쪽에 두른 호석에다는 뒤쪽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십이지신상을 새긴 것도 눈길을 끈다.
괘릉의 가장 큰 자랑은 아무래도 잘 자란 솔숲이 아닐까 싶다. 돌장식이 화려하긴 하지만 무덤을 빙 둘러가면서 북서쪽으로 조금 기울어 서 있는 소나무들의 몸놀림과 우람함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바깥둘레에서부터 슬금슬금 걸으니 나무 둥치 사이로 이쪽저쪽 풍경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사람 소리도 자꾸 멀어지고. 바닥에는 잔디 위로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찾아가는 길

진주·마산·창원 등지에서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대저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옮겨 타면 된다. 밀양이나 창녕에서라면 국도 24호선을 타고 석남터널을 지나 언양 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만날 수도 있겠다.
경주 나들목에서 빠져나간 다음 울산으로 이어지는 국도 7호선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오른쪽에 남산이 나타난다. 자가용 자동차는 각각의 들머리까지 바짝 들이댈 수 있으며 여럿이 버스를 타고 가면 경주박물관 주차장에 들면 된다.
주차장에서부터 들길과 산길을 번갈아 가며 부처골과 탑골, 미륵골을 드나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때마침 얼음 풀리는 이른봄이라 들판을 거닐며 발아래 파릇한 새싹에다 눈길을 던지는 재미도 쏠쏠하다.
괘릉은 여기서 돌아나와 국도 7호선을 따라가다 불국사역을 지난 2km쯤 더 가면 왼쪽 산기슭에 숨어 있다.
이밖에도 시간이 되면 경주시내 소금강산의 굴불사터 사면석불과 백률사를 찾아보면 좋겠다. 사면석불은 경덕왕이 땅 속에서 찾아낸 것으로 굴불사를 세운 근거가 되는데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굴불사터 위 백률사(柏栗寺)는 불교를 위해 순교한 이차돈과 관련이 있다. 법흥왕 14년(527) 왕명으로 목을 베자 흰 피가 솟구치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목이 한참 날아가 떨어졌는데, 이듬해 사람들이 슬퍼하며 목 떨어진 데에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
300년쯤 지난 헌덕왕 9년(819)에 세운 이차돈 추모 석당(石幢)에는 목이 떨어지고 피가 솟으며 꽃비가 내리는 모습이 여실하게 그려졌는데 경주박물관에 있다. 대웅전과 삼성각만 있는 조그만 절간인데 화려조잡한 불사가 거의 없었는지 고즈넉한 느낌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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