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지나 해탈 어서~어서~가자

팔만대장경의 해인사는 가람 배치가 아름다운 절로 이름나 있다. 나름대로 일관된 원리와 법칙에 따라 절간이 짜여 있다는 말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절간이 자연에 녹아들어 있고, 숲과 언덕들이 절간을 자연스레 꾸며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들머리 박물관이라든지 가게들까지 모두 뭉뚱그려 하는 말은 아니다.
해인사 산책은 성보박물관을 뒤로 물리면 나타나는 길에서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1km 남짓 이어지는 해인사 가는 길은 찻길과 사람길이 따로 마련돼 있다. 보통은 지나다니는 차들 때문에 숨길과 발길을 멈추곤 해야 했는데 여기 해인사는 그렇지 않아 좋았다.
길 양쪽에는 참나무 노각나무 등 이런저런 나무들로 우거져 있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 가을이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겠다 싶다. 봄을 앞두긴 했지만 아직은 겨울인지라 조금은 썰렁하다. 하지만, 일체를 버리고 자신과 세계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진리를 좇는 경지는 잎을 떨구고 줄지어 선 겨울나무들에서 더 잘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파에 묻혀 올라가다 보면 말라빠진 가지의 군데군데에 연초록빛을 내는 잎들이 높다랗게 겨울답지 않게 무성하게 매어달린 참나무를 몇 그루 볼 수 있다. 나무에 빌붙어 사는 겨우살이라는 풀들이다. 겨우살이는 이렇게밖에 살 수가 없다.
생명력이 왕성한 나무는 너무 튼튼해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반면 이미 죽은 나무는 필요한 양분을 대어주는 수액이 없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겨우살이들은 시들시들 죽어가는 나무에 뿌리를 내려 살면서 씨앗을 만들어 스스로를 유지한다는데, 정색을 하고 눈이 시리도록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주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 해탈문이 잇달아 나타난다. 좌우에는 802년 창건 당시 심었다는 고목이 1200년 동안 생명을 다하고 죽은 채 있기도 하고 사철 내내 똑같이 푸른빛을 뿜는 전나무들이 아름드리 우거져 있기도 하다. 삼십삼천(天), 서른세 계단을 오른 다음 뒤돌아보면 엄숙한 아름다움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불국정토 가는 길…죽은나무에 기댄 겨우살이를 본다

끈질긴 생명력과 사람냄새 없다면 부처도 없는 것을…


일주문 어귀 길상탑. 작을 뿐 아니라 만든 솜씨도 보잘것없다. 그런데 신라 말기 일대를 휩쓴 도적에 맞서 해인사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여러’ 스님을 위로하고자 만들었다는 문서가 탑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부처님의 진신을 대신하는 신앙의 대상인 탑에다 이런 사연을 담았다 하니 길상탑에서 사람 냄새가 나면서 갑자기 살갑게 다가온다.
알다시피 해탈문(불이문)을 지나면 부처님의 세계, 진리의 세상이 된다. ‘일체에서 벗어난(해탈)’ ‘둘도 없는(불이)’ 정토(淨土)가 된다. 해인 정토의 중심축은 구광루에서 삼층석탑·대적광전을 지나 법보전으로 이어지고 둘레에는 독성각 종각 응진전 국사단 따위 당우가 흩어져 있다.
구광루(九光樓)는 지혜의 부처 비로사나불께서 아홉 차례 설법했음을 뜻한단다. 고승대덕들만 대웅전에 드나들 수 있던 시절, 사부대중들이 모여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대적광전은 비로사나부처를 본존불로 모신 전각을 이른다. 아무리 절이 크다 해도 세 분 정도 부처를 모시는 게 보통인데 이 절은 비로사나불 둘에다 법기·보현·지장·문수·관세음 등 다섯 보살까지 모두 일곱 부처가 사람을 맞이한다. 좀 별나다 싶은데 안내판에는 주변 폐사지에서 모셔온 부처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을 달았다.
대장경을 모신 장경각(장경판전)은 대적광전 위에 있다. 부처님 말씀(법)을 담았다는 법보전이라 하는데 이를테면 지혜의 부처님이 진리의 말씀을 인 꼴이다. 나무 창살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경판들 참 가지런하다는 느낌을 준다. 맞은 편에서 비치는 햇살은 그윽함을 머금었다. 옆으로 돌아나오면 신라 최치원 지팡이가 바뀌어 됐다는 우람한 전나무에서 서늘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내려오는 길에는 사명대사가 머물다 입적한 홍제암에 들를 수 있다. 해인사와 달리 전혀 붐비지 않아 정갈한 절간 맛을 받을 수 있다. 홍제암 본건물과 서래당 사이 장독대와 석빙고와 장작더미를 바라보는 느낌도 색다르다. 사명대사 입적을 기린 석장비가 일제에 깨어졌다가 수습돼 있다. 햇살 따뜻한 홍제암 마루에서는 흔들리는 풍경 아래로 몇 그루 소나무가 눈에 밟힌다.

▶ 찾아가는 길

가야산 해인사는 합천군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다. 합천 읍내에 들어선 다음 경북 고령쪽으로 달려가다 국도가 33호선과 24호선으로 갈라지는 데서 표지판 따라 왼쪽 24호선으로 골라잡아야 한다.
죽 가다가 묘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든 다음 경찰이 검문하는 해인사 들머리로 머리를 집어넣고 길 따라 곧장 가면 해인사 들머리가 나온다. 공휴일에 가면 자동차 세우기가 버거울 정도로 붐빈다.
마산·창원에서 합천에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해고속도로 동마산 나들목으로 들어가 지금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이름이 바뀐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쪽으로 가다 창녕 나들목에서 빠진 다음 오른쪽 국도로 접어드는 길이다. 물론 창녕까지 국도 25호선을 타고 가는 수도 있다.
나머지 하나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군북 나들목으로 나와 의령을 스쳐 지나는 길이 있다. 대의고개를 거쳐 오른쪽으로 꺾어서 가는 것이다. 진주에서는 국도 33호선을 따라 합천·고령쪽으로 줄곧 달리면 읍내가 바로 나온다.
대중 교통은 조금 불편한 편이다. 해인사 가려면 읍내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2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차편은 첫차 8시 10분부터 막차 저녁 7시 10분까지 80~90분 간격으로 이어진다.
진주에서 합천 가는 버스는 자주 있는 편이다.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 10분까지 20~50분마다 한 대씩 떠나 50분이면 가 닿는다. 마산에서 가는 버스는 아침 7시가 첫차고 두 번째가 10시 25분이다. 이런 식으로 두세 시간마다 한 대씩 저녁 6시 20분까지 있으니 진주로 가서 갈아타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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