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멎는다 마음의 바람이

산청군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단속사터는 느낌이 참 아늑하다. 바깥에서 쌩쌩 불던 바람도 마을 안에만 접어들면 금세 잠잠해지는 것 같다.
1200년도 넘는 옛날에 지어졌다가 400여 년 전에 허물어진 절터라서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옛적 스님들이 절간 자리 하나 제대로 앉히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방향을 뺀 삼면을 지리산 자락이 멀찌감치 둘러쳐 있는 가운데 살짝 꺼진 너른 자리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신작로를 벗어나 마을에 접어들면 아담한 쌍탑이 들머리에 사이좋게 앉아 있다. 언뜻 보면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아주 정갈하고 균형이 잘 맞다. 경주 석가탑처럼 크지는 않지만 매우 반듯해 섣불리 다가설 수 없겠다 싶다가도, 표면을 어루만진 고운 솜씨가 여태 남아 있어 다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바로 단속사터 동·서 삼층석탑인데 동네사람들은 그냥 암탑·수탑이라 한다. 동탑은 2층 기단과 3층 탑신 위에 있는 앙화가 많이 깨어지지 않아 마치 관을 쓴 듯해 수탑이라 하고 많이 깨어진 서탑은 관을 쓰지 않은 민머리 같아 암탑이라 하는 것이다.
마을은 조용하다. 탑 너머 열려 있는 대문 사이로 나온 아주머니는 빨래하러 가는지 옷가지를 담은 대야를 옆에 끼고 있다. 조금 있으려니 털신을 신은 할머니 한 분이 또 나타난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니까 “어데서 왔소” 묻는다. 마산에서 왔다니 무엇 하러 왔는지 또 묻는다. “절터 한 번 둘러볼라고요” 대답했더니 “뒤에 가믄 주춧돌 하고 매화가 있어, 앞에는 당간지주도 있고” 일러준다.
금당, 그러니까 대웅전 자리는 민가가 자리잡았다. 금당터 뒤쪽에는 소금당(강당) 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축담 위에 주춧돌이 아무래도 소금당 터이고 오른쪽 낮은 데 주춧돌은 딸린 건물 자리일 것이다.
여기 서서 바라보면 왼쪽에 서걱서걱 소리를 내는 대밭이 울창하다. 대밭으로 눈길을 주다 보면 기와 조각을 잔뜩 모아놓은 무더기가 눈에 띈다. 가로 1m 세로 2m는 돼 보이는데 높이도 허리께까지는 오게 생겼다. 동네 사람들이 밭을 일구면서 한 데 모은 모양인데 옛날 성할 때는 규모가 엄청났으리라 짐작하게 해준다.
쌍탑과 소금당터 사이에는 600년 된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잔뜩 머금고 있다. 옆에는 ‘정당문학 통정대부 강선생 수직매비’라는 비석이 서 있는데 강선생을 지키던(守直) 매화인지 아니면 강선생이 지키던 매화인지 헷갈린다. 이 정당매(政堂梅)는 나중에 벼슬이 정당문학에 올랐던 고려말의 강회백이 단속사에서 공부하면서 심은 나무인데 벌써 가지 마다 붉은 빛이 감돌고 있다.
마을에는 이밖에 옛날 걸어다녔던 마을 안길 들머리에 당간지주 한 쌍이 세워져 있다. 제법 그럴싸한 마을 솔숲 끝자락에 있는데 콘크리트로 군데군데 때우기는 했지만 날렵하고 단정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한가지다.
마을의 길과 들판에는 기와조각들이 많다. 곳곳에 쓰다 남은 돌부재들이 놓여 있기도 하고 논밭 두렁 아래쪽 축대에도 큼지막하게 계단돌이나 버팀돌로 썼음직한 자취가 남은 돌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이같은 폐사지의 자취를 따라 논밭을 오르내리면 또다른 자취를 만난다. 바로 폐농의 자취인 묵정밭이다. 아까 마주친 할머니는 몇 해 전부터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논을 그냥 뒀더니 휴경을 하는 땅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올해부터 생긴 논농업직불제에는 해당이 안됐다고 했다. 들판 한가운데 조그만 못에 가둬놓은 물은 아무래도 얼마안가 쓸 사람이 없어지고 말겠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반드시 돌에 새긴 ‘광제암문(廣濟岩門)’을 볼 일이다. 아스팔트길 따라 2.7km쯤 내려오면 왼쪽 ‘진주화장지’ 단층짜리 건물과 오른쪽 당산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 오른쪽 개울가로 내려가면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왼쪽 위에 새겨져 있다. 옛날 단속사의 출입문인데 ‘넓게 구하려고 드나드는 바위문’인 셈이다.

▶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을 비롯한 중·동부 경남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서진주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로 옮긴 다음 단성 나들목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나온 다음에 마주치는 첫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가 국도 20호선을 따라 지리산쪽으로 방향을 잡아 달린다. 아니면 군북 나들목으로 나와서 일찌감치 국도 20호선을 타고 산청쪽으로 달려도 된다.
사천이나 진주에서 가자면 국도 3호선을 타야 한다. 가다가 원지에서 지리산 중산리쪽으로 국도 20호선으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다음에는 옛집들이 옹기종기 자리잡은 남사마을을 지나면 나오는 남사 네거리에서 오른쪽을 방향을 잡아 외줄기 아스팔트길을 따라 줄곧 10km 남짓 달리면 단속사터가 나온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 시간마다 정각에 있는 중산리행 버스를 타야 한다. 내려서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려면 남사 네거리에서 내리면 되고 아니면 원지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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