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보이고 푸른빛 들린다


진해 굴암산(662m)이 좋다는 얘기는 진작에 들었다. 높이는 그리 높진 않지만 골짜기가 깊은 반면 등산길은 가파르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산아래 이쪽저쪽에 개울을 틔워놓아 사철 물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도 했다.
웅동마을에 들어오면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자마자 좁다랗지만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이 하나 나온다. 길머리를 잡아 고개를 드니 겨울인데도 그냥 누렇게 물들기만 한 산이 펑퍼짐한 차림새로 눈에 안겨든다.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아서 아주 편안한 느낌을 준다. 길 따라 오르며 오른쪽 산허리로 눈을 돌리면 조림(造林)을 한 듯한 삼나무 숲이 들어온다. 시든 풀과 잎들만 봐왔던 눈이 푸른빛에 한결 시원함을 느낀다. 왼쪽 골짜기에서도 숨은 듯 푸른빛이 베여 나온다.
오늘은 산꼭대기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등산길 들머리에 있는 성흥사에서 잠시 여유를 부린 다음에 대장동 마을숲을 거쳐 부암마을 뒤쪽에 있는 용추폭포를 들러보는 것이다.
성흥사는 조그맣다. 신라 때 왜구를 물리친 기념으로 무염 스님이 지은 절이라니까 창원 곰절과 비슷한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가을 왔을 때는 조선 후기 솜씨인 대웅전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새로 짓는지 크지 않은 굴착기만 한 대 서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오래 된 배롱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한껏 벌리고 있다. 가지 뒤편 왼쪽에는 나한전,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 제자들을 모셔놓은 곳인데 행사가 막 끝났는지 멍석을 말아 옮기는 손길이 바쁘다. 키가 헌칠한 젊은 스님이 합장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어서 오세요” 소리 내어 인사를 한다.
아담한 성흥사를 잠깐 눈요기하고 곧장 돌아나온다. 절간 아래에 대장동 마을숲이 있다. 언제나 풍성한 물을 자랑하는 골짜기 따라 길게 자리잡은 마을숲은 여름가을이면 꽤나 붐비겠다.
지금은 아직 새 잎이 나지 않아 풍성해 보이진 않지만 아름드리 고목들이 늘푸른 소나무들과 함께 개울과 논밭 사이에 듬성듬성 서 있다. 고개 마루에는 현대식 정자가 있다. 느티나무 한 그루도 같이 자리잡았는데 정자에 올라 보니 억새가 웃자란 채 말라붙은 묵정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물론 틈새에는 어느 집 바지런한 손길이 스쳐갔는지 마늘잎이 푸르른 데도 없지 않다.
대정동 마을숲에서 왼쪽 대각선으로 마주보이는 골짜기를 향해 논길을 걷는다. 경운기 다니기 좋도록 깔아놓은 콘크리트길 끝에 부암마을이 달려 있다. 바위(岩)가 많은(富) 동네라서 그런지 골짜기 안에 용추폭포가 들어앉아 있다.
높이가 10m는 넘어 보이는 용추폭포도 진해서는 이름난 곳이란다. 함양 황석산 기슭 용추사 아래 있는 용추폭포 같은 씩씩함은 없지만 겨울에도 마르지 않고 70도 남짓 각도로 비스듬히 서 있는 바위를 굴곡 따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싱싱하다.
용추폭포에는 용이 산다는데, 옛날은 몰라도 지금은 아니올시다다. 물 떨어지는 데 놓인 바위는 수천년 패여서 옴폭하지만 아주 깊지는 않은데다가, 사람 발길이 잦아서인지 적으나마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폭포 오른쪽 가파르고 너른 바위는 사람들이 암벽등반 연습하듯 많이 타고 올랐기 때문인지 하얗게 반들거린다.
몸을 돌려 돌아나오다 보니 어느새 햇살이 아주 따뜻해져 있다. 땅바닥은 물기를 머금은 채로 추적거린다. 시간이 흘러 정월 대보름이 슬며시 지나가는 사이에 비까지 한 번 스치고 가면 마늘이나 보리를 심은 너른 밭들 사이를 거닐며 봄나물 뜯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찾아가는 길

웅동 일대 산야 산책은 아무래도 굴암산 성흥사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자동차를 타고 성흥사에 가려면 마산·창원에서 일단 터널을 지나 부산으로 가는 국도 2호선을 따라가야 한다. 창원에서는 안민터널로 가는 수도 있는데 시가지를 벗어나면 국도 2호선은 신호등도 거의 없이 시원스레 뻗어 있다.
읍성이 있는 웅천동을 지나 평방 고개를 넘은 다음 성흥사와 마천주물단지 표지판이 나란히 있는 데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마주치는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든 다음 나오는 웅동 마을에서 다시 왼쪽으로 접어든다.
웅동1동 사무소를 지나쳐서 시장통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넌 다음 곧바로 오른쪽으로 죽 달려가면 대장동 마을숲과 성흥사가 나란히 얼굴을 내민다.
용추폭포에 먼저 들르려면 시장통 오른쪽 안으로 들어간 다음 왼쪽으로 웅동학교를 끼고 돌아 계곡으로 바짝 붙으면 농사용 길인지라 아주 좁으므로 알맞은 데 세워 놓고 걸어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대중교통도 나쁘지 않다. 진해 시내에서 105번 시내버스를 타고 웅동1동에서 내려서 성흥사까지 3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앞으로 날씨가 더 풀리면 더욱 좋겠고, 지금이라도 조금씩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들판을 좌우로 흔들면서 산책하는 기분도 괜찮다. 105번 버스는 18분만에 한 대씩 다닌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