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전북 익산에서는 47세의 박모씨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대입시험을 치른 뒤 성적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자 식음을 전폐하다가 끝내 숨진 것이다. 박씨는 장남인 아들에 모든 기대를 걸고 살아오다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교육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방후 반세기동안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원동력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이었다.

그러나 이 교육열은 뜨거운 수준에서 벗어나 점차 과열되어갔다. 학벌중시 풍조가 만연하고 입시열에 들뜨면서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져갔다. 학교교육은 파행으로 치닫고 가정의 도덕교육은 실종되어 버렸다. 입시생이 있는 가족은 온통 수험생 뒷바라지로 비상체제에 돌입하듯 생활하고 있다. (이 기획에선 교육정책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 가족이 바꾸어가야 할 교육관을 중심으로 살핀다)

△이기적인 부모의 교육관

김신애(39)씨는 최근 친구의 교육관을 듣고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대학까지 나온 고학력자인데도 친구는 사교육비를 과다하게라도 들여서 공부를 시켜야 자녀가 남보다 뒤처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아들과 딸 중에서 아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래를 생각해서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관은 미래에 대한 투자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한 ‘내 핏줄관’과도 통한다. 부모·자식관계를 분리된 객체로 보지않고 소유의 개념으로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부모의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을 자녀에게 강요하게 되고, 부모의 못다 이룬 소망을 자식에게 기대하는 대리만족의 도구로 만들기도 한다.

보편적으로 자녀에게 과잉간섭·과잉보호의 태도를 취하게되고, 이런 부모에 순응하기 위해 자녀는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보다 부모의 선택과 결정에 자신을 의존하게 된다.

물론 부모들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서서히 출세지향적 인생관이 사회에 만연하게 됐고, 학교든 가정이든 ‘교육 = 출세도구’로 여기게 되었다.

‘자녀의 행복 = 출세’며 이는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든 다음에야 부모는 각종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일정궤도에 자녀를 올려놓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자녀에게는 오로지 명문대입학이라는 지상과제만 부각된다. 성적이 곧 효도의 척도가 되므로 공부에 지쳐 짜증을 내거나 부모에게 결례를 해도 성적만 잘 딴다면 문제삼지도 않는다.

부모들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시험부담에 부대끼는 자녀가 가엾어서 인간교육은 아예 꿈도 꾸지않게 된다. 좋은 성적은 곧 인간교육·도덕교육을 압도한다. 부모들이 시키는 도덕교육이래야 기껏 거짓말마라, 술·담배를 금지하는 정도다.

△돈이 곧 교육이다·

자녀가 커감에 따라 교육은 단계를 밟는다. 어릴 땐 조기재능교육을 시키다가→특기교육에 열올린다→중학생에 접어들면 지식교육에 매달리면서→입시교육위주로 나아간다. 궁극적으로 대입을 위해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초등생의 과외중 피아노와 미술은 필수로 되어있을 정도고, 부모들은 제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버릇이 들도록 하루 서너시간씩 책상앞에 앉아있게 잡아주기도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완전히 공부하는 틀이 잡혀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못하면 큰 낭패로 여긴다. 과외허용 전부터 부모들은 중학교만 들어가도 학원과외라도 시켜야 안심이 된다고 토로한다.

이런 사교육비는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성적 등에 따라 적게는 연간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집집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생활비를 쪼개서 과외비로 쓴다. 얼마전 가정문제를 다루는 한 TV프로에선 과외비를 대기 위해 주부가 단란주점을 드나들다 가정파탄에 이르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오로지 자녀의 성공만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교육풍토 탓이다.

△어려운 성교육

미용실을 운영하는 윤모(43)씨는 얼마전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성준이(가명)방을 청소하다가 포르노잡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성준이가 즐겨보는 만화에도 노골적인 남녀성애묘사가 비일비재했다. 성준이의 경우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주위의 말에 더 놀랐다. 아이들의 육체적·정신적 성장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격세지감이 들었다. 윤씨는 혹시라도 나쁜 유혹에 빠져들까 등·하교외의 아이의 일과를 챙기느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지난 93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중·고생 2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한 조사에 따르면 고교남학생의 87.7%, 여학생의 61.9%가 음란비디오를 본 경험이 있고 보고 난 뒤 비디오 내용처럼 시도해보고 싶었다는 학생이 48.4%나 됐다.

요즘 청소년들은 부모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에 대해 알고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 음란물을 통한 것이어서 성범죄와 밀접한 관계가 생긴다는데 문제가 있다.

자녀가 초교 5~6년생만 되어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음란물에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자위행위경험도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은 성에 대해 무지하다고 여기며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 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자녀앞에서 부모가 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거북스럽다고 은폐하고 넘어가면 자녀의 욕구와 충동만 커진다.

대안적 성교육은 학교와 부모의 상호협력이 요구되지만 부모의 의식이 먼저 깨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성교육강좌를 접하는 등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평소에도 자녀와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시도해보고, 의견을 들어보아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성애물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에 주력하기보다는 성행위가 의미하는 책임과 권리에 대한 교육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정교육의 미래

앞서 언급된 상황은 결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선 객관식 정답이 없다. 제대로된 자녀교육을 힘들게 하는 모든 고리들은 유기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가족 밖에서 벌어지는 학벌위주의 사회풍토·중등교육을 간과한 대학중심 교육정책 등 반교육적 환경을 도외시한 채 인성교육의 책임과 의무를 가족에게서만 찾을 수도 없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을 시키는 부모의 주체성이다.

자녀성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자신은 변하지 않은 채 자녀의 잘못만 탓하는 것은 아닌지부터 반성할 일이다. 부의 유무와 상관없이 어떠한 가치관으로 키울 것인가에 주력하고, 그런 작은 출발 뒤에 뜻을 같이하는 다른부모와 의견을 나누고 조금씩 바꿔가야 하는 것이다.(도움말 = 창원대 아동가족학과 김은경교수·경남가족상담연구소 김도애소장, 참고문헌 = <한국가족문화의 오늘과 내일> <사회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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