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저편 당신의 미소…그리움되어 밀려오고


고성 상리 무이산(592m)은 큰 노력을 안 들이고도 탁 트인 바다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안 그랬지만 산마루 바로 아래 자리잡은 문수암 덕분에 자동차로 단숨에 오를 수 있는 산이 됐다. 문수암에서 산꼭대기까지는 5분이면 충분히 가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꼭대기는 조그맣다. 조금 아래에는 송신탑까지 있어서 산만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여느 산마루와 마찬가지로 세차고 매섭다. 가늘게 뜬 사이를 비집고 바다가 들어온다.
왼쪽 산너머 바다는 고성과 통영 사이에 갇혀 마치 커다란 호수 같다. 바로 앞 자란만에는 사량도가 떠 있는데 점점이 박힌 조그만 섬들 사이로 멀리 욕지도까지 뚜렷하게 눈에 잡힌다.
아침 해무(海霧)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뿌연 젖빛으로 바다를 가려 품었으면서도 한편으로 햇볕을 받아 스물스물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 위로 말갛게 씻은 아침 해가 빛나고 바다는 군데군데 햇살을 되받아 쏘아 올리느라 벌겋게 열이 올랐다.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가끔 까닭 없이 허탈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갑자기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느낌이 든다든지, 후배들이 드디어 자기를 딛고 오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든지, 자식이 훌쩍 다 커 버려 더 해줄 게 없는 것 같다든지…….
바다에 대해 좀 더 많이 안다면 더 많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산꼭대기에 선 채로 고기와 조개와 물풀에 대해서, 어린 시절 경험과 바닷사람들의 숨결에 대해서까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바다와 바다 속 뭇 중생을 견줘보면서 달라지는 가운데 달라지지 않는 것, 바뀐 듯하지만 전혀 바뀌지 않은 무엇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손쉽게 찾아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산,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싫증이 나도록 바다를 바라봐도 좋은 산이 바로 무이산인 듯하다.
무이산에는 하지만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1300년 전인 통일신라 성덕왕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문수암이 산마루 바로 아래 있다. 문수암을 둘러싼 아래위와 앞뒤로는 또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씩씩하게 자리잡았다.
의상이 문수·보현 두 보살과 인연이 깊었다는 사실은 화엄종을 새로 열고 저 이름난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는 설화에도 되풀이 나오는 바이지만, 여기서도 의상은 문수·보현보살을 만나 수행처를 얻었던 모양이다.
남해 보광산(금산) 가던 의상에게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거지를 따라 무이산에 가 보라 했고 아침에 일어나 거지 따라 무이산 꼭대기에 갔더니 동행한 거지가 또 다른 거지와 함께 손뼉을 치고 웃으며 바위벽 사이로 사라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자연스레 흘러내린 문수보현상이 암벽에 나타났는데 여기에 암자를 짓고 문수암이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문수암은 옛 자취를 전혀 찾을 수 없다. 건물도 죄다 현대식이고 바닥은 콘크리트로 굳건하다. 옛 자리에 있는 문수전을 비롯한 전각들은 다소곳한 맛이 그래도 남았지만 들머리 앞쪽으로 당겨 지은 천불전은 너무 당당하고 욕심스럽게 생겼다. 하지만 문수보현상만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자연암석 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절간 한가운데 청담선사(1902~71) 부도비가 욕심스러움을 한 번 더 잠재운다. 조계종에서 아주 큰스님으로 치는 청담은 진주에서 태어나 고성 운흥사에서 출가하고 옥천사에서 득도했다고 알려졌는데 여기 문수암에서도 크게 용맹정진하는 수도를 했다 해서 73년에 세운 것이다.
산 깊숙이 아스팔트길이 나면 생태계가 망가진다. 하지만 덕분에 바다와 산과 절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데가 한 시간만에 가 닿는 발치로 다가왔다면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아니면 징그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안고 뒹굴어야 하는 것인가.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에서는 국도 14호선을 따라 달리면 된다. 월영동 경남대앞 댓거리를 벗어나 고성·통영 방향으로 계속 달리는 것이다.
고성읍에 들어서면서 고가도로를 넘기 전에 오른쪽으로 들어가 국도 33호선으로 옮긴다. 이렇게 해서 10km 남짓 가면 부포사거리가 나오는데, 부포사거리에서 1km 정도 가면 왼쪽으로 커다랗게 무이산 문수암·수태산 보현사의 안내판이 서 있다.
진주쪽에서는 국도 3호선 따라 사천에 간 다음 고성으로 뻗은 국도 33호선을 타면 된다. 고성 상리면 소재지인 상리초등학교 앞에서 곧바로 가지 말고 왼쪽으로 꺾어지면 5km를 채 못 가 무이산 문수암에 가려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라는 표지판을 자은리에서 볼 수 있다.
안내표지판에서 등산길 들머리까지는 다시 3km 정도 걸리는데 아스팔트로 잘 포장돼 있다.
고성읍내에서는 15km 길이니 택시를 탈 수도 있다. 그래도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마산 남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성읍까지 간 다음 다시 사천행 완행버스(오전 7시 30분 8시 45분 9시 40분 11시, 오후 2시 50분 3시 40분 5시 6시 10분 9시30분)나 하일면행 군내버스(아침 8시 오후 12시 20분 4시 50분)로 갈아타고 가다 부포사거리에서 내려서 걸어야 한다.
진주쪽에서는 사천을 거쳐 고성읍내 가는 버스를 타고 마찬가지 자은리에서 내리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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