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자연에 뒤섞이길 원한다

합천 허굴산(682m)은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높지는 않으나 전체가 바위로 이뤄져 있어 곳곳에서 눈을 즐겁게 해주는 풍경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길이 험하지도 않아 앞뒤로 끌어주며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산행길도 길지 않아 서두르면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합천에는 가야산·매화산·황매산 같은 이름높은 산도 많지만 조용히 숨어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씩씩한 산도 적지 않다. 허굴산을 비롯해 악견산·금성산 등이 그렇는데 이들은 모두 합천댐이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 눈에 띈 것들이다.
아직은 겨울의 한가운데, 매서운 추위가 한 번 지나간 뒤끝에 찾은 허굴산은 아기자기한 맛이 더하는 것 같다. 산아래 마을이나 도심과는 달리 지난해 쏟아진 눈이 채 녹지 못한 잔설이 군데군데 그늘진 곳마다 소담스레 남았다.
아이들은 아마 좋아라 할 것이다. 겨울방학이라지만 많은 어버이들이 일터에 매여 멀리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경남에서 어린아이들이 눈을 구경하기는 흔한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허굴산을 오르다가 그늘에서 녹다 만 눈을 만나면 조막손을 펴서 눈을 끌어모아 잘 뭉쳐지지도 않는 눈을 조물조물거릴 것이다.
합천자연학교가 있는 장단마을을 지나 산행 들머리로 잘 알려진 청강사로 접어든다. 쉬엄쉬엄 들어가 본 청강사는 아주 독특하다. 대웅전·관음전·지장전과 산신각 따위가 있는 것은 여느 절간과 다르지 않지만 오른쪽에 우뚝 솟은 바위 둘이 남다르다.
바위는 우람하기만 한데, 자리잡은 데가 절간 한가운데다 보니 무슨 탑이나 되는 듯이 보인다. 바위 둘을 이어서 다리를 만든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지장전, 여기서 대웅전을 지나 왼쪽에 청강거사부도가 커다랗게 놓여 있다.
아마 스님이 아닌 거사(居士·머리를 깎지 않은 남자 불제자를 이르는 말)의 원력(願力)으로 세워진 절인가 보다. 전각 아래 한 칸 낮춰 나앉은 요사채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보통 산사와는 달리 살림하는 요사채가 세 채나 되는데다 뒤쪽에는 쇠스랑이랑 농약통이랑 농사에 쓰는 연장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전각들과 등을 돌린 채 있는 요사채 앞에는 텃밭 삼아 일군 텃밭이 늘어서 있고 작은 공터가 있어 마당까지 따로 만든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니 절간 들머리에 마구 짖어대는 개 두 마리가 있는 풍경도 산사에서는 참 드문 일이다 싶다.
청강사 들머리에 늘어선 나무들도 예사는 아니다. 축대를 따라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서 남쪽으로 길게 가지를 뻗고 있다. 무언가를 크게 바라며 품을 벌려 안으려 하는 것도 같고 아니면 한바탕 상모를 돌려대며 춤판을 벌이는 듯도 한 게 흔한 풍경은 분명 아니다.
아이와 더불어 오르는 오솔길은 재미나기만 하다. 까닭 없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르니 오만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조그만 연못은 꽁꽁 얼어붙었다. 갈라진 금이 얼음 아래로 선명한데 너무 두텁게 얼어서 올라가 굴려도 아무렇지 않다.

그리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 하늘 바라보며 오르고 오르니

아이손 잡은 걸음걸음 정겹고 굽이굽이 오솔길 마냥 반기네


절 왼쪽 밤밭을 지나 흙길을 조금만 더듬으면 왼쪽으로 공간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산등성이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은 산마루길 너머에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뿌옇게 흩어지니 신비로운 느낌이 조금은 든다.
조금더 가면 수직으로 10m도 넘게 솟은 바위 아래 약샘이 있다. 피부병이나 위장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있는 샘물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호스를 타고 조금씩 흘러내린다. 다시 방향을 돌리면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길에만 넋을 놓지 말고 둘레를 둘러보면 재미난 일들이 적지 않다.
저쪽 바위 끝에 남은 눈 위에는 노루 같은 짐승 발자국이 나 있다. 두 쪽으로 갈라진 발끝이 뾰족하다. 한참 떨어진 옆에는 몽글몽글 뭉쳐진 짐승 똥도 한 무더기 있다. 물론 한 무더기라야 어른 새끼손가락 마디만한 세 덩이가 있을 뿐이다. 아마 아이 눈에는 하얀 바탕에 까만 점이 박힌 곤충 알도 색다르게 보일 것이다. 싸리 비슷한 나무가지 끝에 매어달렸다.
길의 가파름을 조금만 견디면 곧바로 산마루에 이른다. 산꼭대기는 생각보다 조그맣다. 크고작은 바위들로 이뤄진 정상은 채 열 사람도 한꺼번에 서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지만 전망은 그럴 듯하다. 마을을 건너 마주 보이는 산은 금성산이란다. 그러면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앉은 놈은 악견산이겠다. 허굴산과 마찬가지로 바위를 곳곳에 드러낸 산들이 앞쪽에 엎드리고 있어 시원함이 더욱 더하다.


○ 합천 허굴산 찾아가는 길 - 황매산공원 지나면 청강사…

진주에서는 국도 33호선을 타고 산청을 지나면 합천이다. 마산이나 창원에서는 남해고속도로에 일단 들어선 다음 의령·군북 나들목으로 빠져나오는 길로 접어들면 된다. 여기서 국도 20호선을 따라 줄곧 달려서 대의고개를 넘으면 진주에서 오는 국도 33호선과 마주치는데, 오른쪽으로 틀면 합천으로 들어갈 수 있다.
33호선을 타고 오다가는 삼가면 소재지에서 다리를 건너기 전에 60호 지방도로 옮겨 왼쪽으로 달려야 한다. 10km 남짓 달리면 오른쪽으로 합천댐·황매산 군립공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5km 정도 떨어진 곳에 황매산 군립공원 들머리가 나오고 여기서 곧장 3km 남짓 더 달리면 양리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서 청강사 안내판을 볼 수 있다.
합천댐으로 들어가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 1026번 지방도로 옮기면 합천읍내 가는 길이 된다. 2km 가량 더 들어가 만나는 장단마을에서 1층짜리 학교 건물이 보이면 민가가 몰려 있는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마을을 지나는 콘크리트길을 따라가다가 조그만 언덕을 지났다 싶을 때 오른쪽에 보면 청강사 가는 길이 바로 나 있다.
대중교통편은 마산에서 아침 8시 10시 40분 12시 50분 오후 2시 45분 3시 20분 5시 40분 여섯 차례 있고, 진주에서는 아침 6시 30분부터 밤 8시 10분까지 20~30분 간격으로 스물한 차례 버스가 나간다. 합천 읍내에서는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40분까지 1시간마다 있는 대병행 군내버스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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