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오래된 추억으로 살고싶다

오전 10시께 무릉산(556m) 들머리 장춘사를 찾았다. 골짜기에 숨은 듯 자리잡은 조그마한 절간 앞마당에는 햇살이 내리쬐지 않고 있었다. 때이른 산그늘에 묻혀 고즈넉하기만 했다.
등산길은 조사전과 약사전 사이 골짜기 따라 대밭을 질러 나 있다. 바람 일렁이는 대로 속삭거리는 대밭을 지나면 있는 듯 없는 듯 산길이 나온다. 옛날 나무꾼들이 오르내리던 길처럼 좁고도 꼬불꼬불하다. 무성한 낙엽에 덮여 한순간만 무심해도 바로 길을 잃을 것 같다.
소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고 참나무가 주로 우거진 숲이다. 지금은 잎을 떨구고 추레하니 서 있지만, 군데군데 나타나는 널찍한 바위들을 보니 햇볕 내리쬐고 날씨 따뜻할 때 찾으면 한나절 즐기기에는 괜찮겠다 싶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산길을 30분 남짓 타면 산등성에 이르고 오른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정상이다. 무릉산이라 해서 무릉도원을 떠올렸지만 그건 아니었다. 올라온 길도 팍팍하기만 했고 전망도 아주 시원하지는 않다. 탁 트인 맛은 나지막한 산자락이 이어지는 서북쪽만 즐길 수 있고 양옆 능선과 장춘사 골짜기는 바라볼 수 없다.
정상 둘레 동그랗게 자리잡은 억새밭이 따신 햇살 아래 몸을 부비는 모양만큼은 꽤 정다워 보인다. 정상 표지석에서 억새 너머 휘영청 구부러진 소나무를 바라보는 풍경도 예스러운 맛이 남달라 잠깐 눈길을 던져 놓을 만하다.
반면 장춘사는 참 그럴 듯하다. 신라 흥덕왕 때 무염국사가 지었다는데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신라말 작품이라는 약사여래돌부처는 70년대에 금빛으로 칠해져 버렸다. 앞마당 사층석탑도 원래는 오층이었으리라 짐작만 될 뿐이고 제자리가 아니어서 근본은 알기 어렵다.
장춘사의 참맛은 조그맣다는 데 있다. 걸핏하면 해대는 불사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앉은 천연덕스런 공간인 셈이다.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도 색다르고 본존불을 모신 대웅전도 크지 않다. 설법을 강(講)한다는 무설전(無說殿)보다 작아 보인다.
산문을 처음 연 스님을 섬기는 조사전은 대웅전 옆자리에 여염집 사랑채 차림으로 들어앉았고 귀하신 약사여래불을 모셔놓은 약사전도 가로세로 한 칸짜리 집으로 그만이다. 오른쪽 산신령도 조그만 산신각에서 호랑이를 거느리고 흰 수염을 쓰다듬는다.
뒤란에서 노랗게 익은 탱자 몇 개를 주워서 곧장 내려온다. 아이들 겨울방학 때이니 산과 절간만 둘러보고 돌아올 수는 없다. 숙제도 할 겸 아이와 더불어 하나쯤 현장체험을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인데, 칠원공설운동장 위쪽 산비탈의 새발자국 화석이 안성맞춤이다.
운동장과 공장지대와 개울을 가로질러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함안한국새라는 학명을 얻게 된 8000만년전 중생대 백악기의 멧새 발자국이 왼쪽 바위에 빼곡이 찍혀 있다. 물가 진흙이 그대로 굳은 바위층인데 새발자국과 함께 당시 출렁였던 물결 자취도 생생하게 남았다.
요즘 새발자국과 다를 바 없다며 심드렁하게 여기기는 너무 아쉽다. 다른 화석, 이를테면 나무나 물고기 동물 뼈 따위는 지층에 파묻힌 채 압력과 열기를 받아 변형이 됐다. 반면 여기 이 새발자국 화석은 8000만년전 모습 그대로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은 원시 그 자체다.
자세히 보면 그 때 흩뿌려졌던 빗방울 자국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옆 지층에 동그랗게 파인 초식공룡 발자국도 있다. 말하자면 추운 겨울 한 쪽 언덕에 기대어 공룡과 새와 벌레들이 어울리던 까마득한 옛날로 ‘마실’을 잠깐 다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편은 다소 불편

마산에서는 회성동을 지나 내서읍으로 빠져나가는 국도 5호선을 타면 된다. 그러니까 진주나 창원에서 가려면 일단 마산으로 들어와야 하는 셈이다.
내서읍 호계리를 지나 함안군에 들어서서 조금 더 나아가면 칠원면 소재지가 나온다. 삼거리는 그대로 지나치고 두 번째 나타나는 네거리에서 오른쪽 칠북으로 접어들어 줄곧 달리면 5분도 채 안돼 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여기 운곡에서 왼쪽으로 틀고 보면 곧바로 오른쪽에 ‘장춘사’ 가는 안내표지판이 나 있다. 장춘사는 여기서 외줄기로 나 있는 콘크리트길 3.5km 끝에 매달려 있고 절간 마당을 가로질러 대밭 있는 데가 산행의 출발점이다.
새발자국 화석은 칠원면 소재지에서 찾아야 한다. 소재지를 세로로 지르는 아스팔트길을 가다 보면 왼쪽 공설운동장이 있는 야산 중턱에 희게 빛나는 철재 구조물이 있다. 화석은 비를 가리는 이 구조물 아래에 있다.
함안군 홈페이지에는 새발자국 화석이 ‘칠원면 용산교 주위’에 있다고 했으나 실제로 용산교 주위를 더듬어 봤더니 칠원향교밖에 찾을 수 없었다. 향교는 대성전·명륜당·풍화루 등 현판만 크고 요란할 뿐, 마당 구석에 쓰레기 태운 자취와 함께 제사 지내고 남긴 술병 따위만 수북할 뿐이어서 두 겹으로 실망스러웠다.
마산과 함안군 가야읍 사이 대중교통편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가야읍 함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다음 칠원행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이 차편이 만만하지 않다.
마산서 가야읍까지는 아침 6시 35분부터 밤 10시까지 10~20분마다 버스가 나가지만 가야읍 터미널에서 칠원면 사무소를 오가는 버스는 아침 8시 40분 12시 낮 2시 30분 4시 30분 저녁 6시 등이 모두다.
게다가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공영버스도 가야읍에서 아침 9시 30분과 낮 2시 저녁 5시 30분 세 차례뿐이니 가야읍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택시를 타거나 처음부터 자가용 차를 몰고 가는 수밖에 없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