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특수기계노조가 지난 달 17일부터 경남은행 본점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농성은 근로기준법상 우선변제가 보장되어 있는 임금 3개월치와 퇴직금 250일치에 대한 지급을 경남은행에 요구하면서 시작된다.

노조가 부실 경영을 일삼아온 기업주가 아닌 주 채권 은행에 이런 요구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노조의 억지쓰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노조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광특수기계는 제지기계부문 전국 도급 1순위인 경남은행지정 유망중소기업이었다. 이런 우량기업이 차입경영과 족벌경영으로 인해 부실기업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부실기업주에게 먼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도가 나기 직전인 98년 기준 자본금 25억원 밖에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경남은행의 채권이 150여억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은행측의 감독소홀 또한 적지 않다. 게다가 지난해 3월 31일 부도가 난 이후 노조는 기업정상화를 위해 체불임금 반납·상여금 반납·복지비용 삭감·휴업확대 실시·퇴직자 자체 선정을 통한 감원 등 각종의 자구노력을 성실히 이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9월 6일 관계인 집회에 경남은행의 불참으로 법정관리 신청을 하지 못해 파산에 이르게 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부실기업 정리에서 발생하는 전형적 문제인 도덕성 상실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회생에 주력한 노조가 우선변제의무가 있는 임금채권에 대한 법적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재산가압류신청을 하지 않는 가운데 경남은행은 후순위 채권에 대한 처분권을 행사하여 태광특수기계 노동자들은 이제 와서 밀린 임금은 고사하고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딱한 사정 앞에서 도덕이 과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물론 법적으로 따진다면 노조의 책임이지 경남은행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노조가 기업회생을 위해 힘을 쏟는 동안 경남은행은 채권회수에 급급했다는 비난을 벗어날 수는 없다.

자신들의 부실에 대해서는 정부에 공적자금을 쉽게 요청하면서도, 부실은행 통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 도덕적 이중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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