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른다 또다른 희망이


해는 언제나 똑같이 떠오르지만 맞이하는 느낌과 자세는 때마다 다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것이다. 묵은해가 지나고 새해가 다가올 때면 저마다 떠오르는 해를 가슴 가득히 안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하게 해맞이를 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새로움에 대한 희망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까닭이 없었다.
달라질 것 없는 일상, 그동안 저질러온 온갖 일에 대한 아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을 씻고 욱일승천하는 기세를 빌려 빌붙어 살아온 지난 나날과는 달리 올해만큼은 마음먹은 바를 이루겠다고 다짐해보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눠 놓은 구분이, 의지와는 달리 어긋나기만 하는 자신의 삶에 매듭을 지어주는 데 때때로 쓰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높은 산에서 운무를 뚫고 솟는 해맞이도 있고 바닷가에서 황금빛으로 물결 번득이며 말갛게 씻은 해를 안을 수도 있겠다.
아는 사람한테 남해에서 해맞이를 할만한 데를 물었다. 그랬더니 망운산을 꼽았다. 금산이 좋기는 하나 2000년 새해 첫날 5만 명이 몰릴 정도로 너무 많이 알려져 불편하고 설흘산도 좋지만 사방 탁 트인 맛은 덜하다는 것이다.
망운산(785m)이라면 한 번 겪어본 산이다. 꼭대기 바로 아래 망운암까지 갔다가 해 저문 뒤 떠오른 보름달에 홀려 길을 잃은 게 지난해 9월이었다. 달님은 씩씩하게 불쑥 한 순간에 솟아오르는 해님과 달리 조용히 흔들리며 떠올랐으나, 곧바로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말았다.
망운산은 예나 이제나 남해 으뜸 높이로 서 있었지만 해맞이는 저번 달맞이처럼 쉬 이뤄지지 않았다. 22일 산기슭 화방사에서 산행을 시작해 1시간 30분 남짓 올랐을 때와 25일 망운암까지 차로 간 다음 30분 가량 올랐을 때 해는 구름 속에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다. 희망 찾기가 이와 똑같거나 더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더욱 추워진 26일, 한 번 더 올라간다. 망운산의 동쪽은 산 다음에 바다, 바다 가운데 섬, 섬 너머에 다시 산, 산 지나 다시 바다, 하는 식으로 겹쳐 있다.
여기 해돋이는 산과 섬을 모두 지난 위에다 수평선을 가로지른, 가장 바깥에 있는 바다를 뚫고 치솟는 셈이다. 날씨는 맑다 보니 시계는 전날과 같은 7시 20분을 가리키는데도 어두운 정도는 한결 덜하다. 하지만 바다안개는 채 걷히지 않았나 보다.
망운산 해돋이는 섬과 바다가 온통 들썩이는 듯하다고 한다. 수면 아래 있으면서 하늘부터 붉게 칠한 태양은 수면을 비집고 오르면서 아래로도 빛을 뿌린다. 아직 미명을 벗어버리지 못한 산과 섬들이 아래위 밝은 빛에 몰려 왕창 떠오르는 것이다.
앞뒤 다 더해도 5분 남짓밖에 안 걸리는 짧은 해돋이에 목을 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해가 쏘아대는 붉은 빛에 기대어 눈에 들어오는 온갖 것들이 들뜨고 만다. 바라보다가 덩달아 새해 아침에 걸맞은 ‘존재의 고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해가 솟은 앞쪽 바다는 햇살을 되쏘며 붉게 물든지 이미 오래다. 게다가 동서남북이 활짝 트인 정상이다보니 슬금슬금 물러나는 어둠이 곳곳에서 보인다. 눈을 닦고 다시 보면 어느새 세상이 환해져 있다.
온몸에 내리쬐는 햇살을 느끼며 눈을 살며시 감는다. 산 너머로도 뻗쳐나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니 하동화력발전소 너머 지리산 연봉들이 구름을 이고 흰눈을 덮어쓰고 인사를 한다. 새해 첫 해맞이 장소로 이보다 더 그럴 듯한 데가 있겠는가.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창원·마산·진주에서 순천으로 가다 진교 들머리에서 빠져나온다. 남해대교는 진교에서 12km 남짓 떨어져 있다.
화방사를 거쳐가려면 19번 국도로 11km 정도 가다가 안내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들어야 한다. 다음은 죽 달린 다음 다시 나오는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접어들어 1km쯤 내달리면 된다.
발품을 덜 들이려면 서면 노구마을로 가야 한다. 19번 국도로 6km쯤 온 다음 고현면 소재지에서 오른쪽 77번 국도로 접어든다. 정포삼거리와 회룡마을 근처 왼편 대곡마을 가는 길로는 눈길도 주지 말고 곧장 조금만 더 가면 노구마을이다.
망운암 오르는 7.5km 짜리 시멘트길이 시작되는데, 새벽녘 어둔 길에 작은 표지판을 놓치지 않으려면 자동차를 느릿느릿 움직여야 한다. 망운암에서 꼭대기까지는 30분이면 족하다.
산길은 약수터 오른쪽에 나 있다. 아니면 망운암 산문에 기대어 해맞이를 하든지.
대중교통도 나쁘진 않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까지는 아침 6시 40분부터 밤 8시까지 20~30분마다, 마산남부시외버스터미널서도 아침 7시부터 밤 7시 30분까지 모두 14차례 차편이 있다.
하지만 하룻밤 묵을 생각이 아니면 자가용 자동차를 타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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