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머금고 나를 감췄다 바람만 찾아오면 눈웃음 짓는 연못


이번에는 못과 삼림욕장이다. 삼림욕장은 잘 가꿔져 있고 못물은 겨울답지 않게 꽉 차 있다. 식구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 꼭대기까지 오르는 대신 짧게 등산 맛을 본 다음 못둑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다. 창녕 고암면 감리에 그리 할만한 못과 삼림욕장이 갖춰져 있다.
시골 출신이라면 누구나 못에 얽힌 기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골짜기에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 어른들이야 논밭에 물 대려고 만들었겠지만 아이들은 사실 그런 용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여름철, 소에게 풀을 뜯기거나 꼴을 한 지게 욕먹지 않을 만큼 채우면 아이들은 저마다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든다. 남녀 구분 없이 물을 끼얹거나 먹이며 어울린다. 어떤 이는 한 발 한 발 들어가다 갑자기 허방을 딛는 느낌과 함께 중심을 잃고 허우적댄 기억도 있다. 사람이 일부러 만든 저수지는 대부분 바닥의 기울기가 갑작스레 급해졌던 것이다.
또 다른 기억도 있다. 고1쯤이나 됐을까, 어쩐지 허전하고 쓸쓸한 생각이 들어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못둑을 찾은 적도 있겠다. 띠들은 누렇게 시들어 있고 갈대는 하얀 손을 내뻗어 허공을 쓰다듬는데 바람에 가슴을 내어 주다가 쪼그리고 앉아 잔물결에 눈을 준다. 다시 일어나 둑길을 걸어가다 문득 납작한 돌을 찾아 힘껏 뿌린다. 물수제비를 뜨는 것이다.
감리못은 보기 드물게 크다. 그도 그럴 것이 화왕산쪽과 천왕재쪽 두 골짜기에서 물을 받아 채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쪽과 이쪽 골짜기로 둘로 무리지은 미곡마을을 이고 있는 셈이다.
둘레가 아직은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요즘은 웬만하면 곧바로 밥집·술집과 모텔이 짝지어 들어서는데 여기는 주차장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땅을 골라놓은 자취만 보인다. 마을 들머리 솔숲 사이 아스팔트 따라 잔잔하게 수면이 펼쳐진다.
다락논이 다닥다닥 붙은 위쪽은 두 줄기 개울과 이어졌다. 아래쪽 흙과 돌로 두툼하게 둘러친 둑이 튼튼해 보이는데 깨끗하게 밀어버린 탓에 갈대는 보이지 않는다. 저쪽 수문 너머 산기슭은 다가갈 수 없겠고 이쪽은 아스팔트 길따라 천천히 걸을 수가 있다.
겨울 못의 아름다움은 가늘게만 떨리는 잔물결에 있다. 어느 계절인들 저수지 물이 크게 요동칠 일이야 없겠지만, 겨울 못은 주변의 들이랑 산이랑 마을을 거꾸로 담았다가 싸느랗게 부는 바람에 가만히 흔들릴 때 한껏 정겹다.
게다가 지금 감리못에서처럼, 저기쯤에서 청둥오리 두어 마리가 빠르게 헤엄치며 물길을 가르기까지 하면 더욱 그럴듯하다. 맞부딪히는 물결 위에서 마을 창고랑 기와집들이 어리어리 어리는 것이다.
감리삼림욕장은 전망대와 오솔길 놀이시설 따위가 어우러져 있다. 전망대는 왼쪽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면 된다. 발걸음 빠르기에 따라 10분이나 20분쯤 놀리면 되는데 가파르기가 예사롭지 않아 짧은 산행에도 땀이 배어 나온다.
골짜기에는 아름드리 바위들을 아예 새롭게 쌓아올렸다. 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다가 바위 틈새로 숨어버리거나 수북하게 쌓인 낙엽 아래로 몸을 숨긴다. 산책하기 딱 알맞은 오솔길을 벗어나 내려오면 이처럼 숨어 있는 고드름도 만날 수 있다.
오솔길은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잇는 곳곳에 실핏줄처럼 뻗어 있다. 그리 험하지 않으니까 마음 편히 거닐기만 하면 된다. 언덕 비탈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경쟁하듯 자라고 있다. 참나무에 둘러싸인 소나무 한 그루는 생기를 잃고 잎이 누렇게 시들었다.
바닥에는 길쭉길쭉한 낙엽들이 수북한데, 지는 햇살 덕분에 어울리지 않게 윤이 나는 놈도 있다. 모두들 갈무리하는 연말인데다 그림자까지 길게 지니까 느낌이 어째 남다르다. 가는 길에 두어 번 들른 적이 있는 동네 술집에 들어가 소주라도 한 병 따고 싶다.


○ 찾아가는 길

창원·마산에서 창녕까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를 타면 손쉽게 갈 수 있다. 진주에서는 남해고속도로로 마산까지 와서 갈아타야 한다. 감리 못과 삼림욕장은 창녕읍내에서 다시 10km 남짓 더 가야 한다. 밀양으로 가는 국도 24호선을 따라 간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 나들목에서 신호를 받아서 좌회전한 다음 줄곧 똑바로 가면 된다. 10분쯤 걸려서 시외버스터미널과 장터를 지나쳐 왼쪽으로 가야 시대 고분 무리가 나타나면 다시 왼쪽으로 꺾어든다.
여기서부터는 네거리가 나오든 삼거리가 나오든 앞으로만 달리면 된다. 9km 남짓 가면 감리못과 미곡마을이 나오고 800m쯤 더 가면 감리마을, 삼림욕장 들머리에 닿는다. 여기서 꼬불꼬불 시멘트길이 시작되는데 1.3km 정도 들어가면 산림욕장이 달려 있다.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20~30분마다 창녕 가는 버스가 나간다.
하지만 창녕읍내에서 고암 감리 가는 시내버스가 아침 7시에 한 대 있을 뿐이어서 택시를 타거나 아예 처음부터 자가용 자동차를 끌고 가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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