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하다! 마음껏 포효하고 싶구나

백두대간을 따라 태백산맥으로 뻗어 내려가던 산줄기가 서(西)로 꺾인다. 본 맥(脈)은 서(西)로 보내지만 남으로 곧장 내려가던 백두대간의 그 힘은 낙동정맥을 형성하며 경상남북도와 울산광역시의 경계인 영남에서 다시금 용솟음친다. 백두대간의 그 힘이 해발 1000m가 넘는 산군(山群)을 만드니 이를 ‘영남알프스’라 부른다.
언양 석남사가 있는 가지산(1240m), 청도 운문사의 운문산(1188m), 밀양 표충사 뒤편의 재약산(1189m), 양산 통도사에 취서산(1092m), 신불산(1209m), 간월산(1083m), 언양에서 청도 운문사로 가는 도중의 고헌산(1032m) 등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중 얼음골과 100만평이 넘는 억새평원인 사자평, 표충사 계곡을 만나기 위해 재약산으로 올랐다.
초겨울 산행이고 영남알프스인지라 마음도, 채비도 단단히 했다.

◇ 얼음골에서 산등성이 갈림길까지

남명리로 접어들어 9시 40분경 얼음골 주차장에 도착. 신발 끈을 조이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영남알프스를 만나기 위한 채비를 단단히 했다. 깊게 숨을 들이키며 맑은 공기를 한껏 삼킨다. 크게 심호흡 한번하고 얼음골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계곡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얼음골로 들어섰다. 한여름에는 바위틈새에 얼음이 얼고, 찬바람 부는 겨울이면 따스한 공기가 바위틈새로 나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얼음골. 그 문턱에서 호텔을 만난다. 자연을 만나러 애써 먼길을 찾아왔건만 처음부터 호텔이라니…. 산중턱의 산장이야 산에서 산꾼들이 휴식과 위험을 피하는 곳이다. 산아래 숙박시설은 그런 데로 이해가 되지만 얼음골 문턱에 호텔이라…. 좋게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과 열악한 지방재정에 지방세수입이라는 자본적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합작품에 쓴웃음을 짓고는 성큼성큼 자연을 만나러 걸음을 내딛는다.
산으로 접어들고 오르기를 시작하자 산은 지나는 바람결에 버리고 오르라는 속삭임을 실어 전한다. 인간세상에서 쌓아둔 좋지 못한 많은 것들을 버리라고 한다. 세속의 때와 짐을 버리고 순수한 자신으로 되돌아가라 한다.
버리고 또 버리며 한참을 올랐다. 앞으로, 옆으로 보이는 건 나무, 바위, 깎아지른 암벽이요, 밟히는 건 온통 바위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뒤돌아 본 풍경은 눈에서 마음까지, 온 몸에 시원함을 전해준다.
오르는 바위 사이로 새하얀 결정체들이 있다. ‘누가 이런데다 소금을 뿌려놨지’하는 의구심이 들어 유심히 살펴보니 얼음결정체다.
이제 양옆의 암벽이 좁혀온다. 자신을 깎아내고 우뚝 선 그 모습이 아름답다. 많은 것을 버리고 오르라 하더니 그는 많은 것을 버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가파른 얼음골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른편으로 암벽의 정상이 보인다. 영남알프스의 한 봉우리를 올라선 것이다. 그 봉우리를 내려보며 왼쪽 길로 올라섰다. 이제 마지막 가파른 길이다.

◇ 산등성이 갈림길에서 사자봉까지

억새가 보인다. 산등성이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정표가 섰다. 배내골 6Km. 사자봉 2.3Km. 재약산 사자봉을 만나러 오른편 길로 오른다. 이제부턴 거의 평지다. 조금만 가면 곧이어 영남알프스의 위용을 만난다.
광활하다. 손에 잡힐 듯 저 멀리 굽이굽이 펼쳐진 산굽이들…. 아득하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들…. 보는 이의 시선을 트이게 한다. 드넓다. 사자평 너른 평원…. 바람에 흔들리며 한가득 자리잡은 억새들…. 보는 이의 가슴을 드넓게 한다. 이제부턴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사자봉을 향해 수월하게 걷는다.
오른쪽 볼이 차다. 반면 왼쪽 볼에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사자평을 만들기 위해 반대편은 이렇게나 깎아지른 절벽이 된 것일까…. 절벽을 타고 넘는 바람은 차고 햇빛을 담은 사자평 분지는 온화하다.
금새 사자봉(1189m)이다. 양팔을 한껏 벌려 세상을 향해 마음껏 포효해 본다.

◇ 사자봉에서 고사리분교까지

재약산 사자봉에서는 한계암을 지나 금강폭포를 만나고 표충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다. 사자평을 지나 터만 남아 있는 고사리분교를 향해 재약산 수미봉(문필봉) 가는 길로 내려섰다. 눈에 띄는 돌탑이 여럿 있다. 누가, 무슨 맘으로 돌탑을 세웠을까….
내려가는 길에 산꾼 중 한 명이 옛날 이야기를 한다. 20년 전쯤에 왔을 땐 이 곳 억새가 사람 키보다 훨씬 컸단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억새풀을 헤치며 작은 도랑 같은 길을 따라 내려왔는데 그것이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억새는 허리춤 크기다.
수미봉(1119m)을 넘어 고사리분교로 내려간다. ‘아~아~으악새 슬피우니~’ 노래가 나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억새평원을 지나쳐가니 어느새 차가 다닐만한 너른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던지, 내려가는 중간에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던지 고사리분교 터를 만난다.
하늘아래 첫 학교였던 고사리분교. 땅을 일구고 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 지난 94년 폐교되고, 99년에 결국 철거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밀양시가 다시 복원한다고 하니 머지않아 학생 없는‘추억의 고사리분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계곡을 따라 표충사까지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재약산은 이제 가슴 가득 채워가라 한다. 고사리분교에서 표충사로 내려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산길이고 또 다른 길은 계곡 건너편을 따라 차가 오르내리는 도로이다. 산길로 내려섰다.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폭포를 만난다. 하늘 바로 아래 암갈색 바위가 병풍처럼 서있고 그 위 하늘에서 물을 보내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물은 다시 계곡 아래로 떨어진다. ‘층층폭포’다. 층층폭포의 위층을 지나고 있다. 건너편 도로에서 사람들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층층폭포를 전체적으로 보며 내려온다.
계곡이 깊다. 건너편 깎아지른 바위절경을 감상하며 일상으로 내려간다. 조금을 내려가면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깊은 계곡 사이로 두 개의 폭포가 연이어 섰다. ‘홍룡폭포’다. 선녀를 만나고픈 간 큰 사냥꾼들만 오라는 듯 그저 전망대에서 바라볼 뿐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이제 계곡이 바로 곁이다. 초겨울인데도 물이 많이 흐른다. 신발 벗고 발 담그며 피로를 풀어본다. 시리다. 시린 그 느낌이 좋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따라 내려간다. 곧이어 표충사를 만나게 된다.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죽림사라 칭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표충사를 이 곳으로 옮기면서‘표충사(表忠祠)’가 되었다 한다. 주요 문화재 및 건물로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을 비롯하여 보물 제467호의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石燈) ·표충서원(表忠書院) ·대광전(大光殿)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시간 내어 돌아봄직하다.
저녁 5시경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세속의 때와 짐을 버리며 순수한 자신으로 올랐다가 영남알프스와 표충사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다시금 삶의 활력을 채워 내려온 산행.
지친 심신을 달래고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금 활기찬 생활을 꾸려나갈 힘을 주기에 사람들은 산을 찾는가 보다. 봄바람이 부는 내년 봄에 다시 한번 찾으마 약속한다.


▶ 찾아가는 길

△등산로

얼음골에서 사자봉으로 올라 고사리분교 터를 지나고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은 소요시간이 5시간 가량 걸린다. 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겐 4시간으로 충분한 거리겠지만 쉬엄쉬엄 다녀오려면 6시간 정도의 시간계획을 세워야 한다.
직접 차를 갖고 영남알프스 재약산을 만났다가 돌아오려면 밀양 표충사 쪽으로 가면 된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오르면 된다.
선택할 수 있는 등산로는 두 세 개가 있다. 하나는 금강폭포를 만나고 한계암을 지나 사자봉에 올랐다가 고사리분교로 내려오는 길이다. 사자봉까지는 가파른 길이다. 사자봉을 올라서면 다음부터는 수월한 길이라 사자평과 층층폭포와 홍룡폭포 등의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오면 된다. 또 다른 길은 표충사 계곡을 따라 홍룡폭포, 층층폭포 등을 먼저 만나고 산행을 즐기면서 사자봉까지 올랐다가 한계암 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둘 다 4~5시간쯤 걸린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이들은 수미봉을 넘고 사자봉사이의 억새평원에서 내원암 쪽으로 내려오는 짧은 거리의 등산로도 있다.

△버스안내

밀양 버스터미널에서 얼음골 가는 차는 아침 7시35분부터 오후 7시5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있다. 표충사에서 밀양 버스터미널로 가는 첫차는 7시50분이고 막차는 저녁 8시10분에 떠난다. 배차간격은 40분 정도이다. 50분쯤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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