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단풍, 갖가지 색으로 몸치장 ‘어서 오라’ 반기며 손짓

늦은 가을, 경남 지역의 공부방과 한울타리 상근 선생님들이 나들이를 다녀왔다. 경북 포항 내연산 보경사. 아이들과 함께 하느라 지쳐 있기 쉬운 몸과 마음을 서늘한 골짜기에 한 번 담가 보는 행사다.
공부방은 마산·진해·창원에서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 곳을 골라 아이들을 거두고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하며 마산·진주·통영에 하나둘씩 있는 한울타리는 여러 까닭으로 혼자가 됐지만 자립하기에는 이른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함께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천주교 마산교구 아동복지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고 있다.
9일 오전 8시 마산역 광장에서 모인 일행 14명은 전세 낸 버스를 타고 3시간 반만에 내연산 보경사 들머리 엄청 너른 주차장에 가 닿았다. 일행을 맞은 것은 아주 멋진 은행나무, 높고 우람하지만 않지만 이파리 색깔이 너무 좋다.
내연산 너머로 구름 몇 조각 걸친 채 펼쳐져 있는 하늘을 닮았는지 투명한 노란색이다. 어떤 이는 연둣빛이 옅게 깔렸다 하고 어떤 이는 맑고 가볍다 한다. 어떤 선생님은 ‘뇌랗다’고 연신 말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을 담아보려고 애를 쓴다.
내연산 들머리에는 보경사가 있다. 동해안에서는 큰 절 축에 드는 보경사(寶鏡寺)는 이름 그대로 거울과 관련이 있다. 중국 진나라에서 공부한 신라 지명스님이 돌아와 팔면보경을 용담못 깊숙이 묻고 메운 다음 절을 세워 삼국통일과 왜구 퇴치를 기원했다는 얘기가 내려온다.
경내에는 원진국사비와 원진국사 부도가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도 볼 수 있다. 대웅전과 대적광전은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시대 건물이고 신라 말 고려 초에 지었다고 짐작되는 오층탑은 새긴 수법이 아주 사실적이다. 하지만 전해 들은 바와는 달리 절간 둘레에서 우거진 솔밭을 볼 수는 없었다.
보경사를 지나 오르는 골짜기는 절간보다 몇십 배는 더 멋지다. 사람보다 솜씨가 여러 수 위인 게 바로 자연인 것이다. 골짜기에 들어서면 산 이름이 왜 내연산인지 알게 된다. 신라 진성여왕이 여기서 견훤의 난을 피한 뒤 종남산에서 내연산으로 바꿨다는데, 말 그대로 안(內)으로 쫙 펼쳐져(延) 있다. 임진왜란 때 백성 9만 명이 피란을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밀양 구만산 골짜기보다도 훨씬 넓다.
골짜기에는 경북 3대 명승 가운데 하나라는 열두 폭포가 있다. 산의 높이가 711m밖에 안되는 데 비춰보지 않더라도 폭포가 엄청나게 많은 셈이다. 상생폭포를 시작으로 삼보폭포, 보연폭포로 열두 폭포가 이어지는데 이날 산행에서는 가장 빼어나다는 관음폭포는 보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 여름 태풍으로 쇠다리가 끊어진 데다 늦지 않게 돌아오려고 서둘러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다 ‘다음에 한 번 더 와야지’ 할 뿐,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돌과 물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충분히 눈과 귀에 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은 제철을 살짝 지난 단풍에 탄성을 내지르다 보니 아쉬워할 여가도 없었던 것이다.
골짜기가 깊어서, 어귀를 지날 때마다 산그늘에 들었다가 벗어났다가 하는 통에 가을잎의 색깔이 달라진다. 게다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올 때 붉고 노란 단풍잎이 어느 쪽으로 어느 정도로 몸을 비트는지에 따라 또 색깔이 달라지니 그야말로 시시각각 형형색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향로봉 산마루까지 이르는 정식 산행을 하려면 적어도 7시간은 넘게 잡아야 하는 게 내연산이라 한다. 이날 일행이 내연산에 쏟아놓은 시간은 길어야 네 시간, 물과 바위로 가득한 골짜기를 그것도 조금만 헤집고 내려왔건만 아무도 섭섭해하진 않는다.
내연산에서 심신을 씻어서 깨끗이 물들이고 온 선생님들 덕분에, 아마 다음 주부터는 공부방과 한울타리들이 한결 더 활기로 가득할 것이다.


△찾아가는길

마산·창원·진주에서 자동차를 몰고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에 올리면 된다. 경주 나들목에서 빠져나온 다음 표지판 따라 죽 가는 것이다. 그런 다음 포항 시내에서 영덕·울진·삼척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가게 된다. 30분 남짓 달리다 송라면에서 왼쪽으로 꺾은 다음 500m쯤 가면 왼쪽에 ‘보경사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서 4km 올라가면 된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1시간이나 50분마다 나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진주나 창원에서는 차편이 없으니 마산에서 갈아타야 한다. 포항종합터미널에서 보경사로 가는 시내버스는 하루 열네 차례 정각에 운행되고 있다. 마산에서 포항까지 2시간 40분, 포항에서 보경사까지는 다시 4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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