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서면 들어오는 아름다운 앵강만 한눈에

겨울바다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곳이 있다. 드라이브만 즐겨도 좋고 겨울바다를 보면서 산의 매력을 함께 즐기는 산행만을 즐겨도 좋다. 욕심 많은 이가 있다면 두 가지를 한번에 다 할 수도 있다.
섬이면서 ‘도(島)'가 붙지 않은 섬이 있다. 작은 섬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다. 오래 전부터 도로가 잘 닦여져 있었고, 72년 동양 최대의 현수교가 놓인 이후에는 ‘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바로 남해다. 남해의 남면 해안도로와 바다 일출이 좋기로 소문난 설흘산을 만나러 떠나보자.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교터널을 지나 진교 나들목에서 남해로 내려서 약 30분 가량 주행하면 남해대교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파란빛이 도는 회색이다. 다시 예전의 붉은 색으로 바꾼다고 하니 늦어도 2004년 전에는 붉은 색을 되찾은 남해대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곧바로 만나는 것이 너무 짧아 괜히 아쉬운 벚꽃 숲 굴이다. 봄이면 햇살마저 하얀 색이고, 여름이면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초록빛으로, 가을이 오면 그만의 색깔로 채색하며, 겨울이면 모처럼 그의 몸뚱아리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벚꽃 숲 굴을 통과해 19번 국도를 따라 읍내로 향한다. 얼마 안가 성웅 이순신이 맨 처음 묻혔다는 관음포 ‘이락사'가 오른편으로 보인다. 제법 너른 주차장이 있으니 잠시 들러 남해로 오는 동안의 피로도 풀 겸 그곳에서 임진왜란사와 자연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다.
이곳을 지나면 남해 섬에서 맨 처음 4차선 우회도로를 만난다. 왼편으로 보이는 마을은 ‘탑동'이다. 예전엔 남해를 오가는 길목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우회도로를 따라 남해에서 제한속도가 가장 높은 80㎞로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친다. 남해의 서쪽 해안을 감상하며 서면 스포츠파크나 남면으로 가려면 이정표를 따라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된다.
읍내 입구에 다다르면 두 번째 4차선 우회도로를 만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름이면 우회도로를 타고 스쳐 지나는 것이 좋겠지만 지금은 직진해보자. 읍내 구경도 할 겸. 이제부터는 금산·상주방면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세 번째 4차선 우회도로를 만난다. 우회도로 말미에서 삼동면, 창선면 이정표를 만난다. 계속 직진하면 된다. 내리막으로 우회도로가 끝나면 다시 2차선 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꺾이며 다시 바른 길이 나오면 곧이어 왼편으로 고갯길이 시작된다. 왼쪽으로 꺾이며 오르는 고갯길 중간에 1024번 ‘용문사' 이정표가 있다. 오른쪽으로 꺾이는 제법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 곧이어 남해바다를 왼편에서 만난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오른편으로 호구산 ‘용문사'가 유혹하고, 남해의 숨은 해수욕장이라는 두곡·월포 해수욕장이 왼편에서 손짓한다. 다음 기회로 미루며 그냥 지나치자. 아름다운 겨울바다를 즐기기 위해….
홍현-가천방면 이정표를 따라 왼편으로 접어들어 숙호 월포를 지나면 홍현이다. 드디어 남면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지금부터는 자연이 빚어낸 앵강만의 빼어난 경치를 즐기며 천천히 달리자. 눈길을 주는 곳마다 아름답다. 홍현은 경치도 아름답지만 전복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봄이면 전복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도로 좌·우 에 서있는 낚시꾼들의 차량을 지나쳐 가다보면 가천마을이 나온다.
왼편으로 차를 주차시킬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이 번잡하면 30m가량 앞으로 가면 오른편에 주차시킬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잠시 주차시키고 차도, 사람도, 바닷바람을 맞자. 옛 사람들은 깍아지른 절벽에 가까운 이 곳에 정착을 했다. 배를 댈 곳이 없는 해안이다. 그들은 땅을 경작해서 살기 위해 그들의 노동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다랭이논'이다. 경사 급한 산비탈에 100여 층이나 되는 논밭을 일구어 놓다니…. 그저 눈으로만 본다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마음으로 본다면 감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곳에 정착한 옛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개척, 개발이 무엇인지를 후대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 얼마 전 최대의 큰물 피해를 입힌 태풍 루사도 ‘다랭이논'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나라 지킴이’봉수대서 바라보는 일출장면 압권

암수바위도 볼거리…해수욕장·낚시터 많아 최상


그리고 이 마을엔 암수바위가 있다. 전국에서 가장 잘생긴(?) 암수바위라고 한다. 가파른 마을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볼 수 있다. 과연 잘생긴(?) 남근 모양의 수바위가 우뚝 서있다. 그리고 바로 곁에는 여근을 닮은 묘한 바위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생긴 모양만 보고 그것이 암수바위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암바위는 그 옆 언덕에 엇비스듬히 누워있다. 갸름한 머리에 통통한 몸매, 배부른 임산부가 누워있는 듯하다. 암수바위의 점잖은 이름은 ‘미륵바위'다. 옛부터 아이를 못 낳는 여자들은 절에 가서 미륵부처에게 빌었는데, 가천 암수바위로 와서 빌다 보니 점잖은 이름을 옮겨 붙여 미륵바위가 된 것이란다. 음력 10월 23이면 풍어와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제를 지낸다고 한다. 올해는 11월 27일이다.
가천마을을 지나면 드넓은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끝이 없을 듯 펼쳐진 수평선이다. 조금 가면 ‘선구’ 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그 곳에는 몽돌 해변을 만날 수 있다. 몽돌과 파도가 만드는 협연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선구에 몽돌밭이 있다면 바로 다음 마을에선 모래 해변을 만난다. 마을 이름도 사촌이다. 자연은 참으로 요상하다. 한 쪽 해변엔 몽돌밭을 만들고 바로 곁 해변엔 모래밭을 만들다니….
사촌마을을 지나면 곧 이어 양갈래 길을 만난다. 오른쪽은 ‘무지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임포'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임포·유구·평산으로 이어지는 남면 해안도로의 마지막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을 이름이 예쁜 ‘무지개'는 남해의 산골이다. 마을 이름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붙여지 듯 무지개 마을도 전설이 있다. 무지개 고개를 넘으면 남면 해안도로 맨 처음에 만났던 홍현 마을이 나온다.
남해의 남쪽 해안을 둘러보는 해안도로…. 남해 겨울바다가 지닌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면 해안도로에는 일출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설흘산이 있다. 해맞이 일출 때는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 산이다. 바다에 인접해 있어 남해바다를 조망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산이다. 오르는 길은 사촌마을에서 매봉산(413m)을 넘어 오는 코스가 있고, 무지개마을에서 설흘산(481m) 봉수대로 완만하게 오르는 코스도 있다. 산행이 힘에 부치는 사람은 차로 오를 수도 있다. 가천마을 전망대에서 사촌마을 쪽으로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오른편으로 설흘산 봉수대 오르는 길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태풍 루사의 탓인지, 행정의 무관심 탓인지 약간 뉘어져 페인트칠도 많이 벗겨져 있다. 하지만 잘 닦여진 시멘트 길이다. 농로로 쓰이는 길이라 경사가 가파르다. 초보라면 오르지 않는 게 좋을 듯 싶다. 15분 가량 오르면 제법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차를 세우고 조금만 오르면 삼각대가 왼쪽으로 매봉산 1.3Km, 오른 쪽으로 설흘산 봉수대 1Km를 안내하고 있다. 양쪽 다 4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한다.
설흘산 마당바위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 여기서 남해바다로 낚시 줄을 던지고 싶다.

가볼만한 곳-임진성, 왜병 당당히 맞선 남해 기개 ‘물씬’

두곡-월포 해수욕장을 지나치며 시작한 1024번 남면 해안도로의 끝에는 조그만 산성이 있다. 읍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평산마을에서 상가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넘으면 곧 왼편으로 ‘임진성'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흙길을 만나는 데 승용차로 오르기엔 부담스럽다. 적당한 곳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임진성은 산정에 쌓은 산성으로 둘레 286.3m에 면적은 작지만 높이는 1.6m에 달하는 산성이다. 부근에 고인돌, 조개무지 등이 있어 최초의 축성연대는 파악할 수 없으나, 다만 임진왜란 때 수축(修築)하였다하여 ‘임진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힘들게 쌓았을(?) 임진성에는 전투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 성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으나 행여나 역사의 헤프닝(?)으로 끝났다고 말하긴 힘들다. 임진성을 수축했다는 사실만으로 남해 사람들의 단결과 왜적에 대한 항전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임진성 수축과 관련해 전해지는 얘기는 이렇다. 임진왜란 때 성웅 이순신과의 해전에서 크게 패한 왜군이 ‘옥포만'을 통해 대대적인 복수전을 하러 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옥포'는 임진성과 평산진성 사이의 포구를 일컫는 남해의 지명이다. 남해사람들은 왜적과의 항전에 대비해 민·관·군 모두가 힘을 합쳐 임진성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적이 대대적인 복수전을 위해 침략한 곳은 남해의 ‘옥포'가 아닌 거제의 ‘옥포'였던 것이다. 당시 잘못된 정보에 의한 헤프닝(?)이었는지 아니면 남해 ‘옥포'가 방비가 너무나 튼튼해 공략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왜적이 거제의 ‘옥포'를 택한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고난을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려는 남해사람들의 기개를 알 수 있다.
남해엔 임진성 외에도 설천면 진목마을에 대국산성 등이 있다. 모두 왜구에 대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왜구의 침탈과 노략질에 남해는 당시의 행정청이 철수했던 때가 여러번 있었다. 지금 현재 두 성 모두 옛 원형에 가깝게 보존이 잘 돼있어 가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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