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도 아닌 물도 아닌 ‘생명의 늪’

풍부한 볼거리를 기대하면 딱 실망하기 좋은 데가 창녕 소벌(우포늪)이다. 실제 늪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이라도 뻘에 묻고 일치를 향해 느낌을 가다듬어야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봄 여름 가을을 거쳐 한살이를 한 생명들이 사위어 가는 때. 푸르게 풍성하던 갈대들은 황금빛으로 마르며 서걱대다가 온몸으로 하얗게 피고, 나무들은 한 철 잘 지낸 이파리들을 떠나보내며 겨울나기 채비를 한다.
지난 여름 큰물에 잠겼던 풀들은 삭아 없어졌는지라 어느새 속새들 조그만 빈틈을 찾아 빽빽하다.

무수한 생명들 내년 기약하며 잠시 몸 사위고 겨울 채비 하네

이것들은 테두리만 조금 말린 채 싱싱한 풀빛을 자랑하며 겨울을 넘길 것이다.
물은 조용하다. 소벌·나무갯벌(목포)·쪽지벌·사지포 넷으로 이뤄진 전체 소벌 가운데 깊은 편인 나무갯벌은 더욱 조용하다. 청둥오리 몇몇만 떠 있고 한 번씩 오가는 사람소리에 날개 치는 소리를 낼 뿐이다.
개구리밥은 어디로 갔을까. 여름 내내 늪을 뒤덮던 웅장함은 가뭇없이 지고 말았다. 군데군데 떠 있던 부레옥잠도 좀체 띄지 않는다. 때가 되어 물에 녹았는지도 모른다. 생이가래는 아직 풍성해서, 물이 빠지는 바람에 외따로 떨어진 연못 몇몇은 여지껏 가득 담고 있다.
갯버들 왕버들 사이에 잡풀을 보라. 맘대로다. 바람에 쓸린 듯 일정한 방향도 없이 반쯤 마른 채로 이리저리 자빠져 있다. 풀들을 뒤지면, 고들빼기나 질경이 냉이 따위가 푸르게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있을 것이다.
얼씨구, 저것은 또 무언가. 구절초 흐드러진 언덕 너머 길가에 철모르는 제비꽃이 꽃잎 빼물었다. 보라도 아니고 희게 피어난 꽃, 저것도 저렇게 살다가 사라질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나버려 텅 비어버린 들판에다 마늘 모종 옮겨심는 배경이 오히려 스산하다.
고개를 들면 언덕에 나무가 보인다. 세 길은 더 되는 높은 가지에 페트병이 걸려 있다. 마른 가지 끝에는 일부러 쥐어놓은 듯 허옇고 꺼먼 조각들, 비닐비닐비닐비닐 소리내며 펄럭댄다. 여름 장마 때 불어난 물이 저리 만들었으리.
소벌과 사지포쪽 물이 얕은 데는 왜가리랑 물닭이랑 청둥오리랑 기러기가 꽤액꽥 한창 시끄럽다. 여기에도 차이가 있다. 이른바 대대제방 왼쪽은 작으면서 시끄러운 새들이 많고 오른쪽은 왜가리 같이 길쭉하면서도 조용한 새들이 많다. 물의 깊이에 따라 먹이가 다르고 머물기에 편한 정도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짐과 되살이 모두 느끼니 이게 바로 내 삶이요 문학이네

아침에 찾은 탓에 새들은 소리만 낼 뿐 무리 지어 날지는 않는다. 해질 녘이라야 먹이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니까, 굳이 탐조(探鳥)를 하려면 때를 맞춰야 하겠다. 하지만 자재(自在)로운 마음과 까다로운 조건은 어울리지 않는다. 몰아치는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라짐뿐 아니라 되살이까지 느끼는 데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10월 27일 아침, 소벌 물가에선 스물 남짓한 시인들이 생로병사와 기승전결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어젯밤 우포생태학습원에서 ‘제2회 우포늪 시생명제’를 가진 일행이다.
이를테면 지금은 소벌의 생명들이 사멸하는 때, 사람으로 치면 북망산 드는 길목이다. 생겨나서 확장하고 갈무리까지 한 다음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삶이고 문학이다. 기승전이 아무리 좋아도 결이 나쁘면 말짱 도루묵이다, 모든 것 놓아 보내 버리고 허허로워져야 제대로 사라질 수 있다, 등등이다.
소벌 시인묵객과 갈대에다 철새라, 토론을 마친 시인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손뼉까지 치면서 ‘기러기’를 합창한다. ‘다알 밝은 가을밤’은 아니지만 행여 새들이 놀라지 않을까 싶어,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른다.

△찾아가는 길

자가용 자동차는 버리고 떠나자. 허허로워지려고 떠나는 길에는 여럿이 타는 버스가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진주에서 창녕 가려면 먼저 마산까지 와서 갈아타야 한다.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 가는 버스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20~40분 간격으로 있다.
30분 남짓만에 읍내 주차장에 닿으면 영신버스 터미널로 옮겨간다. 소벌(우포늪) 가려면 이방이나 적교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적교행 버스. 아침 7시부터 40분마다 한 대씩 다니는데, 4km 가량 되는 회룡에서 내린다. 여기서 대대(한터)마을이나 세진마을로 가면 된다. 저녁 6시 30분과 7시 30분에도 차가 있다. 1시간 남짓 걸으면 소벌 둑에 가 닿는다.
이방행 버스. 아침 7시 첫차가 나가고 8시 20분부터 12시 20분까지 시간마다 있다. 오후에는 1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시간마다 한 대씩 떠난다. 15분쯤 걸리려나, 12km 남짓 가서 장재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길 따라 가다 우만마을에서 왼쪽 아스팔트길로 접어들어 가다가 무슨 재실이 나오는 데서부터 훑는다. 좌우로 생태계의 빽빽함 또는 텅 빔을 느껴보시라.
회룡에서 들어가는 길과 장재에서 비롯되는 길은 결국 만난다. 볕 바른 데 바람이 닿지 않아 따뜻한 구석도 눈에 띈다. 식구랑 함께 갔다면 자리를 깔아도 된다. 어슬렁거리며 품고 느껴도 3시간이면 족하다. 주차장에서 늪지까지 걷는 시간을 쳐도 5시간을 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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