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욕에 휘둘린 한많은 눈물 가루 곳곳에 메아리되어

강원도 영월에 ‘단종 애사’라……. 20일 밤에 만난 전교조 마산지회의 역사기행을 위한 교사모임 이재열(가포고교) 대표와 김동국(제일여중) 총무는 조금 지쳐 있었지만 뿌듯해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선생님과 학생·학부모가 함께 45인승 버스를 전세 내 떠났다니 열 집 남짓한 식구들이 1박2일 동안 지내며 여행과 공부를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린 셈이다.
일행은 법흥사를 기행의 들머리로 잡았다. 19일 오후 3시 마산역을 떠나 법흥사 앞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절간으로 새벽 산책을 간 것이다.
둘러싼 솔숲은 사람 키 열 길도 넘게 치솟은 소나무로 우거졌다. 뒤에 버티고 선 사자산(1181m) 때문인지, 솔향 사이로 다가오는 법흥사 적멸보궁은 오히려 아담하다.
양산 통도사·오대산 상원사·설악산 봉정암 등과 함께 신라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모신 다섯 절간 가운데 하나가 법흥사의 전신인 흥녕사다. 대웅전과 석가모니 불상이 없다.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원한 산색과 정갈한 절간, 상큼한 바람에 눈과 코와 가슴을 씻은 이들은 아침을 들고 단종 애사를 더듬는 길에 나선다.
1455년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임금자리를 빼앗긴다. 성삼문 이개 하위지 박팽년 유응부 유성원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돼 죽어 사육신이 된 해가 56년이고 수양이 단종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낮춘 뒤 영월로 귀양을 보낸 게 이듬해인 57년이다.
영월의 관문 소나기재는 단종이 넘었던 고개로 그 때 눈물 같이 소나기가 쏟아져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단종이 다시는 고개를 넘지 못했으니 이름이 참 그럴 듯하다.

곱게‘단풍물’든 산자락 길게 뻗은 능선…골짜기 절로 발걸음 가벼워지고

험준한 유배지‘청령포’600년생 소나무‘관음송’묻어나는 역사의 숨결


여기를 즐겨 찾는 또다른 까닭은 70m 넘게 깎아지른 선돌에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서강과 둘레 풍경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여기를 지난 서강은 동강과 만나 남한강을 이루며 서울로 나아간다. 열일곱이던 단종도 강물처럼 흘러 서울로 가고싶었을 것이다.
일행을 실은 버스는 소나기재를 넘어 청령포로 간다. 서쪽을 빼고는 모두 강줄기로 둘러싸인 험한 곳. 귀양살이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청령포에는 금표비와 단묘유지비가 있다. 숙종 때인 1720년 복권된 단종을 위해 영조가 세웠다. 여기 솔숲 가운데 우뚝 솟은 한 그루는 이름이 관음송(觀音松), 나이가 600살 넘었다니 생명체로는 유일하게 단종의 유배를 지켜본 셈이다.
단종은 여기서 얼마 못 지내고 영월 읍내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다. 두 달 남짓만인 10월 24일, 서인으로 내려앉은 단종 노산군은 세조의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다. 동쪽에는 자규루가 있다. 단종이 슬피 우는 자규(소쩍새)에다 자기의 신세를 견준 시를 지은 곳이라 한다.
가장 사연이 많은 곳은 역시 장릉. 동강가에 버려진 단종의 주검을 아무도 거두지 못했는데 영월 호장 엄흥도가 수습해 임시로 묻어두고 자취를 감췄다. 중종 때인 1516년 어명으로 노산묘를 찾던 군수 박충원의 꿈에 단종이 나타나 일러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장릉에는 엄흥도뿐 아니라 무덤자리를 찾아낸 박충원의 정려각이 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정조 때 만든 배식단도 있는데 단종을 위해 몸을 던진 신하와 종친, 벼슬아치, 궁녀 등 264인의 위패를 모셔놓았다. 이 또한 다른 데 없는 일이다. 세조에게 장악돼 있던 ‘정치판 눈치 안보고’ ‘의리 있게’ 행동한 이들을 후세라도 기억해주자는 뜻이겠는데 지금도 한식이면 제를 올린다.
일행이 소나기재를 넘기 전에 들른 곳이 하나 있다. 요선정이다. 단종 복권을 위해 애쓴 후대 임금인 숙종·영조·정조의 어제시문(御製詩文)이 액자에 새겨져 걸려 있으니 단종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게다가 어떤 이는 소나기재보다 아름답다고도 하고 사육신 등이 거사를 위해 모였던 데라고도 하니 꼭 챙겨야 할 곳인 셈이다.
단풍과 어우러진 이번 기행의 주제는 ‘권력과 역사의 심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흩어지고 모이는 정치 철새들 때문인지 더욱 그럴듯 해 보인다. 하지만 예나 이제나 묵묵히 제 갈 길을 간 이들을 위한 배려가 충분해 보이진 않는데, 이는 사람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동국 선생은 “대구~춘천간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는 바람에 3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고 둘러볼 유적지도 가깝게 붙어 있다”며 적극 권한다.
아울러 “전교조 마산지회의 역사기행이 내달 17일 경북 영주·안동, 12월 22일 전남 보성 벌교행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예정돼 있는데 교사와 학부모·학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며 많은 동참을 바랐다.
함께할 사람은 011-842-0596(김동국)으로 전화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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