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일몰아래 출렁이는 은회색 억새의 파도

낙조는 ‘젊은이의 기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일출 여행은 종종 다녔지만 일몰을 보기위해서는 일부러 애쓴 적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7~8년쯤 전에 통영의 갈매기섬 홍도에 가면서 매물도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보고는 그 생각을 바꿨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 너머로 온 하늘과 바다와 섬을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해는 온갖 의미부여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었다.
마산시 가포에서 저도 연륙교로 가는 길이나 새로 놓인 동진교를 건너 고성군 동해면 해안까지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 길에서 만나는 낙조도 또 하나의 볼 거리가 된다. 밤낚시라도 갈라치면 덤으로 일몰까지 보는 셈이다.
원전 낚시터에 선상 밤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소문만 듣고 토요일 오후 느지막이 마산을 출발했다. 월영동 밤밭고개를 넘어 고성쪽으로 국도를 따라 2㎞쯤 가면 오른쪽에 주유소가 하나 있고 현동 검문소가 있다. 여기 신호등을 받아 좌회전을 하면 ‘장지연로’로 들어선다. 검문소서 1㎞쯤 가면 현동 파출소가 있는데 맞은편 산으로 올라서면 현대 언론의 큰 어른으로 추앙받는 위암 장지연선생 묘소가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자 황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명 사설을 써 민족의 울분을 토했던 선생은 아직도 도내 언론인들에게 사표가 되고 있으며 각사 창사기념일이나 신문의날 같은 때면 언론인들의 참배가 줄을 잇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 죽 가다보면 덕동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에 덕동하수종말처리장 증설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마산·창원 시민들이 쓰고 버린 물을 정화해 바다로 흘려보내는 곳인데, 아이들과 함께 나선 길이라면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오른쪽길로 들어서면 다시 삼거리인데 이곳에서 오른쪽 길로 들면 진동으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진전면 임곡리 국군마산종합병원에 못미쳐 근곡리 암하마을에서 좌회전 해 들어가면 고성 동해면으로 이어지는 77번 국도를 타게 된다.
한때 매립계획이 세워지기도 했던 창포마을을 지나면 동진교를 건너 환상의 해안관광일주도로가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내만을 이용해 만든 바다 유료낚시터가 있다. 낚시대, 미끼는 물론이고 입장료도 무료다. 단지 잡은 고기의 무게에 따라 돈을 받는다. 해안선을 따라 산모롱이를 돌때마다 망일포, 대가룡포, 소가룡포, 우두포, 큰구학포 작은구학포 등 크고작은 포구가 이어지면서 해안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도로는 일명 이봉주 마라톤코스라고도 한다.
덕동서 진동으로 빠져나가는 중간에 유산고개를 넘어서면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우회전했다가 첫 갈림길서 왼쪽길로 잡으면 명주해안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욱곡, 신촌을 거쳐 반동, 장구, 구복, 연륙교에 이르기까지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데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잔잔한 호수 너머로 지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이 길로 들어서지 않고 덕동 두 번째 갈림길서 왼쪽길로 잡고 가자면 수정마을을 지나고, 수정 삼거리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백령재를 넘는다. 백령재 오르는 길에 오른쪽에 ‘씨네비전’이라는 자동차극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골재를 파낸다고 운영을 하지 않더라.
고개마루에 있는 휴게소서 차한잔 음미하며 사방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백령재를 내려서 첫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반동마을이 나온다. 반동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 해 구복쪽으로 가면 저도 연륙교로 이어진다.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철교로 베트남 전쟁의 격전장이었던 ‘콰이강의 다리’와 닮은꼴이라 해서 ‘콰이강의 다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빨간 철교인데 지금은 낡아 소형차만 통행할 수 있으며 마산시가 새 다리를 놓고 있어 머지 않아 다리로서의 역할은 새 다리에게 넘겨줘야 한다. 그러나 그 명성만은 ‘관광상품’으로 계속 이어간다니 지켜볼 일이다.
백령재를 넘어 옥계를 지나면 오른쪽 언덕위에 망양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서 있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일치한다고나 할까. 정자 바로 아래 찻집이 있는데 차를 배달해준다는 글귀가 붙어있다. 이곳도 낙조가 꽤 장관일 듯 싶다.
원전으로 들어서기 얼마 전에 한참 도로 포장공사를 벌이는 곳이 1㎞쯤 이어진다. 초보운전자라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길도 좁지만 이곳만 지나면 이번 여행에서의 어려운 코스는 다 넘긴 셈이다.


붉게 물든 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로 딱 쌀쌀한 밤바다 안고 꿈담아 낚시대 던져 고기 못잡아도 그만 낚이면 소주한잔 캬

원전 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에 만성슈퍼가 있는데 여기에 가면 선상낚시배가 있다. 슈퍼 앞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마을 앞에 있는 초애섬 뒤쪽에서 선상 낚시를 할 수 있다. 한사람당 평일에는 2만원, 주말에는 3만원을 주면 마을 어선들이 바다에 떠 있는 선상낚시터까지 태워다 준다.
요즘은 갈치철이라 훤하게 밝힌 집어등 아래서 1m 남짓한 갈치를 연방 건져올릴 수 있다. 바로 회를 떠 먹는 맛도 일품이려니와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휘황한 집어등 불빛이 파도에 일렁이는 그림도 볼만하다.
한가지. 밤바다는 몹시 추우므로 두툼한 걷옷을 꼭 챙겨가야겠더라.
조금 이른 시각에 이곳에 왔다면, 낚시배를 타기 전에 선착장 옆에 있는 포장마차-1t 트럭에서 어묵이며 핫바 따위를 팔고 있다.-그곳에서 어묵을 맛보고, 주인장 박모(49)씨와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겠다.
박씨는 의령에 살고 있는데 서울서 사업을 하고 꽤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홀로된 노모를 모시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에 남겨두고 혼자 내려왔다고 한다.
지난해 이곳으로 고등어 낚시하러 왔다가 이곳에 반해 요즘은 매일 출근하고 있다. 아침일찍 노모가 드실 음식을 마련해두고 그날 장사거리를 장만해 이곳까지 나온다.
음식을 불에 올려놓고는 그만의 낚시가 시작된다. 건져올리면 좋고 못건져 올려도 그만. 어쩌다 횟감이라도 걸리면 즉석에서 그만의 잔치를 벌이는데, 운이 좋다면 박씨와 소줏잔을 기울일 수도 있다.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도 좋고, 사람 사는 도리도 좋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세상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의 연륜이 느껴진다.
넉넉잡고 가족과 함께 1박2일로 동해면을 거쳐 통영 안정사를 둘러보고 오는 것도 좋겠고, 낚시꾼이라면 선상 낚시로 손맛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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