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귓속으로 구름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이 오래된 절간을 찾았다. 스물다섯쯤 되겠는데 어른도 예닐곱 끼었다. 사천환경운동연합이 마련한 체험환경교육의 여덟째 자리다.
12일 오후 3시 30분. 능륜 주지스님이 아이와 어른들을 대웅전에 앉히고 절집의 짜임새와 쓰임새를 이야기한다. 대웅전이 ‘정면 5칸 측면 3칸’에 ‘다포계 맞배지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염불 참선 참배 명상을 하는 곳인 만큼 심신을 조용히 평화롭게 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대웅전. 큰 대, 수컷 웅. 가장 힘센 이, 곧 석가모니께서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아이들 스물다섯 운흥사 찾아

운흥사. 구름이 일어나는지 아니면 구름처럼 일어나는지, 임진왜란 때 사명당 아래 6000 승병이 구름처럼 몰렸단다. 통영 앞바다에 통제영을 차린 이순신 장군도 세 차례나 찾아 작전회의를 했다니 따지고 보면 꽤나 유서깊은 사적지다.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651년(효종 2) 다시 세웠다. 지금 대웅전과 영산전은 영조 때인 1730년에 지었다니 그사이 새로 늘렸나보다. 조정에서 불사를 하는 데 목적이 없을 리 없겠다.
스님은 예나 이제나 건설업이 잘돼야 나라가 풍성하다고 설명한다. 고용효과가 뛰어나다는 얘긴데, 경기 부양을 통한 가난 구제가 으뜸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산업이래야 농사뿐인데 땅심도 살아나지 않고, 백성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공공근로에 해당하는 일이 당시로서는 불사였다고 스님은 설명한다.
음은 민심 수습. 운흥사가 승병의 집결지였으니 죽어나간 스님도 적지는 않았다. 운흥사는 음력 2월 8일만 되면 임진왜란에서 왜적과 싸우다 숨진 넋을 기리려고 영산제를 크게 지낸다. 기록에 따르면, 승병이 가장 많이 숨을 거둔 날이 바로 이날이다. 내거는 괘불은 대웅전 부처님 뒤쪽에 있는데 사명당과 서산대사, 영조의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폐허에다 절을 세우면 꽉 찬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영산제까지 올리면 고을이 떠들썩했을 것이다. 동네 아이들도 이 날만은 무시로 절간을 드나들면서 밥과 국을 꽤나 얻어먹었겠다.
스님은 이어서 참선을 하게 했다. 오른다리를 왼다리 위에 올린 다음 손을 모아 쥔 채 허리를 펴고 눈을 감게 했다. 딱 3분, 숨쉬기에 정신을 모으면 새소리 물소리 잎새소리 나아가 구름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했다. 그랬더니 금세 조용함이 깃들인다.


주지스님 말씀에 마음도 평온

오른쪽으로 이끌고 나가는 스님. 명부전은 죽은 이 또는 언젠가는 죽게 될 산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앞에는 눈알이 튀어나온 금강역사가 지키고 안에는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十王)이 둘러서서 심판을 한다.
산신각에는 호랑이를 거느린 흰 수염 할아버지가 숲을 뒤에 깔고 앉았다. 산과 숲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그린 그림을 걸어놓은 집이라고 한다.
대웅전 왼쪽 영산전은 무얼까.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머문 영축산을 옮겨놓은 셈인데, 사람들은 여기서 찬불을 한다.
부엌 마당에는 여느 절간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장독대가 앉아 있다. 나지막이 두른 흙돌담 틈서리마다 고사리가 말라 푸석하고 가을햇살에 말라가는 알곡도 한 줌 얹혀 있다.
간 둘러보기를 마친 사람들은 너른 마당과 계단으로 흩어져 책을 읽는다. 사천환경운동연합이 시집과 동화책 생태계 책자를 마련했다가 나눠주었다. 잎새 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고요한 절간에서, 책을 벗삼아 편안한 쉼을 마음껏 누려보라는 뜻이겠다. 잎이 누런 느티나무 아래 이쪽저쪽에 있는 모녀 또는 모자의 뒷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저녁공양 미안함 고마움 담아

5시 조금 넘어 저녁 공양에 들어갔다. 바리때 서른네 개가 나오고 스님은 죽비를 들고 엄하게 다그친다. 쌀 한 알이 생기기까지 농사짓는 손길이 백 번 스치고 갖가지 벌레가 잡혀 죽어야 하니, 고마움과 미안함을 마음에 담지 않고는 공양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보따리를 푼 다음 큰 바리때에서 작은 바리때를 끄집어내고 밥과 반찬을 담아 소리내지 않고 꼭꼭 씹어먹는다. 밥 한 알 반찬 한 쪽 남기지 않고 잘 먹은 다음 물을 받아 씻고 마시기를 세 차례. 마지막으로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다시 묶어야 공양은 끝난다.
그 사이 운흥사가 자리잡은 향로봉이 해를 꿀꺽 삼켰다.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에서는 국도 14호선을 타고 가면 된다. 고성 읍내에서 국도 33호선으로 갈아타고 상리면 부포마을을 지난 다음 척번정리에서 왼쪽으로 꺾어든다. 지방도 1016번이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오른쪽에 운흥사 표지판과 함께 봉현리로 가는 1001번 지방도가 나온다. 다시 1001번 길로 바꿔서 700m쯤 되는 데에 봉현삼거리가 나온다.운흥사는 여기서 봉현 마을회관을 오른쪽에 그대로 둔 채 왼편 길로 접어들어 2.5km 가량 오르면 나온다.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는 하루 네 차례 운흥사까지 들어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아침 6시 46분과 9시 28분, 오후 1시 57분 저녁 7시 18분에 삼천포를 떠난다.
같은 정류장에서 사촌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봉현초등학교가 있는 구실마을에서 내려 운흥사를 찾는 방법이 있다. 차편은 30분마다 있지만 내려서 3km는 좋게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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