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칼럼]용감했던 의원들 왜 비겁해졌나

97년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5년 전의 일이다. 당시 지역정가에서는 우리나라의 행정체계를 놓고 말이 많았다. 중앙정부~시·도~시·군·구~읍·면·동 등 4단계로 돼 있는 행정조직이 방만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개선하자는 논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문제는 누가 총대를 메느냐는 것이었다.
기초의회 중에서도 ‘독하기’로 정평 나있던 마산시의회가 이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경남도청 폐지 건의안’이었다.
중앙정부는 어차피 있어야 하고 시·군은 민원과 밀접하니 중앙과 시·군의 연락기관 역할을 하는 도청을 없애는 게 바람직하는 방안이었다.

도청폐지 주장했던 시의회

시의회를 출입했던 당시의 기억으로 의원들이 발의하고,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안이 채택됐던 것 같다.
광역자치단체를 없앰으로써 세금 낭비요인을 줄이고 행정의 효율성을 꾀하자는 의도였다.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턱도 없는 일’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건의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해 가을 폐기됐다. 하지만 여론은 꼭 부정적이었던 것 만은 아니었다. 뭔가 불합리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몰랐던 시민들로서는 시의회를 대단한 존재로 여겼다. 성사 여부를 떠나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아는 용기와 시도에 박수를 보낸 것이다.
5년이 지난 최근 마산시의회는 ‘행정구역 조정·통합을 위한 특위구성안’을 들고 나왔다.
정상철 의원이 발의하고 6명의 의원이 사인했다. 발의안의 요지는 대략 이렇다.
마산시에 31개 읍·면·동이 있는데 행정동간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인구 편차도 크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손질하자는 것이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8월말 현재 읍·면·동의 인구를 보자. 가포동과 현동은 각각 2110명·3227명, 월영동은 3만3067명, 내서읍은 무려 6만795명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내서읍 인구가 가포동보다 30배 가까이 많다. 대표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행정동의 경계도 조선총독부 시절 쪼개놓은 것이어서 불합리한 면이 적지 않다.이런 것들을 현실에 맞게 새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안이 채택되자마자 당장 이리쪼개고 저리붙이자는 것도 아니다. 우선 시민들에게 이런 것을 알리고 의견이 나오는대로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특별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해 하자는 것이엇다. 소관 상임위원회는 공감했다. 그런데 전체 의견을 듣는 본회의장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명분도 있고 가능성도 있다

참석의원 30명 가운데 15명이 찬성하고도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돼 버린 것이다. 찬반토론 과정에서 반대했던 의원들이 시기문제를 들고 나왔다한다. 97년에도 9개동을 줄였고 내년에 3차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사정을 봐가며 하자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동사무소가 줄어들면 주민들이 민원보는데 불편이 따른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내세웠다.
그러나 시기나 주민불편은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시기라는 것은 언제든지 갖다붙이기 나름이고 민원 문제는 인근 창원시의 대동제를 통해 경험했다. 결국 반대한 가장 큰 배경은 자리문제가 아닐까 싶다. 가령 동이 10개 정도 없어지면 의석도 그 만큼 줄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표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당시 12명이 반대표를 던지고 3명이 기권했다. 정말 기막힌 결과였다. 뒷 얘기지만 의사진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떠돌았고 공무원 무서워 밀렸다는 소문도 들리니 하는 말이다.
문제는 의원들의 태도다. 앞서 말했듯이 5년전의 태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까닭이다. 당시는 실현가능성은 다소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명분은 있었다. 그래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 건은 명분도 있고 실현 가능성도 충분하다.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며 집행부에서도 의회가 의결만 해주면 따르겠다고 했다. 여러가지 여건이 좋았다. 그런데 명분도 실리도 없는 자리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쳐버렸다. 한 때 명분 하나만으로 대차고 겁없이 싸웠던 초창기 마산시의회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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