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양재기에 시원한 멸치국물맛

‘할매국수’집 ‘할매’가 돌아가셨다. 마산시 두월동 반월시장에서 30여년간 국수를 말았던 김남석 할머니가 지난달 30일 예순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반평생을 국수를 말며 자식들을 키워왔고, 할머니가 말아준 국수로 허기를 채우던 60~70년대 가난한 이웃의 아이들도 이제는 반백의 어른이 되어 영안실을 찾았다. 오랜 단골이기도 한 60년대 잘나가던 주먹잡이들은 “우리가 할매국수 먹고 힘썼다 아이가. 인제 욕 들어먹을 때 없어서 우짜노”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못 입고 못 먹던 시절,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대신하던 그 시절 사람들은 ‘국수 할매’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말없이 국수 한 그릇 뚝딱 말아주고, 가게에 오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사람에 대한 인정으로 넘쳤던 할머니였다.

이제 할머니의 빈자리는 맏며느리 김미선(48)씨가 메우고 있다. 결혼한 지 17년, 같이 사는 시어머니를 따라 전수 아닌 전수를 하고 국수를 말아온 지도 꼭 그 해만큼 됐다.

2평 남짓한 가게가 4평으로 사세확장(?)을 했고, 가게 입구에 솥을 걸어 놓은 아궁이에 연탄 대신 가스로 불을 때는 게 달라졌다. 5원하던 국수 한 그릇이 지금은 2000원이다.

누런 빛깔이 바랜 양재기에 미리 삶아 놓은 국수면발을 담아 국물을 붓고, 데쳐 놓은 부추를 넣고, 그 위에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렸다. 어느 시장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촌국수’같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특별히 ‘할매국수’를 찾는 이유는 변함 없는 국물 맛 때문이다.

멸치 우린 물이 아니라 띠포리나 고노리만으로 우려낸 국물은 깊고 개운한 맛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이 집만의 맛이다. 고노리를 넣으면 더 시원한데 국물이 탁해서 지금은 잘 안 쓰고, 주로 띠포리만으로 국물 맛을 낸다.

가게 앞 평상에는 햇볕에 말리느라 쭉 깔아놓은 납작한 띠포리를 볼 수 있는데, 그 옆 솥에는 일년 열 두 달 끊이지 않고 띠포리 국물이 끓고 있다. 국물은 소금과 조선간장으로 간하고, 띠포리포대를 하루에 두 번 바꿔 넣고 곰국 끓이듯 푹 고아낸다. 남은 국물을 갈지 않고 거기다 물을 붓고 계속 끓이는데, 진한 국물 맛의 비결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할매국수’를 ‘새댁국수’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손님들이 농담으로 건네기도 하던데 이제 조금 있으면 저도 할매 안됩니꺼. 어머니 손길이 묻어있는 이곳에서 큰 욕심부리지 않고 계속 가게를 이어 갈라고예”라고 말하는 며느리 김씨의 표정이 넉넉하다. (055)243-6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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