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양재기에 시원한 멸치국물맛
‘할매국수’집 ‘할매’가 돌아가셨다. 마산시 두월동 반월시장에서 30여년간 국수를 말았던 김남석 할머니가 지난달 30일 예순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못 입고 못 먹던 시절,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대신하던 그 시절 사람들은 ‘국수 할매’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말없이 국수 한 그릇 뚝딱 말아주고, 가게에 오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사람에 대한 인정으로 넘쳤던 할머니였다.
이제 할머니의 빈자리는 맏며느리 김미선(48)씨가 메우고 있다. 결혼한 지 17년, 같이 사는 시어머니를 따라 전수 아닌 전수를 하고 국수를 말아온 지도 꼭 그 해만큼 됐다.
2평 남짓한 가게가 4평으로 사세확장(?)을 했고, 가게 입구에 솥을 걸어 놓은 아궁이에 연탄 대신 가스로 불을 때는 게 달라졌다. 5원하던 국수 한 그릇이 지금은 2000원이다.
누런 빛깔이 바랜 양재기에 미리 삶아 놓은 국수면발을 담아 국물을 붓고, 데쳐 놓은 부추를 넣고, 그 위에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렸다. 어느 시장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촌국수’같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특별히 ‘할매국수’를 찾는 이유는 변함 없는 국물 맛 때문이다.
멸치 우린 물이 아니라 띠포리나 고노리만으로 우려낸 국물은 깊고 개운한 맛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이 집만의 맛이다. 고노리를 넣으면 더 시원한데 국물이 탁해서 지금은 잘 안 쓰고, 주로 띠포리만으로 국물 맛을 낸다.
가게 앞 평상에는 햇볕에 말리느라 쭉 깔아놓은 납작한 띠포리를 볼 수 있는데, 그 옆 솥에는 일년 열 두 달 끊이지 않고 띠포리 국물이 끓고 있다. 국물은 소금과 조선간장으로 간하고, 띠포리포대를 하루에 두 번 바꿔 넣고 곰국 끓이듯 푹 고아낸다. 남은 국물을 갈지 않고 거기다 물을 붓고 계속 끓이는데, 진한 국물 맛의 비결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할매국수’를 ‘새댁국수’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손님들이 농담으로 건네기도 하던데 이제 조금 있으면 저도 할매 안됩니꺼. 어머니 손길이 묻어있는 이곳에서 큰 욕심부리지 않고 계속 가게를 이어 갈라고예”라고 말하는 며느리 김씨의 표정이 넉넉하다. (055)243-6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