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 작곡가 표토르 차이코프스키는 언젠가 ‘나는 창작의 최후를 장식할 만한 웅대한 교향곡을 만들어야 된다는 욕망에 들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평가를 받는 〈제6번 교향곡 ‘비창(悲愴)’〉을 초연으로 페테르부르크에서 직접 지휘한 지 일주일만에 돌연 죽음을 맞이한다.

<비창>은 인생을 정리하는 한 인간의 잔잔한 역정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 작품이 담고 있는 무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세계적인 상트 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알렉산더 드미트리에프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감 때문이었을까. 23일 마산MBC홀은 하나 가득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준있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즐기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분위기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마지막으로 연주회가 끝나자 그때서야 긴장감에서 벗어난 관중들이 보여준 반응은 ‘역시 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요, 드미트리에프구나!’하는 감탄사였다.

관객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처음부터 너무 자연스러웠다. 러시아 전통의 맛이 그대로 녹아있는 〈8개의 러시아 민요〉를 연주할 때나 두 젊은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담아낸 〈로미오와 줄리엣〉을 잔잔한 목관으로 시작해 때론 높아졌다가 때론 부드럽게 풀어헤치는 여유는 여느 연주회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드미트리에프, 차이코프스키 만남의 백미는 역시 〈비창〉이 연결고리였다. 바순이 주도한 도입부의 무거움으로 시작된 연주가 2악장의 우아한 선율로 이어진 것에서나 빠르고 높낮음이 자유롭게 펼쳐진 3악장, 그리고 끝내 부드러운 슬픔을 관객에게 던져주며 막을 내린 4악장의 긴 여운은 아직도 뇌리를 맴돌 정도니 말이다.

이날 연주회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와 드미트리에프가 서기엔 무대가 다소 좁아 보이고, 한·러 수교 10주년이란 타이틀에 얽매여 경남대 이근화·강미자 교수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부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만회할 만한 인상깊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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