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대통령이 왔는데 지역언론이 취재를 할 수 없다는게...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일요일 오전 김해를 방문했다.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물난리를 겪은 김해시민들의 고통을 직접 느끼고 위로하기 위해서다. 김 대통령은 김해시의회 의사당 1층에 마련된 간담회장에서 김혁규 지사와 송은복 시장으로부터 수해복구현황을 보고 받고 수재민들과 대화도 나눴다. 주민들은 한림면이 재해특별지역으로 지정되긴 했지만 정부 보상금으로는 원상복구가 어렵다며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요청을 받은 김 대통령은 빠른 시일내에 복구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지원방안을 연구하겠다고 약속했다.
경호때문에 취재거부?
여기까지는 좋았다.
대통령의 방문을 사전을 들은 데스크는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본사 차장급 기자와 사진기자를 현지에 파견, 김해 현지기자와 합류토록 했다. 김해 뿐 아니라 함안·합천·산청·거창 등 도내 대부분의 지역이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당한 터라 수재민들의 관심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여기다 보상이 시작된 이후 주민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상황이어서 추가대책에 대한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언론사로서 대통령의 지역방문 자체가 충분한 기사거리가 될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엉뚱한데서 문제가 터졌다. 오전 10시30분께 현장에 도착한 취재기자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취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데스크는 무슨 소리냐며 다짜고짜 캐물었다. 청와대 출입기자 외에 지역기자는 간담회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회의장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취재지시를 받은 기자들은 회의장 앞에 있던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와 공무원들에게 따져봤지만 허사였다.
시청공무원은 자기들도 이틀 전에 갑자기 지시를 받고 준비했으며, 정례적인 방문이 아니라서 그런게 아닌가라는 궁색한 이야기만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 역시 취재 허용여부는 공보비서실의 결정사항이기 때문에 자기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구실을 들이댔다.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역에 대통령이 왔는데 지역언론사가 취재를 할 수 없다는게 말이 되는가. 기자들은 하는 수 없이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시의회 의사당 주변을 서성이다 회의 녹취록으로 겨우 취재할 수 있었다.
간담회장에서 발언했던 피해주민들의 요구사항이나 대통령의 답변 등 긴장감 도는 회의장의 분위기는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돼 버린 것이다.
과거 군부정권이나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삼엄했다는 사실은 이미 취재과정에서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지 않았는가. 김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이러한 관행들에서 한결 나아졌다. 지난 98년 경남과 부산을 방문했을 때 지역언론기자들의 취재가 허용됐음은 물론이고 경남·부산·울산지역의 기자들을 초청, 간담회까지 열기도 했다.
중앙집권적 권위의식을 버려라
공무원 말대로 갑자기 행사가 열리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쉬움을 넘어 참담한 생각까지 들게했다. 지역언론은 여전히 중앙언론의 변방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굳이 여기서 대통령에 대한 경호의 중요성을 따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한 발 더 나아가 단순히 지역언론에 대한 홀대의 차원만도 아니다. 지방화에 대한 중앙집권적 권위의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 91년 지방의회 구성과 함께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 풀뿌리 민주주의는 어떤가. 한마디로 막막하다. 물로 지역의 책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재정·행정·제도 등 모든 시스템과 사고가 중앙중심으로 돼 있다는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이번 일 또한 지역을 무시하는 중앙집권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떨칠 수 없다. 지역과 공존하지 않는 중앙중심적 사고는 이제 청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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