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청렴도 평가에서 조사대상 102개국 가운데 우리 나라는 40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42위에서 올해 2단계 상승했지만, 10점 만점의 투명도는 지난해 4.2에서 4.0으로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부패지수가 5점 이하인 부패권 국가는 102개국 가운데 70개국으로 지난해(91개국 중 55개국)보다 많아졌다.
두 사람의 국무총리 서리가 국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고 물러나자 지도층의 도덕성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그치지 않는 대가성 유무의 자금수수가 그렇고 정경유착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가 투명한 곳을 찾기 어렵다.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조차 건축과정에서 학교장과 행정실장이 구속되는 등 서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패원인은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박정희 정권시절 금융가차명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지하금융을 산업자금으로 활용한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시작된 검은 돈의 흐름을 정당화시켜 부패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특히 권언유착으로 인한 부패에 대한 침묵은 사회정의나 경제정의를 실종시켰다.
언론의 침묵은 역사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과거완료형이 아니다. 지난 8월 27일 한나라당이 4개 방송사장 앞으로 보낸 공문은 권언유착의 망령이 결코 과거에 끝난 일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한나라당은 ‘피의자도 아닌 이회창씨의 아들 이정연씨 얼굴을 자료화면이나 본문에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범법자 취급’을 하고 있으니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회창후보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이회창 흠집 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뿌리가 5공이 아니랄까봐 증명이라도 하듯이 신판 보도자료를 낸 것이다.
5공화국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각 신문사에 은밀하게 시달했던 보도 통제 ‘가이드 라인’이 있었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박정희 정권의 구성원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보도를 접하는 순간 박정희 정권 아래서 숨죽이며 살아 온 사람들은 언론의 길들이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언론이 침묵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권력의 치부가 탄로날까 두려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발전은 없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독재권력이 자신의 독재권력의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사회는 자유도 정의도 실종되고 만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각 분야가 투명하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병든 사회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의 책임은 한나라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권력 앞에 주구 노릇을 마다 않는 언론이 침묵하는 분위기에서 부정과 부패는 뿌리를 내린 것이다.
권력의 비리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받은 특권에 길들여진 언론은 이제 ‘스스로 알아서 기는’ 생존방식에 익숙해 있다. 물론 피해는 결과적으로 민중의 몫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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