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오랜만에 이야기 한보따리 나누면 어느새 산봉우리

고성군 개천면과 영현면에 걸쳐있는 연화산은 도립공원이면서도 산이름보다는 옥천사와 연관지어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연꽃’이라는 산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곳이다.
옥천사 청련암에서 시작해 남산~연화산 주봉~연화봉~백련사로 이어지는 등산길은 그래서 옥천사 탐방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이렇다할 특색을 찾기 어려운 ‘그저 그런 산’이다.
‘효도방학’이라고 학교에 가지 않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과 함께 한 산행이었지만 4시간만에 세 개 봉우리를 모두 거쳐 백련암으로 내려올 수 있었으니 어른들만의 산행이라면 2시간 남짓하면 다 돌아볼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전 10시께 옥천사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옥천사는 화엄 10대 사찰로 꼽히며 조계종 쌍계사 말사이지만 본사에 뒤지지 않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주차장 앞에는 지은지 얼마되지 않는 성보각이 우뚝 서 있다. 여기에는 보물 495호인 임자명반자를 비롯해 경남유형문화재 50호인 향로, 60호인 옥천사 대종 같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성보각을 둘러보고 왼쪽으로 이동하면 너른 마당 귀퉁이에 우리나라 현대불교의 큰 스승인 청담대종사 사리탑이 서 있고 경남유형문화재 59호인 자방루가 웅자한 자태로 객을 맞이한다.
자방루 옆을 돌아 들어서면 맞은편으로 대웅전(경남유형문화재 132호), 왼쪽에 탐진당, 오른쪽에는 경묵당이 자방루와 함께 지붕을 맞대고 마당을 에워싸고 있으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모든 가람의 지붕이 연꽃모양으로 배치돼 있다”고 말한다.
대웅전 뒤 오른쪽에는 팔상전과 금당이 있고 그 둘 사이에 조그만 옥천각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내는 대부분이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흐르는데, 서출동류하는 천을 옥천이라 했으니 옥천사의 ‘옥천’도 그런 까닭에 붙은 이름이라 전한다.
옥천사서 청련암까지는 130m, 암자 오른쪽에 ‘보리수’라 불리는 커다란 찰피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 옆으로 난 길에서부터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남산 꼭대기까지는 660m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크게 험하지도 가파르지도 않아 삼림욕 삼아 걷기 좋다.
11시 10분에 청련암을 출발했는데 남산 정상에 오르니 11시 49분. 고성군 홈페이지에는 20분이면 오를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연화 8경 중 세 번째인 ‘장군거석’. 옛날에는 송이가 많이 났다 하며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길에 거석이 많다해 그렇게 불리고 있다.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리고 연화산쪽으로 오르기 위해 남산을 내려가는 길은 몹시 가파르지만 나중에 만날 연화봉에서의 하산길에 비하면 그래도 수월한 편이었다. 군 홈페이지에는 연화산 정상(해발 528m)까지 40분이 걸린다 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아이와 함께 하는 길은 이보다 더 걸려 12시 39분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거쳐 연화산 정상인 듯한 곳에 올랐지만 아무런 표지나 안내가 없어 정상이 맞는가 의심도 들었지만 내려가는 길로 30여m 가니 오른쪽(북쪽)으로 확 틔면서 저 아래쪽으로 옥천사가 울창한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고성군 홈페이지에는 남쪽으로 당항만이 그대로 내려보인다 했지만 나무 숲에 가려 전망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옥천사쪽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리는 북쪽 능선을 탈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길을 찾아보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쪽 능선을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는데 이 길도 역시 몹시 가팔랐다.
30여분을 걸어 내려오니 임도가 길을 가로막았다. 왼쪽으로 가면 연화산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가 있어 그 반대쪽으로 길을 잡았다.
5분쯤 임도를 따라 터벅터벅 걸으니 이번에는 왕복 2차로의 아스팔트길이다. 아무런 안내도 없어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오른쪽에 옥천사가 있었으니 그쪽으로 길을 잡는게 옳다 싶어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면서 ‘이제 다 내려왔구나’하고 마음을 놓아버렸는데, 그게 화근이었는지 모르겠다.
10여분을 걸어가니 군 홈페이지에 안내돼 있는 후문 매표소가 보인다. 갈등. 아들녀석은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채고, 다 내려왔구나며 마음을 놓아버렸는데 다시 올라가야한다니…. 그래도 시작한 산행을 작파하기에는 아까웠다.
애를 달래며 아스팔트 길을 버리고 산길을 택했다. 매표소 옆 이정표에 정상까지 720m라고 적혀 있는 것도 이같은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
가파른 길을 숨가쁘게 올라서니 고성로타리클럽이 세운 ‘연화봉’이라는 표지석이 반긴다. 해발 489m라 적혀 있다.
여기까지 모두 세 개의 봉우리에 올랐지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연화산 정상부근에서 북쪽으로 틘 곳밖에 없다는 게 아쉬웠다.
내려가는 길은 지금까지 길 중 가장 험했다. 1학년짜리 아들녀석 왈, “진짜 장난 아니네”.
급경사를 이루는 너덜길이 820m 이어지면서 백련암에 이른다는 이정표를 보고 내려왔는데 중턱쯤 오니 백련암과 연화봉까지 각각 300m라는 이정표를 만났다.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헛갈렸다. 오후 3시 5분께 그렇게 백련암에 이르러 목을 축이고 옥천사로 가벼운 걸음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온 길을 거꾸로 되짚어 백련암에서 청련암으로 갈 수도 있겠으나 봉우리마다 올라가는 길이 몹시 가파르므로 그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다.
연화8경이라는 응봉초경, 수등낙조, 장군거석, 칠성기암, 연대취연, 운암낙하, 중춘앵화, 모추풍엽 중 장군거석을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지만 아들녀석에게는 성공적인 첫 산행으로 남게 돼 다행이었다.


△가볼만한 곳 - 곳곳의 서원과 옛집

연화산 옥천사에 간다면 당항포 국민관광단지나 한두온천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개천·마암·대가면 등지에 흩어져 있는 서원이나 옛집을 둘러보는 것도 뜻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회화면에서 옥천사로 가는 1009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수림서원과 위계서원을 만날 수 있으며 그밖에도 구만면의 도산서원, 대가면 갈천서원, 마암면 허씨고가, 대가면 이씨고가, 개천면 박진사고가, 대가면 소산정사 같은 옛 집들이 이 일대에 산재해 있다.
이들 서원은 대부분이 한 문중의 성현들을 모셔두고 있어 ‘재실’에 가까운데도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니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던 까닭을 짐작이나마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직까지도 관계에서 큰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고성인맥의 뿌리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게다.
이날 오후 마암면 석마리의 위계서원에는 보살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안내를 받지 못했지만 화산리에 있는 위계서원에는 이기원(49)씨가 있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옛 성현의 위패를 살펴보고, 글을 읽던 대청마루에 올라본 아들녀석은 “이렇게 공부하면 재미있겠다”고 제 나름의 감상을 말했다.
두 곳 다 1009번 지방도 길가에 안내 표지석이 서 있으므로 찾아가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 하다.

△찾아가는 길

마산에서 차를 갖고 가려면 밤밭고개를 넘어 국도 14호선을 타고 가면 된다. 군데군데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이어져 있지만 편도 2차로를 따라 달리면 당항포 국민관광단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2㎞쯤 더 가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1009번 지방도로 빠지면 된다. 이보다 1㎞ 앞에 역시 오른쪽으로 빠지는 1002번 지방도가 있는데 이 길로 접어들면 30여분 더 걸리므로 처음부터 1009번도를 이용하는 게 낫겠다.
이길로 11㎞를 가면 왼쪽으로 옥천교를 건너 옥천사로 이르는 길이 열린다.
진주쪽에서 가려면 진주시 문산읍 네거리에서 금곡쪽 길을 타고 가다 금곡면소재지에서 좌회전하면 다시 삼거리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가면 영현면으로 가므로 좌회전해 영오쪽으로 길을 잡고 달리다 보면 큰 정자나무가 서 있는데 이곳에서 1002번 지방도와 1009번 지방도가 갈린다. 좌회전하면 옥천사로 이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고성읍으로 가서 군내버스를 타면 된다. 고성읍을 중심으로 보자면 통영~고성간은 5~10분간격, 마산서는 10분, 진주서는 15분 간격으로 직행버스가 있다. 옥천사로 가는 버스는 마암선과 구만선 두개 노선이 있는데 모두 요금은 2500원이며 시간은 40분쯤 걸린다. 오전 6시45분 첫차, 8:00, 8:40, 9:45, 10:30, 10:50, 11:40, 12:35, 13:25, 14:20, 15:50, 16:25, 17:30, 17:55, 19:45, 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14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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