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마애불상,온통 세월에 쓸려


이 산하 어느 곳을 돌아본들 사람의 숨결이 스며있지 않고 역사의 현장이 아닌 곳이 있을까 마는 창원 공단은 그 중에서도 ‘공업입국’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이데올로기를 현실화시켜 낸 동력이었다.
그런 공단을 품에 안고 우뚝 서 있는 불모산.
창원시 남동쪽에 있으며 가야시대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부인 허씨가 일곱아들을 이곳에 입산시켜 승려가 되게 했다는 전설에서 ‘佛母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또 불모산저수지 부근 미륵골에는 아직도 미륵불상 몇 개가 남아있다.
장복산이나 정병산·봉림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과 통하고 있어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번 ‘자연과 쉼터’에서는 ‘등산’이라기 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산책길, 산악자전거나 산악오토바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길을 불모산에서 찾아보았다.
창원시 대방동 성원임대아파트 뒤쪽에서 시작된 임도는 삼정자동 뒷산을 지나 장복산을 넘어 장유로 이어지고 있다. 삼정자동 내리 뒤편까지는 한창 대단위 아파트 공사를 벌이고 있어 벌건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이 길을 기준으로 위쪽으로는 개발제한구역이다 보니 길에 바짝 붙여 땅을 파내고 있어 썩 좋은 산책길이 못된다.
그러나 10분쯤 걸어 삼정자동 내리마을 뒤에 이르면 창원공단이 오른쪽으로 훤희 보이고 앞으로는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오는 길이 싫다면 아예 삼정자동으로 찾아가 마을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500여m를 숨가쁘게 올라가면 지방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된 삼정자동마애불상을 만날 수 있다.
내리마을 사람들이 ‘장군바구(바위)’라 부르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커다란 바위에 튀어나오게 새겼으며 악마를 항복시킨다는 ‘항마촉지인’을 한 채 책상다리로 앉아 있다.
도에 통한 사람 머리뒤에 생긴다는 두광과 몸 뒤에 생기는 신광이 다 새겨져 있으며 앉아있는 대에는 파도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새길 당시에는 석공의 지극한 불심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자비가 새겨져 있었을터이지만 지금은 세월의 이끼가 앉고 얼굴과 법의는 닳아 알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준다.
마애불 부터는 산으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16일 비를 맞으며 마애불을 찾았을 때 숲속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나를 발견하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허겁지겁 도망갔다. 길안내를 맡았던 진해시종합복지관 진광현씨는 노루며 고라니가 심심찮게 나오므로 아이들 손잡고 산책하기에는 그만이라 했는데 정말 그랬다.
마애불을 돌아보고 다시 가파른 길을 100여m 더 올라가면 대방동쪽에서 돌아오는 길과 만난다.
이 길은 해방되고 미군이 닦은 길인데 장유로 넘어가고 있다. 처음부터 장유로 넘어가기 위해 닦지는 않았지만 산 양쪽에서 꼭대기에 있는 기지로 통하는 길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양쪽으로 통하게 됐다고 한다.
길 상태가 나빠 보통 승용차로 넘어가기는 어렵지만 오프로드 차는 갈 수 있겠다. 그러나굳이 차를 갖고 갈 필요 있겠나. 1시간쯤 걸으면 계곡에 막혀 걸어서는 더 갈 수 없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까지만 걸어갔다 와도 족할 길인데.
더구나 초입부터 1㎞ 정도는 길 아래 수도관이 묻혀 있다. 삼정자동 주민들이 식수로 쓰고 있는 관인데 오프로드 차가 다니다 보니 걸핏하면 관이 깨어져 차가 들어올 수 없도록 주민들이 차단기를 만들어 뒀다.
안내를 맡았던 진해시종합복지관 진광현씨 말로는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주말이면 이곳을 즐겨찾는다 한다.
창원 공단을 내려보며 한 숨 내쉬고 길따라 터벅터벅 걷다 보면 금방 울창한 숲속으로 빠져든다. 그때부터는 나무와 풀과 땅, 한번씩 만나는 도랑물과 바위덩이 같은 것만 볼 수 있어 다른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뭐 경치가 빼어나다거나 희귀 식물을 볼 수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그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고개넘어 이웃동네로 가는 길에 접어 든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러기에 부담도 없고.
내가 이곳에 갔을 때는 저절로 나고 자라 열매를 맺은 돌밤이 익어가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진씨는 철마다 다른 먹을 거리와 볼 거리가 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조금 더 있으면 지역에 따라 뽈똑, 뻘뚱이라고도 하는 보리수 열매가 발갛게 익어 구미를 당기게 하고, 어름이니 돌밤이니 산에서 나는 갖은 열매를 철따라 맛볼 수 있다나.
진씨 설명을 들으면서 어릴때 생각도 떠올리고, 모처럼 맛보는 상쾌한 공기를 맘껏 들이켜기도 하며 걷다 보니 ‘농바구’가 나온다. 오른쪽 위서 왼쪽 아래로 어슷하게 금이 가 있어 장롱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미군들이 길을 내면서 바위 아랫부분이 흙에 많이 묻혔다는데 지금도 ‘불모산’이라는 글과 함께 여러 집안의 묘지가 어느곳에 있는지 새겨져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이번에는 장기바위다. 4~5평은 됨직한 평평한 바위가 길 옆에 붙어 있는데 신선들이 내려와 장기를 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솔 숲으로 난 길을 새소리 풀벌레소리 벗삼아 걷다보면 조그만 개울(계곡이라기보다는 개울에 가깝다)을 하나 건너고 공기바위를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큰 일을 주관하는 하늘나라 신장들이 이곳에 내려와 공기놀이를 했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도시락을 가져왔다면 장기바위나 이곳에 앉아 먹어도 좋겠다.
공기바위를 지나면서부터는 산지 습지라고 한다. 그날은 비가 와서 습지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물봉선화나 물가에서 자라는 때죽나무를 자주 볼 수 있어 아무래도 습지가 맞는 듯 했다.
그러나 내가 자연생태에는 까막눈에 가까운지라 습지의 여러 특징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그쪽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처음부터 느릿하니 걸었더라도 40~50분쯤 이면 두갈래길을 만난다. 오른쪽 아랫길로 가면 군사 기지로 통하는 길이고 왼쪽 윗길로 가면 습지대로 통한다. 어느쪽으로 가더라도 큰 계곡을 만나게 된다. 위쪽에서 만나는 계곡은 그 너머로 두개의 계곡이 더 있는데 아래쪽 길에서 만나는 계곡은 위의 세 개 계곡이 만나 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 이 물은 삼정자동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하고 있는데 물을 모으기 위해 콘크리트로 보를 막아놓은 것도 보인다.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물줄기도 거세고 바위 틈으로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모습이 장관이라 할만했다. 이 물이 불모산 저수지로 흘러든다. 한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아래쪽 길로 갔을 때 계곡 건너편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였다. 장유쪽에서 오는 길이 좋다 보니 부산쪽에서 차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아마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인 듯 했다.

△가볼만한 곳 - 성주사

갔던 길을 되짚어 나오며 진씨가 알고 있는 개발 전의 창원군 촌락이라든지 옛 얘기를 듣다 보니 금방 내리마을 뒷산이다.
건너편으로 삼성테크윈 공장이 보이고 그 너머에 동산이 하나 보였다. 이름하여 ‘계곡산’. 닭벼슬처럼 생겼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봐도 닭 벼슬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더 멀리 있는 성주사와의 연관 속에서 풍수지리적으로 추리해보는게 그 뜻에 가까웠다.
성주사가 있는 산은 이른바 ‘금계포란형’.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인데, 그 닭을 뱀이 노리고 있단다. 그래서 성주사에는 지금도 돌 돼지상이 두개 남아 있다. 닭을 노리는 뱀을 돼지로 막겠다는 옛 어른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성주사는 신라 흥덕왕 10년에 무렴국사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오며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숙종 7년에 재건했다. 흔히 ‘곰절’이라고도 하는데 절을 재건할 무렵에 곰이 하룻밤 새에 목재를 다 옮겨줬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있다.
성주사 계곡도 괜찮다고 하는데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들어갈 수는 없고 철조망 너머로 보는데 만족해야 한다.
성주사못을 지나 절로 올라가다 보면 주차장에 높이 10m는 넘어보이는 탑이 서 있는데 아무리 뜯어봐도 어색해 가까이 가봤더니 세상에, 철판을 덕지덕지 잇대 탑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철판으로 탑을 못지을 바야 없겠지만, 아무래도 지극한 정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대웅전으로 가자니 또 뭔가 어색하다. 이모 저모 뜯어보니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도록 경삿길이 나 있다. 장애우나 노약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절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계단마다 경사로를 만들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쨋거나 주차장에서 대웅전까지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25호인 성주사 삼층석탑을 비롯해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134호), 관음보살상(〃 제335호), 감로왕탱(〃 제336호), 동종(〃 제267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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