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현대식 정자에는 네 분 어른이 목청 높여 토론을

그동안 마을숲을 다룬 적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겨레는 마을마다 숲을 가꾸어 우거지게 하고 그 품에 안겨 살아왔다. 함안 이수정의 나무도 좋고 의령에서 진주 가는 국도를 따라가다 왼편에 나타나는 마을의 숲도 괜찮다. 하동 북천 직전(稷田)마을의 숲도 크지는 않으나 아늑한 게 한 때 즐기기에는 그지없이 좋은 곳이었다.
옛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었다. 계집아이가 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지금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아이가 시집갈 때 나무를 베어 장롱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이처럼 나무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나무를 대상화해서 한 게 아니었다. 나무를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을 덧붙이고자 한다. 옛날에는 어릴 적에 죽는 일이 많았다. 부모들은 아이가 먼저 죽으면 나무에 기대어 아이를 떠올리고 슬프거나 괴로울 때는 나무를 찾아가 맺힌 한을 달랬다고 한다.
이른바 ‘자기나무’, 경상도 말로 ‘지나무’라고 하는데 나무와 더불어 아이를 키웠으며 나무와 더불어 스스로 자라났다. 아이가 커서 일가를 이룬 뒤에 죽으면, 나무를 베어다가 관을 삼아 운명을 함께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곡안 마을의 숲은 그렇지는 않다. 소나무 아니라 활엽수 수백 그루가 들머리에 우거져 있다. 뒤에는 심은지 오래 되지 않은 플라타너스들이 개울 따라 들어서 있다. 플라타너스는 양버즘나무라고도 하는데, 몸통 무늬가 버즘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이북에서는 방울나무라고 한다. 가을에 맺는 열매 모양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북에 대해 썩 내켜 하는 편은 아니지만, 요런 데서는 남쪽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어르신들이 앉아 있다. 혼자 다 마신 것은 아니겠는데, 너른 평상에 빈 소주병 두 개가 있는 옆에 한 분이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높다랗게 지은 현대식 정자에는 네 분 어른이 목청 높여 토론을 하고 있다.
별로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에서 이어지는 다리는 80년에 지었는데 이름이 선유교(仙遊橋)다. 신선처럼 노니는 다리라니 콘크리트서도 이따금 신선이 내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레 어울린다. 곡안 마을숲은 은근히 알려져서 찾은 이들이 적지 않은데도 다리 아래는 한적하다.
마을에는 외지 사람 보라고 만든 안내판이 몇 있다. 야한 옷차림, 욕설, 큰 소리, 자연 ‘회손’을 하지 말 것을 알리고 있다. 나무에 걸린 마대자루는 “이리저리 눈치보지 말고” “쓰레기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라고 일러주고 있다.
개울은 적어도 100m는 이어진다. 개울가 나무그늘 아래에는 너른 바위들이 즐비하다. 물은 위쪽 저수지 덕분에 언제나 넉넉하다. 정말 쉬기에는 그만이다. 싱싱한 물고기도 재빠르게 움직이고 다슬기도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잡지 않고 보기만 해도 옛적 집 앞 냇가에 퍼져 앉은 느낌을 준다.
보통 노는 것처럼 고기 구워 먹고 화투짝이나 카드를 돌리지 말라는 데는 아니지만, 어떤 아주머니처럼 아이들은 돌과 물을 갖고 놀게 하고 고개를 숙여 책을 보는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다. 나무 아래도 좋고 냇가에서도 더욱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삭을 숙이고 나날이 무르익는 들판을 거니는 맛도 괜찮다. 그곳에 가면 그곳 풍경이 되는 것이다. 햇살이 따가워도 조금 참고 이리저리 오가면 얼마 안돼 괜찮은 느낌이 온다.
채소나 곡식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를 위해 이건 콩이고 저건 참깨야, 정구지도 수북하네, 이런 배추는 말라버렸어, 이 옥수수는 알이 덜 찼고 위에는 어울리지 않게 철쭉 묘목을 심었고 길가에 저 익모초는 꽃이 참 예쁘네, 하고 일러줄 수 있지 않겠나.


△가볼만한 곳 - 적석산
곡안(谷安)마을은 유서깊은 동네다. 동네 어른들은 실안이라고 하는데 실이나 골은 골짜기를 뜻하는 말이니 골짝 안쪽에 아늑하게 알맞게 들어앉은 마을이라는 뜻이겠다.
성주 이씨와 광산 김씨 집성촌으로 오랫동안 내려온 이 곳은 50년 8월 미군의 양민학살이 일어난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마을 뒤쪽 재실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무차별 사격을 해댄 것이다.
진전 일대에는 근대의 유적이 적지 않다. 곡안에서 진주쪽으로 더 들어가면 나오는 양촌마을 들머리에 ‘8의사 묘역’이 있다. 양촌온천 바로 못 미쳐 길가에 안내판이 서 있다. 묘역에는 멋진 배롱나무가 있다. 늘 잘 가꿔져 있고 자리가 아늑해 뜻맞는 이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에도 좋다.
양촌마을 안으로 들어가 뒷산에 오르면 1919년 삼진만세의거의 주역인 변상태 선생 묘소도 참배할 수 있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면 자리를 잘 알 수 있다.
상해 임시 정부에서 경남 총책을 맡았던 죽헌 이교재 선생의 묘소도 있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러 들어왔다가 잡혀 모진 고문으로 숨을 거뒀는데 곡안 마을 들어오기 전 국군마산병원 가는 길목 임곡리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병원 가는 길 ‘죽헌로’의 350m쯤 되는 데서 왼편 콘크리트길로 접어들면 된다.
뿐만 아니다. 바로 마주보이는 적석산(497m) 산행도 아주 좋다. 이름 그대로 돌산이긴 하나 그리 높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기 알맞다. 꼭대기에 서면 사방이 확 트인다. 마산쪽으로는 다닥다닥 다락논이 이어지고 고성쪽으로는 산줄기들이 이어진다.
꼭대기는 층층이 무늬가 진 돌덩이가 엄청 너르게 자리를 잡았다. 산아래 저수지에서 오른쪽 능선말고 왼쪽 골짜기를 타는 길을 골라잡으면 빠른 걸음으로는 30분만에도 오를 수 있다. 활엽수가 많아서 한 철 늦춰 10월이나 11월쯤 찾으면 단풍이 아름다울 듯도 한데 단정은 할 수 없다.
양촌 마을은 온천으로 이름나 있고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는 대정마을은 돼지고기로 유명하다. 가게도 여럿 있으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들러서 먹고 씻어도 나쁘지는 않겠다.

△찾아가는 길

마산에서는 14번 국도를 따라가다 국군마산병원을 지나면서 오른쪽 2번 국도로 접어들면 된다. 진주쪽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는 대신 2번 국도를 따라 줄곧 오다가 왼편으로 우거진 마을숲을 만나서 가던 길을 멈추면 된다.
곡안마을은 마을숲과 숲에 묻힌 여러 비석들 덕분에 찾기 쉽다. 양촌도 마찬가지다. 시골답지 않게 길가에 목욕탕이나 여관 따위가 늘어서 있기 때문인데, 곡안에서는 진주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적석산은 곡안에서 양촌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면 된다. 이 길 끝에 달려 있는 게 바로 일암마을인데 마을 위쪽 저수지가 산행의 출발점이다. 죽헌 선생 무덤은 국도 14호선과 2호선이 갈라지기 직전에 오른쪽 국군마산병원 가는 길로 접어들면 된다.
같은 마산이지만 대중교통편은 그리 좋지는 않다. 하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필요한 시내버스는 다 있기 때문이다.
아침 7시 40분에 발동을 거는 21-9번은 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195분마다 탈 수 있다. 좌석버스인 383번은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마산대학 기점) 80분마다 다닌다.
마산역에는 진전면소재지가 있는 오서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넉 대 있다. 오서마을에서 곡안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385번 좌석버스는 아침 7시 30분부터 150분마다 있고 66번은 아침 7시 35분부터 105분마다 한 대씩 나간다. 81번과 85번은 각각 아침 6시 30분과 8시 15분에 첫차를 낸 뒤 95분과 150분마다 배차를 하니까 시간을 맞춰 탔다가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어시장에서는 이들 버스 넉 대를 비롯해 앞의 두 대까지 합해 모두 탈 수 있다. 시내버스 정보는 마산시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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