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짚기 위한 수단 성...‘낯설게 하기’의 효과

공작새의 똥구멍은 어떻게 생겼을까? 화려한 날갯짓에 깜빡 속은 사람들은 공작에게 똥구멍이 있다는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깃털을 쫙 뻗어 펼친 뒤쪽에 똥을 쏟아내는 구멍이 틀림없이 있는데도 말이다.
숨어 있는 똥구멍을 자세히 그려 보이면 사람들은 낯설어하고 싫어하며 심지어는 무서워한다. 평소에는 보는 듯 마는 듯 스쳐 지나갔겠지만, 대신 인식은 뚜렷하게 하게 된다. 공작에게도 더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의 효과다.
김언희는 여자를 구멍으로 바꾼다. 오규원 시인의 대표 시 가운데 하나인 ‘한 닢의 여자’에 덮어써서 ‘한 잎의 구멍’을 만들었다.
“나는 한 구멍을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은 쬐그만 구멍, 그 한 잎의 구멍을 사랑했네. 그 구멍의 솜털, 그 구멍의 맑음, 그 구멍의 영혼, 그 구멍의 눈물,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구멍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구멍을 사랑했네. 구멍만을 가진 구멍, 구멍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구명, 구멍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구멍, 눈물 같은 구멍, 그러나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구멍// 영원히 나 혼자만 가지는 구멍, 나밖에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구멍,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가혹한 구멍”
구멍 아니라 여자라 할 때보다 몇 배는 더 명징하지 않은가. 남자들이 사랑하는 게 사실은 인격을 갖춘 여자가 아니라 구멍이라는 물건을 가진 여자일 뿐임을 ‘끔찍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짐짓 뒷발질하듯, 점잖음 그만 떨고 헛소리 그만 해라, 툭, 일러주는 것이다.
가부장제 아버지는 억압하는 권력이다. 같이 살든 아니든 어머니도 아버지가 되어 간다. 네 년이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내가 이 모양 이 꼴은 안됐을 테다, 투정을 부린다. 아마 어머니는 아버지가 박대를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하게 자기 분신인 딸을 괴롭히고 머리 위에 올라타 쪽쪽 빨아들인다. 무엇으로·
김언희의 ‘가족극장, TE’와 ‘가족극장, 목단’은 이런 장면을 연속 상연한다. “아버지가 내 얼굴에 던져 박은 사과/ 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은 식칼// 아버지가 내 가슴에 던져 박는 사과/ 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는 식칼// 아버지가 내 자궁에 던져 박을 사과/ 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을 식칼”이 빛난다.
나는 “죽어라 머리가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깨 위에 샅을/ 벌리고/ 걸탄// 내 어깨 위에 목단꽃처럼 피어 흐드러진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존재의 근원, 본질에 가로 놓여 있다. ‘가족극장, 삭망(朔望)’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자궁의 목구멍에 아버지가 걸려 있다// 하수구에 걸린 슬리퍼처럼.”
감춰진 성은 상식과 권위와 권력과 제도이다. 그 추잡함을 드러내는 일은 그 상식과 권위와 권력과 제도를 뒤집어엎는 노릇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만인에게 낯설게 하고, 이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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