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콘서트의 달이다. 대형 공연장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로를 위시한 소극장가도 한 해를 산뜻하게 마무리하려는 유·무명 음악인들의 열기로 넘쳐나고, 방송이나 음반 시장에서 전성기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베테랑들도 호텔의 디너쇼 같은 호화 무대를 통해 젊은 시절의 팬들을 만난다.

온갖 규제 때문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공연 문화도 어쨌거나 12월은 기대로 한껏 부푸는 달인 것이다.

서울에서만 50여 콘서트가 펼쳐지는 와중에서 그러나 지난 10여년동안 한결같이 12월 초순이면 만나는 ‘민주화 실천 가족 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공연만큼 특별한 무대가 어디 또 있을까· 이 무대야말로 그저 흥청거리는 유흥의 갈피에 슬쩍 얼굴을 숨긴 우리의 비겁과 여전한 우리 사회의 비극을 그야말로 따뜻하게 반성하게 해 주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연합 공연의 성격을 지닌 여느 이벤트가 그러하둣이 (게다가 많은 예산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운동권’ 공연 아닌가·) 무대와 조명도 지금이 90년대인가 싶게 조촐하고 많은 예술인이 번갈아 서는 무대인만큼 음향과 극적 구성도 결코 완벽할 리 없다.

하지만 그 감동의 파고는 그 어떤 공연보다 우뚝하며 한결같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이 공연의 단골 청중들의 열기는 어느 아이돌 스타의 공연장보다 더 열정적이다.

그것은 무대 위와 아래의 시선이 꼭 같이 어떤 ‘저 높은 곳을 향해’ 간절히 손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동감의 힘이 공연 전문기획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예산이 풍족한 사회단체도 아닌, 그저 뼈에 새길만큼 가슴 시린 어머니들과 아내들과 형제자매들의 모임인 민가협의 이 행사로 하여금 이렇게 슬픈 아름다움의 자리를 마련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공연이 없어질 때 우리 모두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해마다 안타깝게 나온 것이므로 더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꽃다지의 씩씩한 목소리도 필요하고 윤도현 밴드나 크라잉너트의 발랄한 젊음도 가져야 하며, 그리고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한결같은 십이년의 지속성도 모두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9일 공연의 마지막을 뜨겁게 장식한 이은미와 컴백한 들국화의 열창은 이 공연의 작은 백미였다.

이 무대는 작게는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는 양심수와 그 가족의 존재에 대해 가슴으로 인식하는 자리이며 크게는 우리 사회의 묶여 있는 인권과 민주화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목소리로 구현하는 자리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은 만큼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미미하다고 쉽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여전히 겨울은 춥고 길며 봄은 아직 그 옷자락 한켠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반드시 이 모든 것을 추억으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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