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한 나라의 민족정신이요 힘의 원천입니다. 따라서 선진국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문화나 경제시스템으론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우리도 이젠 세계속에 우리문화의 이미지를 심는 등 세계화에 온 힘을 쏟을 때입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문화유산을 보존함은 물론 후손들의 교육장으로 인사동(서울 종로구)을 가꾸는 등 가장 한국적인 문화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임명석(52·대림화랑 대표)인사전통문화보존회 회장은 지난 1월 제7대 회장직을 맡아 여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인사동 거리에 전돌(검정색계통의 납작한 돌)을 깔아 지난달 역사문화탐방로를 준공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우리예술 특별종합전’도 열었다. 이번 달 17일부터 19일까진 ‘2000 서울국제행위예술제’를 열어 많은 외국인들이 인사동을 찾았고 25일엔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했던 대만공연팀을 초청, 열기를 이어갔다.

1987년 3월 만들어진 ‘인사전통문화보존회’(이하 보존회)는 고미술(골동품)점과 화랑, 필방, 전통찻집·음식점 등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거리 지킴이 노릇’을 하는 곳이다. 서울 종로구청 주도로 설립된 뒤 88서울올림픽 후 민간단체로 거듭나 전통문화축제 등을 주관하고 있다. 보존회는 인사동 일대에서 문화업소를 운영하는 30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계간지 <인사동 이야기> 등 문화 관련 서적도 발행하고 있다.

“보존회 회원들은 누구보다도 우리문화를 사랑하고 인사동을 아끼는 사람들입니다. 개발열기 속에서도 인사동 일대에 고층빌딩 등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회원들의 그런 열정 덕택입니다. 인사동은 역사문화탐방로 준공을 계기로 내년엔 문화지구로 지정받을 예정이어서 회원들의 기대가 큽니다. 또 서울의 8대 명소에 인사동이 포함돼 내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많은 외국인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 가을부턴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시티투어버스가 인사동을 찾고 있기도 하죠. 아쉬운 것은 정부가 문화 1번지라고 말로만 치켜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서울시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위안삼고 있습니다.”

회장은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란 생각을 갖고 있다. 무분별한 건축을 막을 수 있고 문화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등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정부의 각종 규제도 따를 것이란 예상에서이다. 그래서 임 회장 등 보존회 회원들은 문화지구 관련 법령이 통과되기전 자신들의 손을 한 번 거쳐야 한다는 뜻을 서울시에 전했다. “인사동은 100여년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거리로 고대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진 ‘삶의 교육현장’입니다.

인사동도 이전과는 ‘내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돌이 깔려 있는 역사문화탐방로는 차도와 인도를 직사각형 큰 돌로 나눠 문화의 거리로 손색이 없습니다. 또 위·아래쪽엔 마당놀이와 연극 등을 할 수 있는 ‘북인사마당’과 ‘남인사마당’을 만들어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죠. 이밖에도 인공개천과 내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소도 만들었고 앞으론 골목마다 산뜻한 안내판과 공중화장실을 만들 계획입니다.”

임 회장은 이렇게 ‘새단장’을 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게 노점상과 포장마차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등에서 만든 제품들을 주로 파는 노점상들이 인사동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인들이 조잡한 이들 제품을 한국산으로 오인해 결국 우리 문화의 수준을 낮게 본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임기 3년의 보존회장직을 맡자 주변에서 격려보단 채찍질을 많이 하더라고요. 인사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순수하고 아늑했던 문화감상의 공간이 점차 현대식 거리로 바뀌는 등 인사동 ‘생태계’가 변화한 것입니다. 가장 큰 변화(걱정)는 한 해에 10개 이상의 고미술점과 화랑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겁니다. 이는 자연적 감소라기보단 정부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들 문화업소가 떠난 자리엔 주로 개량한복집 등 전통문화와 다소 거리가 먼 업소들이 들어서고 있어 인사동 이미지완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4월 서울시와 정부에 ‘인사동 중심부만이라도 문화업소외엔 영업허가를 내주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임 회장은 인사동을 세계속에 심기 위해 굵직한 사업들을 준비중이다. 공모를 통해 내년에 ‘인사동 캐릭터’를 만들 예정이며 일요일마다 각종 행사를 열 생각이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문화이벤트 교실’ 노릇을 할 ‘인사동 문화회관 건립’으로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문화회관이 세워지면 지하는 외국인 전용 주차장으로, 그밖의 공간은 가난한 작가들을 위한 전시관과 공연무대·영화관·민속박물관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1948년 의령군 궁류면 토곡리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임 회장은 대구에서 화랑을 경영하고 있는 큰형으로부터 ‘화랑경영’을 배워 80년 여름 서울에서 대림화랑을 개관했다. 그는 73년 그림과 인연을 맺은 뒤 한국고미술협회 부회장직을 지내는 등 국내 고미술계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화랑협회 이사(현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를 지내기도 한 임 회장은 최근까지 골동품 등을 감정해주는 TV프로그램의 감정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각 박물관에서 소장중인 문화재급 그림 수천 점이 그의 손을 거쳤다.

‘작품의 개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등 물건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화랑을 경영할 수 있다’는 임 회장은 지금껏 조선시대 작품집 13권을 펴내기도 했으며 다음달 21일부터 29일까지 자신의 화랑에서 ‘조선시대 좋은 그림전’을 열 예정이다.

“경남지역 등 영남권엔 미술쪽에 재주를 가진 사람이 드문 게 아쉽습니다. 그래서 전 고향사람들 중 재질있는 작가들이 있으면 기꺼이 도울 생각입니다. 더불어 경남의 독특한 지역문화(축제행사)를 인사동을 비롯한 서울에 소개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했다’는 임 회장은 재경의령향우회 운영이사를 10년째 맡고 있으며 16세에 떠난 고향을 한 해에 두서너번 찾는다고 한다. 의령군 지정면 출신인 부인 박윤년(49)씨와의 사이에 1남 1녀(성신여대 산업미술과 재학)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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