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곁에서 천하를 내다보니 자비가 내안에…

옥천 골짜기는 말 그대로 구슬 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다가 처음 마주치는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물에 발을 담그지 않아도 그냥 시원할 정도다.
왜냐면 산이 펼쳐지면서 시작한 골짜기가 좌우로 쫙 벌어졌다가 한 군데로 모이는 데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람이 일어서 골짝 이곳저곳을 쓸고 다니다가 한 군데로 모여 빠져나가는 것이다.
관룡산(740m)은 아직도 멀리 있다. 조금 더 길 따라 오르면 콘크리트로 뒤덮인 주차장이 또 나타난다. 적어도 산을 아끼는 이라면, 여기서 콘크리트길을 타고 관룡사 앞까지 차를 몰고 가지는 않는다.
콘크리트길을 버리고 오른쪽 산죽 우거진 사이로 오솔길 따라 가면 된다.고즈넉하기도 하거니와 아주 아름답기까지 하다. 골짜기 이쪽저쪽을 넘나들며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은 수행하는 이에게 딱 알맞을 것 같다. 숲이 우거져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안되는 데도 있고 알맞게 너른 데도 있으며 눈을 헹궈주듯 짙은 솔숲이 있는 데도 있다. 개울을 가로질러 징검다리를 건널 때도 있고 잡목이 드문드문 늘어선 평지도 나온다.
게다가 들머리 돌장승에서부터 제주도 사립문 같기도 하고 잘 모르는 이는 당간지주라고도 잘못 말하는 나지막한 석물 두 쪽까지 관룡사와 관련된 것들이 차례대로 늘어선다. 게다가 스님 사리를 모신 부도도 만날 수 있으니,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사는 인생일지라도 이 길을 걸으면 삶과 역사와 우주와 세계에 대한 생각이 펼쳐지지 않을 수 없겠다 싶다.
관룡사에서 등산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관룡사 안으로 들어가 대웅전을 가로지르면 용선대(龍船臺)로 가고 오래 되지 않은 일주문을 곁눈질하면서 곧장 오르면 청룡암 가는 길이다.
청룡암 가는 길은 아주 가파르다. 절간에 잠시 들러 앵두가 있는 샘터에서 물통을 채운 다음 뒤쪽 부도에서 잠시 쉬었다 서둘러 올라간다. 너르기도 하고 산꼭대기에 빨리 가 닿을 수 있는 길이지만 만만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골짜기도 넓고 깊어서 전망조차 즐기기 어려울 정도인데, 청룡암까지는 40분 남짓 걸리고 산마루에 이르려면 여기서 다시 30분 정도 기를 쓰고 올라야 한다.
용선대는 법당 앞을 가로질러 살림채 뒤쪽으로 난 길 끝에 달려 있다. 절간에서 용선대까지는 20분 남짓이면 가 닿는다. 길도 평탄해서 식구들끼리 오르기에는 그만이다. 할머니들이 버스를 타고 무리지어 와서 용선대에 모셔놓은 부처님을 참배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용선대 석가여래좌불을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라고 한다. 얼굴이 두툼한 게 아주 잘 생겼는데 아래로 처진 옷자락이 정형화돼 석굴암 본존불에는 못미친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세계적 명물인 석굴암 본존물에 비겨 말할 정도니까 결코 아무렇게나 여겨도 될 부처님은 아니다.
부처님을 바라보다가 부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들판과 사람살이들이 펼쳐진다. 여기 돌부처는 석굴암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동짓날 해 뜨는 쪽을 정면으로 삼았다고 한다. 바로 정동에서 동남쪽으로 15도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 오른쪽 뒤통수에는 화왕산성이 보이고 왼쪽 앞머리에는 관룡산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앞쪽에는 숲 속에 파묻힌 채 보일 듯 말 듯 관룡사가 숨어 있고.
용선대에서 뒤로 돌아 내처 마루를 타고 오르는 길은 오른쪽 왼쪽으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다. 관룡산 병풍바위는 그야말로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조선시대에 산사태가 일어나 관룡사를 뒤덮어 버린 적이 있다는데, 그 때 드러난 바위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안개가 휘감고 있다가 살짝 걷힐 때 바라보는 병풍바위는 더욱 멋지다. 지금은 짙은 초록으로만 빛을 내지만 두 달쯤 뒤 단풍이 들면 참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 된다. 그래서 어떤이들은 줄곧 바람이 불어대는 용선대에 서서 병풍바위만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그냥 발길을 돌려 내려오기도 한다.

△가볼만한 곳 - 문암정

옛날에는 관룡산 옥천 골짜기에 절이 두 개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들머리 안내판에 적혀 있는 것만도 8개나 된다. 이런 걸 보노라면 고려시대 권승 신돈이 태어나 수도했던 옥천사는 폐사지를 그대로 둔 채 왜 복원을 하지 않는지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옥천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언덕 위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는 데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절벽이 있고 절벽을 더듬어 오르면 정자가 하나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창녕군 영산면 일대를 지켰던 신초 선생이 나중에 벼슬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지낸 문암정이라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올라가는 길을 만날 수 있는데 문은 잠겨 있지만 담장이 나지막해 웬만하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영산에 있는 호국공원에 신초 대신 전제가 있는 것은 그야말로 엉터리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선조라는 까닭으로 이른바 ‘전제’장군 사적비도 있고 승전도에는 총대장 곽재우 대신 조전장밖에 안되는 전제가 전면에 나오니 웃음밖에 안나온다.
선조실록이 정유재란 때 울산 도산전투에서 권율에게 참수를 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전제보다는 신초 같은 인물이 몇 배는 더 나을것이다. 절벽은 배롱나무와 대나무로 우거져 있다. 신초 장군이 심은 배롱나무는 모두 35그루가 남았는데 7월이나 6월 한창 때면 바위가 온통 붉을 텐데 지금은 아래쪽 두어 그루만 늦게까지 꽃빛을 자랑하고 있다.
낭떠러지로 바짝 붙은 문암정 마루에 앉으면 물소리가 콸콸 신나게 들려온다. 옛날 사람들은 참 좋은 자리를 잘도 골라 앉았다. 쳐내도 줄곧 솟아나는 대나무 때문에 지금은 전망이 좋지 않지만, 바위와 개울과 들판이 어우러지는 멋진 곳이라 할만하다.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속까지 다 시원해질 정도다.
콘크리트 다리는 볼썽사납지만 어찌 보면 정겹기도 하다. 다리 아래 부부 2쌍이 자리를 깔고 놀고 있다. 고기를 구워 먹는 듯한데 풍경은 그럴 듯하나 냄새는 역겹다. 들놀이를 가면 고기를 꼭 구워먹어야 하는지, 그냥 도시락에다 사과나 복숭아 몇 알 싸 들고 가서 먹고 돌아오면 안될까.
다리 아래 노는 풍경에서 고기 맛과 냄새를 빼고 보면 훨씬 더 정답고 멋질 것 같다. 아이들은 배롱나무 아래 너른 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물장구를 치고 있다. 아이들은 그늘이 없어도 물만 있으면 마냥 즐거운가 보다.

△찾아가는 길

진주에서는 창녕까지 가는 차편이 없다. 진주에서 가려면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갈아타야 한다. 마산 터미널에서는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20~30분마다 한 대씩 차가 나가니까 좋은 편이다. 30분 남짓이면 가 닿으니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읍내에서 옥천 들어가는 차편은 좋지 않은 편이다. 아침 7시 9시 50분 11시 50분 오후 2시 10분 3시 50분 6시 등 모두 여섯 차례 버스가 들어간다. 시간은 25분밖에 안 걸리지만 차편이 너무 적은 것이다.
자가용 자동차를 타면 좀더 쉽게 갈 수 있다.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창녕·대구쪽으로 가다 영산 나들목에서 빠져 나오면 된다. 바로 신호를 기다렸다가 왼쪽으로 꺾어져서 조금 가다보면 바로 화왕산 군립공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 표지판을 따라서, 조그만 다리를 건너지 말고 곧장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길 끝에 관룡사가 달려 있다. 여기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고속도로가 싫으면 창원 북면을 거쳐가는 지방도를 탈 수도 있다. 남지·영산을 지나 줄곧 달리면 앞에 말한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자동차를 끌고 간다면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길따라 흐르는 개울에 첨벙첨벙 뛰어들어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옥천(玉泉)에서 나오는 물이니 이보다 더 시원할 수는 없다.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래쪽에는 물고기들이 많은지 제대로 된 그물을 들고 투망질을 하는 이들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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